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깨우치고 입학한 애들은 수업내용이 너무 시시하니 공부보다는 장난에 치중하고 부족한 애들은 수업에 흥미를 느끼니~~한학기 지나고 보니 거기서 거기더라구요. 2학기 중반을 넘긴 시월인가 교과서 구경을 했는데 무진장 지저분하게 사용하고 있더군요~~"너 책을 아주 엄청 지저분하게 사용하네..."그랬더니 살짝 눈치를 보더라구요. "선생님이 시킨거야?..." 또눈치. "잘못했다는게 아니고 너무 잘하는것 같아서~~" 책이란 그 속의 지식을 배우는 도구이지 책 자체가 주인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는데~~시키지 않았느데도 그러는게 선생님 영향인것 같습니다. 기말고사에서 전과목 만점을 받았는데 수료식때 상은 안주더군요. 왜일까요??~작성자고질라작성시간13.07.12
입학식에 아내가 참석하였지요. 당시 한반이 40명이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한글 읽기에 지장이 없었고 숫자도 100까지 거뜬하게 쓰는 애들이었답니다.~~~우리애 수준은 약 다섯명 정도 사실 몇명정도 초과될수도 있겠지만 몇몇의 소수를 가리는데 수줍어서 손을 들지 못한지는 모르지만~~이런 저런 조사와 파악을 끝내고 담임 선생님께서 하는 말씀이 "겨우 이름 석자만 알고 입학한 학생과 부모에게 감사 드립니다. 대부분의 학생이 1학년 학습수준을 알고 입학하였지만 그렇다고 2학년치를 앞당겨 가르칠수 없고 부족한 다섯명을 기준으로 교과서에 맞는 진도를 나갈수 밖에 없음을 부모님께서는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당연한 얘기지요?~작성자고질라작성시간13.07.11
우리나라 부모님들 자식사랑이 극진하여 공부만 잘한다면 어지간한 잘못은 대충 눈감아 넘기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것 같습니다. 당시 TV에 나오던 광고중 박노식 부자가 출연한 "개구장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였는데 우리 마음이 그랬습니다.~~그 아주머니의 말 한마디에 다른애들은 학교 갈때가 되었다고 놀이방이나 유치원 등을 보내며 준비운동을 열심히들 하는데 우리집은 오로지 열심히 놀아라였으니~~애도 어른도 참 행복했지요 다른분들은 그때부터 애들을 비교해가며 열들을 받더라구요~~입학이 임박한 2월 중순 어찌어찌 지이름 세자와 1~10까지 쓰는것으로 준비운동을 마무리하고 학교라는 본선에 진출~~작성자고질라작성시간13.07.09
큰애가 탄생하여 8개월이 지났을때 처음으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엄마란말로 시작하는게 보통인데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아빠오나 어디보자"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설마 하였는데 이후로 아무말도 하지 않더군요.~~머리가 같은 시기에 난 애들보다 큰 탓인지 다른애들보다 걷는게 상당히 늦더군요. 9개월이 지나며 정식으로 말을 하는데~~호박을 호방, 콩나물을 콯남짐 하는식인데 발음이 상당히 정확한 것이고 한번 들으면 상당히 수월하게 표현하는 모습에~~이웃의 모 아주머니가 "상운이가 천재인것 같은데"라며 신경쓰지 말고 들으라며 "천재는 단명을 핟다는데~~"라는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그후로 천재는 싫다 평범한 보통사람이되라~작성자고질라작성시간13.07.08
부동산 경기가 날로 추락하여 토지거래가 말이 아니네 토지는 말없이 조용히 그 자리에 있건만 사람들네가 들었다 놨다 제멋대로 울고웃고 하네 세월이 지나 저만치 다가오는 평온은 토지에게 맞기면서... 야속한 인심이 토지에 녹아 새생명 잉태하네작성자고구려(임현빈)작성시간13.07.04
