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립선생 묘 및 신도비(고양시 향토유적 20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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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립/박세영선생 묘역 입구에는 정종대왕 빈궁(숙의윤씨)이라는 큰 돌표석이 있습니다. |
박대립(朴大立)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중종 7년(1512)에 출생하여 선조 17년(1584)에 돌아갔다. 자는 수백(守伯), 호는 무위당(無違堂)이며 본관은 함양(咸陽)으로 돈령부정(敦寧府正) 세영(世榮)의 아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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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입구 모습입니다. |
▲ 표석 측면에는 숙의윤씨 소생 5명(4남 1녀)의 이름도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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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박씨 세장지 비석 |
▲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박대립선생 신도비와 재실이 있습니다. |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중종 35년(154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양주의 교수(敎授)로 나갔다. 후에 태상참봉(太常參奉)이 되고 형조좌랑으로 재임한 당시에는 정실관계로 수 십 년 묵은 송사를 판서에게 항변하여 종결지음으로써 영의정 심경원(沈庚源)의 추천을 받아 지평(持平)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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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립선생 신도비 모습 |
▲ 새로 지은 재실(2009.10.31. 준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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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실 우측 방향에 다른 신도비가 있어서 가 보니 박세영선생 신도비와 한글로 풀이한 신도비가 있었습니다. |
그 뒤 대사간, 함경도 관찰사, 대사헌, 동지경연사, 개성부유수 등을 역임했다. 선조 12년(1579)에는 이조참판에서 형조판서로 특진 이조, 호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이 되었으며 선조 15년(1582)에는 판의금부사를 겸임하고, 이어 판돈령부사를 지내고 다시 우찬성을 역임했으며 좌찬성으로 치사(致仕)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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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비 뒷편에 박세영선생 묘역이 있는 줄 알았는데, 박세영선생 아들인 박대립선생 묘역이 있었습니다. |
오금동에 남향으로 정경부인 장수 황씨(長水黃氏)의 묘와 합장되어 있다. 묘 앞 중앙에는 대리석의 묘비와 상석, 향로석, 동자석 그리고 좌우에는 문인석, 망주석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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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립선생 묘역 전경. 주변에서 박세영선생 묘역을 찾았으나 결국은 찾지 못하고... 가까이에 있기는 있을텐데... 다음 기회에... |
숙종 18년(1692)에 입석한 신도비는 팔작 지붕형의 옥개와 운문이 조각된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다. 비문은 이정귀(李廷龜)가 글을 짓고 권규(權珪)가 전을, 5대손 경후(慶後)가 글을 썼는데 규모는 높이가 170cm, 폭이 70cm, 두께 21cm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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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내 문인석 모습 |
▲ 박대립선생 묘역 뒤에서 바라 본 모습 |
함양박씨 묘역 세장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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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박씨 묘역 세장도는 함양박씨 관련 홈페이지에서 가져 왔습니다.
▶ 좌측 세장도에서 우측 초입에 박대립선생 묘가 있으며, 선생의 부친인 박세영 묘는 세장지 우측 상단 부분에 있네요... |
함양박씨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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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산120-1 화살표 ↑ 위치에 박대립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