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성찰한 은둔시인 '디킨슨'과 20세기 작곡가 '코플랜드'의 만남
지난 11월 '현대 영미시(英美詩) 특강'은 두 번째의 강의로 영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삶과 시에 대해 몰입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디킨슨'의 주제는 '죽음과 사랑'이었다. 이는 현대 영미시 강좌의 전체 주제인 "사랑과 도시와 예술과 죽음"의 한 맥락(脈絡)이기도 하였다.
'디킨슨'은 비록 19세기를 살았던 시인이지만 그 난해(難解)함으로 인해 그 시가 현대시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하였다. 시인의 생애가 스크린에 소개되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1848년 촬영한 빛 바랜 한 장의 은판(銀板)사진(Daguerreotype)이었다. 단정한 옷매무새에 조상(彫像)같이 굳은 얼굴은 그녀의 삶과 시 세계를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안 교수님은 '디킨슨' 시인을 "American lyric poet who has been called 'the New England mystic'(뉴잉글랜드의 신비주의자로 불렸던 미국의 서정 시인)"이라고 소개를 하셨다.
이 날 소개된 '디킨슨'의 일곱 편의 시에서 죽음에 관한 시는 여섯 편, 사랑의 시는 한 편이었다. 조락(凋落)의 계절에 한 은둔자의 명징(明澄)한 죽음의 수사(修辭)를 듣고 읽으며, 잠시 삶과 죽음에 대한 사념에 빠졌다.
시인 '고은'은 그의 시 <문의마을에 가서>를 통해 죽음의 인기척은 마치 "먼 산이 너무 가깝도록" 삶 주변에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죽음을 "산봉우리 위에 안식이 깃들고 나뭇가지에도 바람소리 하나 없으며 숲 속의 새들도 잠든" 때에 찾아오는 친절한 안내자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에 '피에몬테'의 시인 '파베제(Pavese)'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으니 그대의 눈도 사라질 것이다"라고 그 허무함의 종말을 일러주었다. 요사이 김효근 님의 <내 영혼 바람되어>라는 노래가 여러 고독한 영혼들에게 애청되고 있다. "그 곳에서 울지 마오, 나 거기 없소, 이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오"라고 부르짖는 그 음성에는 연인을 잊지 못하고 죽은 이의 영혼이 승화(昇華)하여 바람이 되어서라도 영원한 사랑을 지키겠다는 애절한 소망과 한(恨)이 담겨져 있다.
'디킨슨'에 대한 개략적인 생애를 미국 웨슬리(Wesley)대학 박사 '대니얼 버트(Daniel Burt)'의 저서, <호모 리테라리우스(Homo Litterarius:Literary100)>'에서 인용하여 적어본다.
'에밀리 엘리자베스 디킨슨(Emily Elizabeth Dickinson,1830-1886)'은 미국 '메사추세츠(Massachusetts)'의 '애머스트(Amherst)'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변호사이자 '애머스트'대학의 재무 담당이었던 '에드워드(Edward) 디킨슨'의 세 자녀 중 막내였다. '에밀리'와 그녀의 여동생 '래비니아(Lavinia)'는 평생 동안 숙환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간호해야만 했다. '에밀리 디킨슨' 시대의 '애머스트'는 엄격하고 종교적이며 보수적인 약 500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로, 거기에서는 교회가 최고의 권위를 행사했다.
'디킨슨' 가족에게 아버지의 청교도적인 엄격함은 거의 교회에 필적할 만했다. 아버지처럼 변호사였던 '에밀리'의 오빠 '오스틴(Austin)'은 반항아였다. '오스틴'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개방적인 뉴욕 여자와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동생 '에밀리'에게도 금서(禁書)들을 몰래 전해주어 보다 넓은 세상에 눈뜨도록 해 주었다.
어린 시절의 '에밀리 디킨슨'은 활달하고 외향적이었다. 그녀는 '애머스트' 소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잠깐동안 '마운트 홀리요크(Mount Holyoke College)' 여자신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10대 때부터 점차 은둔하기 시작해서, 가끔 '보스턴'과 '필라델피아'를 방문하는 경우 외에는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마을에서 괴짜로 알려졌는데, 그 이유는 언제나 흰옷만 입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마저 피했을 정도이다.
