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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는 6세에 즉위했다. 함풍(咸豊)의 유일한 아들로 서태후(西太后) 소생이었다. 서태후는 아들이 황제가 되는 바람에 태후가 됐지만, 함풍이 8명의 대신에게 동치를 보좌하게 했기 때문에 실권은 없었다. 서태후는 시동생인 공친왕(恭親王)과 순친왕(醇親王)을 동원해 고명대신들을 제거하고 수렴청정을 폈다.
동치는 19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형제 중에서 황위 계승자를 정해야 했지만 서태후는 순친왕의 둘째 아들로 갓 3세를 넘긴 짜이톈(載<6E49>)을 황제로 지명했다. 청의 11대 황제 광서제(光緖帝)다. 서태후는 수렴청정에 복귀했다. 광서는 황제의 아들이나 동생이 아닌 사람 중에서 최초로 황제가 된 이다. 또 황제로 세상을 떠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의 재위기간은 34년이었지만 친정은 중간 10년에 불과했다. 마지막 10년은 감금 상태였다. 광서는 1908년 서태후보다 하루 먼저 세상을 떠났다. 서태후는 광서의 동생이며 순친왕을 계승한 짜이펑(載豊)의 아들 푸이(溥儀)를 황제로 지명하고 세상을 떠났다. 짜이펑은 아들이 황제가 된 이후 1911년 혁명으로 청이 멸망할 때까지 섭정왕이었지만 혁명에 저항하지 않았고, 푸이가 괴뢰 황제로 있던 만주국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 덕에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어느 정도 대접을 받다가 1951년 세상을 떠났다.
개국 황제들은 자기 분수가 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되는 일은 없어도 큰소리부터 치고 보는 건달기와 용의주도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들이었다. 시세를 꿰뚫어 볼 줄 알고 판단이 서면 차마 못할 짓도 거리낌없이 해치워버리는 비범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온갖 풍상을 다 겪은 그들이 꿈에도 생각 못했던 것이 있다면 어린 황제와 수렴청정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