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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나루 동작진

조선의 14명의 왕을 배출한 명당 동작릉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7.04.12|조회수266 목록 댓글 0


창빈 안씨(昌嬪 安氏, 1499년~1549년)는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다.
창빈의 신도비에는 ‘천품이 단정하고 훌륭하셨다(天資端懿)’고 새겨 있으니
후세에 나라를 위해 일하다 돌아가신 이들에게 자리 내주심에 서운함이 없을 것이다.
이 땅은 한남정맥의 한 줄기가 관악산, 삼성산을 거쳐 이곳에 와서 혈을 맺은 곳이라서
공작포란형(공작이 알을 품는 모양)의 명당이라고 풍수사들은 말한다.

창빈안씨는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궁궐을 떠나 중이 되려고 하였다.

문정왕후의 특명으로 궁중에 머물다가 명종 4년(1549) 세상을 떠났다.

처음은 경기도 양주군 장흥에 장사 지냈다.

그 자리가 좋지 않다고 하여 이듬해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바로 동작릉이다.

창빈 안씨가 동작릉으로 옮겨오게 된 사연은 이렇게 전한다.

어느날 선조의 아버지 덕흥군 이초 집에 한 지관이  찾았다.

-어떤 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숙용 안씨의 묘를 이장하셔야 합니다."

덕흥군은 예삿 일이 아니였다. 깜짝 놀라 그 지관에게 호통을 쳤다.

-방자하다. 감히 왕실의 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가?

"방금 조선 최고의 명당 길지를 보고 왔기에 그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길지 운운하며 명당을 이야기하는 건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아니냐?

  그 명당이란 곳이 금계포란형을 하고 있다는 게냐?

"금계포란이요? 그건 기껏해야 닭이 아닙니까?"

-그럼 봉황을 보았다는 거냐?

"봉황은 보지 못했으나 공작을 보았습니다."

-공작을 보았다고?

"네, 공작포란의 명당길지를 보았습니다."

이 풍수사가 말하는 공작포란형은 최고의 길지이다.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그 명당을 덕흥군 이초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명당이면 자네의 조상을 모시면 될 일이지 왜 나한테 주겠다는 게냐?

"그런 명당에는 아무나 함부로 쓰면 오히려 화를 당합니다. 임자는 따로 있지요."

-도대체 그곳이 어디냐?

"노들나루 위에 동작나루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왜 그 자리를 동작나루라고 했겠습니까?"

-그 천하의 명당 길지를 어찌 너만 알고 있는 게냐?

"길지는 쉽사리 아무에게나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됩니다. 숙용마마의 묘를 이장하는 까닭을 물으면 이렇게 말하세요.

양주의 묘에 물이 차서 흉한 꿈을 자주 꾼다고 하세요. 그 자리는 수십명의 군왕이 나올 길지입니다."

풍수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훌쩍 떠났다. 덕흥군 이초는 멍할 따름이었다.

덕흥군 이초는 그 길지를 직접 확인키로 했다. 그 풍수사를 부르지 않았다.

이튿날 종자만 데리고 갔다. 강 건너 동작나루로 갔다. 그 명당을 둘러보고는 탄성을 낸다.

"아,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그 풍수사의 말대로 기가 막힌 길지였다. 이곳의 산세는 관악산(632m)에서 비롯되었다.

최고봉인 연주봉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맥이 남현동 고개를 지나 까치산공원으로 넘어간다.

사당아파트와 상도중학교, 상현중학교가 있는 능선을 따라 국립서울현충원의 주산인 동작봉(174.8m)으로 이어진다.
동작이란 산세가 공작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고, 이 일대의 돌 색깔이 구리 빛을 띤 것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작봉에서 좌우로 뻗은 능선은 병풍을 치듯 묘역 전체를 감싸고 있다. 앞에는 한강이 흐르고 있어 배산임수의 지형을 이루었다.

덕흥군 이초는 공작포란형을 하고 있는 곳곳을 찾았다. 어머니 숙용 안씨를 모실 묘자리를 살폈다.

어머니를 모실 길지는 찾았다. 문정왕후가 허락하지 않고는 어머니를 그 곳에 모실 수 없는 일이었다.

며칠동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창백한 얼굴로 문정왕후를 찾았다.

-왜 그렇게 얼굴이 창백하냐? 무슨 일이 있는 게냐?

"특별한 병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흉몽을 자주 꾸고 있습니다."

-무슨 흉몽을 그렇게 심하게 꾼다는 게냐?

"꿈에 생모가 자주 보입니다."

-숙용 안씨가 꿈에 보이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꿈을 며칠째 계속 꾸고 있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꿈은 묘에 물이 차는 것이다. 당장 이장을 하도록 하라.

국립서울현충원 한 가운데에 자리한 창빈 안씨의 동작릉이다.

곡장(曲牆)이 둘러처진 창빈 안씨의 무덤이 단아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창빈안씨 묘의 주룡은 동작봉에서 우측 두 번째 봉우리에서 내려왔다. 첫 번째 봉우리 아래에는 박정희 대통령 묘가 있다.

이곳 주룡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주룡의 맥은 크게 과협 한 다음 장군제1묘역이 있는 봉우리를 세웠다.

귀인처럼 단정하게 생겼으며 현무봉이다. 이 중심 맥은 북쪽으로 내려가는데 그 끝자락에 창빈안씨 묘가 있다.

동작릉으로 옮긴 뒤 중종의 후궁 중 하나였던 창빈은 아들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이 왕위로 오른다. 그가 선조다.

창빈 안씨는 죽은 뒤에 왕의 할머니가 됐다. 이 후 조선의 모든 왕은 창빈 안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창빈 안씨의 DNA는 선조 이후 13명이 조선 왕통에 면면히 이어갔다.

제14대 선조에서 제27대 순종까지 14명의 왕이 동작릉 혈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길지에서 수십명의 왕이 나올 것이다''

그 풍수사의 말이 결코 허언(虛言)이 아니였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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