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성찰글쓰기에 크게 기여하셨으며 선도회 지인이신 <월간금강> 기자 이강식 선생님께서 지난 1년간 한국의 멋진 정원의 인연이야기와 풍광을 담은 ‘별서정원, 자연에 귀의하다’ 연재를 하셨었는데, 아쉽게도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치신다고 합니다.
5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소치 허련 선생 가문에 관한 글을 접하고 ‘인향만리人香萬里’에
‘인향만대人香萬代’란 사자성어까지 함께 살피고자 소개를 드립니다.
군더더기: 알고 보니 소치 선생 가문은 그림만 잘 그린 것이 아니라 ‘간화선看畵禪’의 전통을 이어가며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통보불이洞布不二’의 ‘가풍家風’을 널리 선양하고 있었네요.
아울러 이 지면을 빌어 두루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 주신 이강식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22년 12월 19일 어려움이 없는 곳[無難軒]에서 거사 법경法境 합장
<월간금강> (2022년 11·12월호):
별서정원, 자연에 귀의하다6_진도 운림산방
글·사진 이강식 기자
남종화 대가 허련 낙향
산사와 어우러지게 조성
화맥畵脈 5대째 이어져
(上略)
운림산방 화맥 5대까지 계승
소치는 추사를 통해 당대의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했다. 36세 때인 1843년에는 추사의 소개로
전라우수사 신관호(申觀浩, 1810~1884, 신헌(申櫶)으로 개명)와 교유하며 그림을 그렸고,
39세 때에는 신관호를 따라 한양으로 올라가 영의정 권돈인(權敦仁, 1783~1859)의 집에 머물면서
헌종에게 그림을 그려 바쳤다. 또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정약용의 아들 정학연(丁學淵)과
민승호(閔升鎬)·김흥근(金興根)·정원용(鄭元容)·민영익(閔泳翊) 등과도 교유했다.
소치는 1853년 해남 대흥사로 가서 초의선사를 다시 만나고, 1855년 스승 추사와 조우한다.
소치는 산수는 물론이고 인물·모란·매도 잘 그렸다. 이 중 특히 모란을 잘 그려 ‘허모란’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대표작으로는 스승 추사를 그린 ‘완당선생초상도’를 비롯해 ‘선면산수도’·‘방예운림죽수계정도’·
‘방황자구벽계청장도’·‘노송도’·‘노매도팔곡병’·‘모란도’ 등 다수가 전한다.
소치 허련으로부터 시작된 운림산방의 화맥은 소치의 아들 미산(米山) 허형(許瀅),
손자 남농(南農) 허건(許楗) 등을 이어 5대까지 이어진다. 전 세계 화맥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소치기념관 1·2관을 둘러보고 야외벤치에 앉아 운림산방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직장에서 바라보았던 운현궁의 사계(四季)가 떠올랐다.
소치는 흥선대원군이 머물렀던 운현궁에 자주 드나들었다. 운림산방 취재를 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사실이었다.
어떤 인연의 사슬에 얽혀 소치의 공간을 찾게 됐을까? 서울로 돌아와 다시 운현궁을 바라보았다.
시·공간을 걷어내니, 갓을 쓴 소치가 운현궁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도포자락 휘날리며 걸어가는 그의 뒤태는 당당하고 위엄이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선비의 자태, 대가의 고고한 기운이 느껴졌다.
서울과 진도에 남은 소치 선생의 향기는 지금도 그윽했다.
그의 향기가 각박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운림산방을 끝으로 ‘별서정원, 자연에 귀의하다’ 연재를 마친다.
- 기사 본문에서 발췌
기사 전문자료: 별서정원, 자연에 귀의하다6_진도 운림산방
남종화 대가 허련 낙향
산사와 어우러지게 조성
화맥畵脈 5대째 이어져
- <월간금강> 이강식 기자 (2022년 11·12월호)
http://www.gg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121
운림산방 풍광 자료
https://www.jindo.go.kr/tour/sub.cs?m=10
[재능의 냉정한 대물림] 소치 허련 家의 자녀 교육
- <위드인뉴스> 최효찬 (2016년 04월 11일)
http://www.withinnews.co.kr/m/content/view.html?no=9157
베풂은 미래를 위한 저축
소치가가 5대째 화가를 배출해 온 또 다른 비결은 ‘베풂’이다.
베풂은 부모가 먼저 실천해야 그 자녀에게 언젠가는 돌아가는 미래를 위한 저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남농은 생전에 ‘그림 적선’을 잘하는 화가로 통했다.
먼 곳에서 그림을 얻으러 온 사람들로 늘 사랑채가 북적였을 정도였다.
- 본문에서 발췌
원문은 선도회(선도성찰나눔실천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통찰과나눔/통보선 - 자연에 귀의하다6_진도 운림산방/ 이강식 기자 (<월간금강>)> (seondoho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