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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감상실

[詩]국수 / 강 순

작성자박오은(소교)|작성시간25.02.21|조회수28 목록 댓글 0

 

국수

 

                                                                         강 순 

한밤의 허기를 두 손에 받쳐 든다

풀리지 않는 인생 함수처럼

국수 한 그릇이 숙제 같은 새벽 두 시

 

치매 앓는 여자처럼 심신이 늘어진 국수가

자신을 국물에 던져 놓고 사람 속을 읽는다

 

기억을 중심에 두고 악몽을 통과하다 보면

그동안 먹어 치운 국숫발처럼

 

맛있었던 이들과 사라진 이들

행복했던 골목과 사라진 집들

사라진 것들은 이유가 모호해서

햄릿을 사랑한 오필리아가 강물에 빠진 기분

 

어제 속에 녹아든 기억들은

악몽과 망각의 경계에 있어

뜨겁게 여러 번 토렴해야 겨우 이해되는 영역

 

그저 젓가락으로 몇 번 하릴없이 휘저으면

미련을 증명하는 누추한 단서나 되지

 

방어벽도 없이 허물어지는 기억 속에

떠난 이와 남겨진 나를 골라내어

 

가슴팍 비밀을 양념 치듯 몇 번 더 휘저으면

나는 당신에게 다정한 한 끼가 될 수 있을까

 

도로 쏟아부을 수 없는 시간처럼

불어 터진 면발들이 입 안에 가득할 때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궁휼의 맛이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은 아니라고

수십 번을 속으로 되낸 후에야 그릇이 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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