그녀가 평소 집 안에서 한 일은 정원 돌보기와 온실 가꾸기, 또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재능을 인정받은 빵굽기 등이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으며, 극소수의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에밀리 디킨슨'은 칼뱅주의가 주기적으로 '애머스트' 지역을 휩쓸고 자신의 가족들을 끌어들이는 데 반대하여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다른 많은 것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종교적 믿음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에밀리 디킨슨'은 아버지의 법률 견습생 '벤저민 뉴턴(Benjamin Newton)'과 사랑에 빠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1848년에 그녀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던 벤저민은 명석한 자유사상가로, '에밀리 디킨슨'을 새로운 사상의 세계로 안내했다. 하지만 그는 가난하여 결혼할 수 없었고, 1853년 결핵으로 사망했다.
'에밀리 디킨슨'의 또 다른 애정 상대로 여겨지는 인물은 '찰스 와즈워스(Charles Wadsworth)' 목사이다. 1854년, 그녀는 당시 워싱턴 의사당에서 의원으로 활동중인 아버지를 방문하러 가던 중 '필라델피아'에서 '와즈워스'를 만났다. '와즈워스'는 비록 기혼이었지만 계속 정기적으로 '디킨슨' 가족을 방문하다가, 1862년 캘리포니아에 일자리를 얻어 떠나갔다. 그러자 '에밀리 디킨슨'은 수많은 시를 통해 개인적인 위기와 감정의 혼란에 대해 묘사했다.
'에밀리 디킨슨'의 삶의 궤적은 그녀의 시처럼 신비스러운 일면이었다. 그녀는 아주 개인적인 세상, 즉 가정 속에 칩거해 지냈기 때문에 고향 '애머스트'에서 '신화'로 알려졌다. 그녀가 창작을 한다는 사실은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 몇 명만 알고 있었다. 그나마 그 시의 범위와 수준을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에밀리 디킨슨'이 사망한 뒤 1,775편의 시가 그녀 화장대의 잠겨진 상자 안에서 발견되었다. 비록 그녀의 시 모음집이 출판된 것은 1890년대였지만, 진정한 완성본이 나온 것은 1955년이었다. 이 때 비로소 '에밀리 디킨슨'은 매우 위대하고 혁신적인 세계적 시인 중 한 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고립된 삶을 살았지만, 시를 통해 혼돈의 깊이와 다른 작가들이 다루지 못한 본질적 문제에 대한 탐구를 하였다. 극적인 갈등과 거대한 사건들은 그녀의 예술 속에서 녹아 흐른다. 이는 "영혼은 언제나 열려 있어서 황홀한 경험을 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을 잘 반영해 준다.
'에밀리 디킨슨'의 묘지
이 '디킨슨'의 시 열 두 개를 가려 내어 미국의 현대음악가 '아론 코플랜드'가 연가곡집으로 작곡하였다. '아론 코플랜드(Aaron Copland:1900-1990)'는 20세기 미국 음악의 아이콘과도 같은 작곡가였다. 그는 거의 독학으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한 천재였으며 프랑스에 유학하여 그 곳에서 장학금을 받은 첫 미국학생이었다. 그 곳에서 그는 최초의 여성지휘자였던 '나디아 블랑제(Nadia Boulanger:1889-1979)'선생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당대 최고의 유럽 작곡가들과 교류를 하였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뒤 <애팔래치아 산지의 봄:Appalachian Spring>, <멕시코의 살롱에서:El Salon Mexico>, <링컨의 초상:Lincoln's Portrait> 등의 미국적 색채가 듬뿍 배어난 작품들을 발표하여 대중으로부터 호평과 갈채를 받았다. 그는 여러 작곡가들과 함께 미국 음악학파를 만들었는가 하면 미국 인문학회의 대표를 역임하였다. 그는 83세까지 지휘와 작곡, 저술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다가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코플랜드'는 성악곡을 매우 비중있게 생각하여 생전에 마흔 곡의 작품을 남겼다. 그가 지은 유일한 연가곡인 <에밀리 디킨슨의 12편의 시:Twelve Poems of Emily Dickinson>은 그가 50세 때 작곡된 곡으로, 1950년 5월에 컬럼비아 대학의 <제 6회 현대음악 축제>에서 초연되었다. 총 연주시간은 28분 남짓으로 메조 소프라노와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다.
'코플랜드'는 '디킨슨'의 시 중에서 열 두편을 골라 엮어 연가곡을 만들었는데, 각각의 곡은 작곡가가 평소에 두터운 친교를 나누었던 열 두 명의 친구들에게 헌정되었다.
