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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법문 022-3/퇴옹 성철

작성자發菩提心|작성시간16.04.21|조회수20 목록 댓글 0

백일 법문 022-3/퇴옹 성철

2) [대지도론(大智度論)]3


간단히 말하건대
안의 육정(六情)이 한변이요
밖의 육진(六盡)이 한 변이니,
이 양변을 떠나서
중도를 행함이 반야바라밀이다.

이 반야바라밀이 한 변이며
반야바라밀 아닌 것이 한 변이니,
이 양변을 떠나서
중도를 행함이 반야바라밀이니라.

略說한대
內六情이 是一邊이요
外六盡이 是一邊이니
離諸二邊하여
行中道是名般若波羅蜜이며

此般若波羅蜜이 是一邊이고
此非般若波羅蜜이 是一邊이니
離是二邊하여
行中道是名般若波羅蜜이니라.


육정(六情)이란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6근(六根)을 말합니다.

육진(六盡)은
이 육정에 상대되는
물질. 소리. 향기. 맛. 감촉. 법의
여섯 가지 대상입니다.

이것들은 전부
다 상대가 있는 것으로
모두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 무엇이든지 간에
집착하는 마음은
변견으로서 똑같이 병입니다.

무엇이든간에
완전히 변견을 버려야만
참으로 원융무애한
중도 정견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두 부문을 널리 설하면
무량한 반야바라밀이니라.

如是等二門을 廣說하면
無量般若波羅蜜이니라.


이와 같은
두 부문(二門)의 차별 상대법을
널리 설할 것 같으면
무량무변해서
그런 반야바라밀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무량무변한
양변을 완전히 여의면
무량무변한 반야바라밀이 되고,
무량무변한
양변을 집착하면
무량무변한 변견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유(有)를 떠나고
무(無)를 떠나며
유가 아님을 떠나고
무가 아님을 떠나서
어리석음에 떨어지지 않고
능히 바른 도를 행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니라.

復次離有離無하여
離非有離非無하여
不墮愚痴而凌行善道
是般若波羅蜜이니라.


유(有)나 무(無),
비유(非有)나 비무(非無)에 집착하면
이는 우치한 사람으로서
이 변견을 떠나면
우치를 면하게 되고,
능히 바른 도(善導)를 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른 도는
착한 행동을 잘한다는 말이 아니고
양변의 변견을
완전히 버린다는 것으로
이것이 반야바라밀이고 중도입니다.

결국 참으로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려면
이 반야바라밀에 대한
집착까지도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중도란 것도 병이 아니냐'
고 논박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직 중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부처님이 늘 말씀하시기를
양변에 머물면
중도에 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중도도 병이 아니냐 하면,
이는 중도에 집착하여
양변을 완전히 여의지 못하고
중도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중도란, 양변을 떠나서
그 한가운데 말뚝이
또 하나 서 있는 것 같이 알면
이것은 외도란 말입니다.

양변을 완전히 여의면
이것이 곧 중도인데,
이 중도도 설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이름하여 중도라 하는 것이지

무슨 중도가
한가운데 말뚝 서듯이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집착이 없다는 것에 대한
집착도 떠난 것이
중도이고 반야바라밀이며,
반야의 실상이고 일승(一乘)이며,
원교(圓敎)이고 불법(佛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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