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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OSHO> 신의 또다른 속성

작성자작약|작성시간12.07.04|조회수41 목록 댓글 1

<질문 : 당신은 '신은 공평무사하고 순수한 에너지다. 신은 인간의 삶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인간의 삶에 대해 어떠한 의무도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카트 우파니샤드(Kath Upanishad)에는 '신은 그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의 이러한 편애는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실, 나는 신이 그대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만일 신이 그대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면 그대는 애당초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신이 그대에게 무관심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신은 그대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는 그의 일부기 때문이다. 그대는 신의 연장이다.

 

내가 말한 의미는 신이 그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신이라는 에너지가 그대를 위해 자신의 법칙을 어기는 일은 절대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신은 그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그대가 돌로 자신의 머리를 치면 당연히 피가 흐를 것이다. 자연은 그대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머리를 돌로 쳤을 때 피가 흐르는 것은 신이 그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신의 법칙이다.

 

그는 법칙을 어기면서까지 그대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그대가 물에 빠져 익사할 때도 자연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대의 익사가 자연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그대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익사하기로 되어 있다면 신은 그대를 구원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신은 그대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지붕 위에서 떨어지면 그대는 골절상을 입을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자연은 그대가 골절상을 입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의 기호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르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프랄라드는 불 속에서도 타지 않았고 산에서 떨어졌을 때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원한다.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 주기를 원한다. 우리는 신의 주된 관심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에너지는 항상 법칙에 따라 작용한다. 우리 인간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인간은 편파적일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는 항상 공평무사하다.

 

공평무사함이 그의 유일한 관심사다.

 

그러므로 신이라는 에너지는 법칙에 따르는 일은 무엇이든지 할 것이며,

 

법칙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신의 입장에서 기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카트 우파니샤드의 구절에 대해 말해 보자. 이 구절의 의미는 그대가 생각하는 바와 사뭇 다르다.

 

카트 우파니샤드는 이렇게 말한다.

 

"신은 그가 선택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만난다. "

 

당연히 그대는 신이 어떤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실, 이런 것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진리를 표현할 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에 도달한 사람들은 반드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의 노력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티끌보다 못한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에 도달한다. 우리가 수행했다 해도, 우리가 얻은 이 엄청난 보물에 비하면

 

그 수행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우리의 노력과 우리가 얻은 보물을 비교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그 깨달음이 노력의 결과로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신의 은총이었다. 신이 우리에게 축복을 내려 준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를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말한다. 이것은 무아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노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거대한 것을 얻었음을 안다.

 

그러나 그것을 얻지도 못한 사람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깨달은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옳다. 그의 말에는 분명한 느낌이 들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누구기에 그것을 얻는다는 말인가? 그것이 우리의 힘이며 능력이었던가? 그것이 우리의 권리였던가? 아니다.

 

우리가 신을 만난 것은 순전히 신의 자비다. 그가 우리를 축복해 준 것이다. "

 

 

신에 도달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들이 말하는 뜻은, 그들은 자신이 얻은 것을 노력의 결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에고에 의해 성취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선물이고 은총이다.

 

 

그들의 말은 옳다. 그러나 카트 우파니샤드를 읽을 때 그대는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카트 우파니샤드뿐만 아니라 어떤 경전을 읽든 그대는 큰 곤경에 처할 것이다.

 

 

경전은 앎에 도달한 사람들의 말이다. 그런데 앎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 경전을 읽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해한 데로 해석하고 이렇게 말한다.

 

"좋다, 신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난다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사람들만 선택한다면,

 

우리가 걱정해 봤자 무슨 소용인가? 모든게 신의 뜻이라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무아의 경지에 든 사람들의 선언이 우리의 나태함을 합리화시키는 방패막이 된다.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다.

 

깨달은 사람이 겸손함과 무아의 경지가 우리의 우둔함과 게으름을 정당화시키는 보호막이 된다.

 

"신은 자기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자기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노력해 봤자 무슨 소용인가?"

 

 

성 어거스틴(Saint Augustine)의 말 중에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신은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만일 이런 식으로 신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어떤 사람은 좋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나쁘게 만들었다면

 

이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다. 그렇다면 그는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그대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성 어거스틴이 실제로 의미한 바는 전혀 다르다.

 

그는 좋은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자만하지 말라. 신은 자신이 원했기 때문에 좋은 사람들을 만든 것이다. "

 

그리고 그는 나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비통해 하지 말라. 절망하지 말라. 신은 자신이 원했기 때문에 악한 사람들을 만든 것이다. "

 

 

그러나 나쁜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그런 식이라면 나는 아무 책임이 없다. 내가 악한 것은 신의 책임이다."

 

좋은 사람 또한 태만해진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신은 자신이 선택한 바에 따라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들었다."

 

그의 삶이 무의미해지고 정체된다. 이것이 모든 경전이 세상에서 해온 일이다.

 

 

경전은 깨달은 사람들의 말이다. 앎에 도달한 사람들은 경전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경전을 읽는다. 이 때 그들은 실제의 의미와 정반대로 이해한다.

 

우리가 깨달은 사람들의 말에 부여한 의미는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지 실제의 의미가 아니다.

 

 

나는 두 종류의 경전이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깨달은 사람들의 말은 따로 보존되어야 하고,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경전이 있어야 한다.

 

깨달은 사람들의 말이 들어 있는 경전은 무지한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숨겨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기에 자신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고, 모든 것이 왜곡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깨달은 사람들의 모든 지혜가 왜곡되었다. 내 말을 이해하겠는가?

 

 

-OS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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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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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작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7.04 저도 저라는 틀내에서 모든 것을 인식하다보니 많은 정보들이 제 안에서 부딪히는 것을 느끼고 있고 오해를 하는 측면도 많은 것 같아 항상 뜨끔한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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