결혼후 2년이 조금 지나 난생 처음 삼백만원이라는 거금을 만졌습니다. 3년만기 재형저축에 가입을 하였는데 기한이 도래한거지요.~~그런데 아버님이 나몰래 아내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군생활하시던 형님이 부산으로 갔는데 자리잡기가 힘든것 같으니 백만원정도 도와주었으면~~저는 회사에 출근하였고 아내에게 전달한 아버님은 집으로 가셨습니다. 정말순진한 아내는 제눈치만 보면서 어쩌면 좋겠냐고~~아내의 뜻을 물었지요. 그러더군요. "그래도 우리가 형편이 나은것 같으니 도와주자"고 하더군요. 돈이라면 한이 맺혔지만 그래도 돈 보다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후일 아내가 그러네요"아무래도 난 바본가봐 사람이욕심도~작성자고질라작성시간13.07.02
"지금 가진 맘 변치 말고 살아요. 아마 복받을 날이 있을겁니다." 그 어르신 덕분에 그나마 편히 집에 갔다지요. 후일 아내는 그럽니다. '자신은 바보가 아닌가 생각들때가 더러 있다구요'~~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같이 동행한 세살짜리 꼬맹이의 눈에 엄마가 어떻게 보였을까요? 말로 표현은 안하지만 반드시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한곳에 아주 견고하게 자리 잡았나 봅니다.~~8년정도 지나 아내는 애들만 데리고 친정에 다녀왔습니다. 장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는 관계로 감자, 호박, 고추,콩에 감까지~~열한살 큰애는 베낭에 감을 담아 지고 목에 걸고 양손에 들고 적당한 작은것을 동생에게 들으라 하고 엄마는 핸드백하나만~작성자고질라작성시간13.07.01
그무렵 고한에서 상동으로 가는길은 두가지 고한에서 열차를 타고 석항에서 내려 버스로 상동으로 가는것과 지금 골프장이 있는 고개를 넘어 걸어가는것~~아내는 두꼬맹이를 데리고 석항에서 두어시간 기다려 버스에 올랐답니다. 명절 밑이니 우리데 표현으로 '콩나물 시루'라고들 했지요.~~세살짜린 불편해도 참고 있었지만 업힌 꼬맹이는 악을 쓰며 울었다지요. 돌도 안된 애에게 "정운아 조금 참자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시면 좋아하실거야 안절부절"~~ 그때 자리에 앉아 계시던 나이지긋하신 어른께서 자리를 양보하시더랍니다.~~"애기 어머이는 큰 며느리요?""아닙니다 둘쨉니다.""명절에 다니자니 힘들지요?""어른들이 기다리니 가야지요"~작성자고질라작성시간13.07.01
그 당시 탄광은 상당히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쌀과 연탄은 광고가 필요치 않았지요. 목표량을 초과달성해도~~쌀과 무연탄은 일정량 수입을 하여야 하는 구조 추석연휴 3일전 야릇한 공고가 붙었지요~~연휴는 3일인데 추석전일 근무하면 100%를 추가지급한다는 종업원은 선택권이 있지만 직원은 무조건이지요~~아내는 혼자 장을 보고 기저귀 보따리에 작은애를 업으니 3살박이 큰애는 포대기 한끝을 잡고 따라갑니다.~~집에서 역까지는 약 3km 요즘처럼 콜택시는 없고 역앞의 다방에 연락하면 창문열고 전달~~당시 전화는 담뱃집에만 있는데 그냥 쓰기는 거시기하니 걷는겁니다. 2km를 지나서야 택시가 보이나 본전생각에 역까지 그냥 고~~작성자고질라작성시간13.06.28
큰애가 두돌이 보름쯤 남았을때 작은애가 태어났습니다. 주변에서 첫아들을 낳았으니 둘째는 딸이면 더 어울릴것 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아내는 딸도 좋지만 그래도 하더군요. 당시 부모님이 계신곳은 영월군 상동. 제가 근무하던곳은 정선군 고한 상동은 대한중석 이라는 굴지의 광업소가 있었지만 생필품등 물산의 모두가 자동차를 이용하여 운반되었고 고한은 무연탄 수송의 원활화를 위해 태백선이 개통되어 운행중이었으므로 대부분의 물건의 값도 싸고 흔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니 더러 집에 갈때 필요로 사는 물건을 그곳에서 사서 가져 가는일도 제법 있었지요. 작은애가 태어난지 약 9개월이 되어 추석명절이 임박하였습니다.~작성자고질라작성시간13.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