No. 12, The Chariot Because I would not stop for Death,
We slowly drove- He knew no haste,
We passed the School, where Children played,
We paused before a House that seemed
Since then- 'tis Centuries- but each |
제 12곡, 마차 죽음을 맞으러 내가 멈출 수 없기에,
우리는 천천히 나아갔고- 그는 급한 일이 없었다,
우리는 지나갔다, 아이들이 놀고,
우리는 잠시 머물렀다
그 이후 몇 세기- 그러나 세월은 |
그의 연가곡 작품의 마지막 곡인 "마차(The Chariot)"는 가사의 첫 소절을 제목으로 정한 다른 곡과 달리 따로 제목이 붙여졌다.
'디킨슨'의 시 목록에서 712번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그녀가 남긴 시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시에서 디킨슨은 죽음을 갑작스런 정신적 충격의 경험으로서가 아니라 점진적인 삶의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죽음은 오후의 마차여행에 초대하는 친절하고 정중한 신사로 묘사되고 있다.
원시(原詩)의 세 번째 연 "Or rather- He passed Us-(아니 오히려-해가 우리를 지나가-)"은 악곡에서 제외되었고 여러 낱말들이 바뀌어져 있으나, '디킨슨'의 시가 지니는 원래의 정조(情調)를 크게 해치지 않고 있다.
곡은 올림바단조의 "With quiet grace(지극한 우아함을 가지고)"의 악상으로 시작된다. 오보와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아름다우나 온화함과 쓸쓸함이 어우러진, 미묘한 분위기이다. 전주부의 선율과 리듬은 이 곡의 제목 '(저승으로 가는) 마차'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특히 반주부의 육중한 ' 리듬이 분위기를 더욱 북돋운다. 이어서 바퀴가 굴러가는 것이 연상되는 유연한 첫 선율-"미파라 레레 도도 시(Because I Would not stop for Death)"-이 나타난다.
제 2연에서 곡의 리듬은 시의 내용 "We slowly drove-(우리는 천천히 나아갔고-)"를 반영한 듯 약간 느린 걸음으로 바뀐다. "For His Civility"에서 선율은 강조된 후 현악 합주가 멜랑콜릭하게 이어진다.
다시 원래의 빠르기로 돌아와 악곡은 제 3연을 노래한다. 이 부분에서 선율과 리듬은 세 번 연거푸 바뀌는데, 이는 반복되는 시어 'passed'를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한 것이다. 즉, 가사가 'passed school'-'passed fields'-'passed sun'으로 바뀌면서 그 리듬이 로 느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과정이 '청년기→장년기→노년기→eternity(영원)'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 시에서 표현된 삶의 공간적/시간적 개념의 추이가 음악에서 보다 더 효과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안 교수님은 이 부분을 '인간'→식물(자연)→우주(천상)'의 차원으로 해석하였다.
제 4연은 마차가 무덤의 봉분(封墳)에 멈춰지는 것을 묘사하며 악곡의 진행도 이에 따라 극적으로 진정되고 있다. 도약이 큰 음침한 선율 속에 죽음의 냄새가 배어 나온다.
제 5연은 자신이 묻힌 지 수세기가 흐른 때를 묘사하고 있다. 템포가 아주 느려져 영원을 고하듯 진행되어 내세에 대한 관조적인 태도가 느껴지고 있다. 노래 선율은 부점(附點) 리듬을 사용해 죽은 뒤의 수세기(Centuries)가 영원(Eternity)으로 향했던 당시의 하루(the Day)보다 짧게 느껴지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윽고 곡은 영원한 내세로 떠나버린 전차를 바라보듯 조용하게 여운 가득히 사라진다.
'디킨슨'이 이 시를 지은 때가 1863년, 시집이 출판된 때가 1890년이었다. 그리고 같은 국적의 음악가'코플랜드'가 연가곡을 발표하였던 때가 1950년이었으니, 자그만치 9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이루어진 두 예술가의 조우(遭遇)인 셈이다. 그런데 '코플랜드'의 가곡은 이 시의 미묘하고 어두운 정황을 매우 잘 표현해 내고 있어 흡사 작곡가가 시인을 마주하고 이 곡을 지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디킨슨'이 성찰한 죽음과 영원의 사념들이 '코플랜드'의 곡조에서 다시 부활한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삶과 존재의 치열한 긍정"이라는 말이 있다. 이 상실과 무상의 계절에 '디킨슨'과 '코플랜드'가 전해주는 인생의 메시지를 가슴속에 새겨 볼 일이다.(*)
(연주자) 소프라노 바바라 핸드릭스(Barbara Hendricks)
마이클 틸슨 토머스(Michael Tilson Thomas) 지휘, 런던 심퍼니 오케스트라
음악링크 http://blog.daum.net/dalsol/478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