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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

Byron의 어떤 시를 읽다가…

작성자Jane|작성시간07.11.06|조회수285 목록 댓글 8
I Live Not in myself

from Childe Harold, Canto iii, Verse 72

I live not in myself, but I become
Portion of that around me; and to me
High mountains are a feeling, but the hum
Of human cities torture: I can see
Nothing to loathe in nature, save to be
A link reluctant in a fleshly chain,
Classed among creatures, when the soul can flee,
And with the sky, the peak, the heaving plain
Of ocean, or the stars, mingle, and not in vain.

(George Gordon Lord Byron)



나는 내 안에 살지 않고

<해럴드 공자의 편력> 중에서, 캔토 3, 시 72

나는 내 안에 살지 않고
내 주변의 일부가 된다.
내게 높은 산은 하나의 감동이다.
허나 인간 도시 소음은 괴로움
자연엔 싫어할 것이 없다.
내키지 않게 육체의 사슬에 묶여
피조물에 속해 있지만, 영혼은 달아나
하늘이며, 산정이며, 굽이치는 대양,
혹은 별들이랑 뜻 깊게 어울린다.

(조지 고든, 로드 바이런/ 손현숙 역)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나는 왜 다리도 불편하면서 바이런이 산에 올랐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두 다리가 건강한 사람도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은 힘들어 피하게 되는데…
“내키지 않게 육체의 사슬에 묶여 피조물에 속해 있지만, 영혼은 달아나 …” 아마도 이것이 그 답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면서 어떤 한 사람이 떠올랐다.

대학원 때 몇몇 사람과 함께 한 가정집에서 ‘맹자’를 공부한 적이 있었다. 한문이 높으신 큰언니 시누이의 시어른이 당신 아들 둘과 큰며느리, 아들 후배 두어 명과 며느리의 후배 세 명을 가르치시는 공부방에 내가 합류한 것이었다. 국사학과 대학원과 유학과, 중문과 다니는 사람도 있었으니 그때 처음 한문 공부를 시작하려했던 내겐 무리였을 수도 있었으나, 공부가 끝나고 먹는 국수 맛도 좋았고 분위기가 좋아 꾸벅꾸벅 졸면서도 너댓 달 열심히 다녔다.

거기에서 만난 언니 시누이의 후배 한 명이 사람이 푸근하고 좋아 얘기를 많이 하였다. 어느 날, 그 언니가 자기 동생과 친구들하고 나와 내 친구들하고 미팅 주선을 하였다. 마침 그 언니의 남동생과 짝이 되었는데, 키가 좀 작긴 했으나 검은 뿔테 안경에 차분하고 따뜻한 성품인 것이 나의 이상형이었다. 그 몇 년 전부터 얄상한 금테 안경이 나와서 인기를 끌었는데도 난 그때까지 무난한 뿔테 안경을 낀 사람을 이상형으로 마음에 품고 있었다. 거기에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물리학’ 전공의 대학원생이었으니 …

취미가 등산과 사진이라 하였다. 종종 만나며 데이트를 하였는데, 아무래도 내 나이가 결혼 적령기이다 보니 신경이 쓰였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집안도 별로 넉넉지 않은 듯했다.
원래 나는 데이트하는 사람은 결혼대상자로 염두에 두기 때문에 너무 가난하거나 첩의 자식이거나 하는 등 부모님이 반대할 만한 악조건을 가진 사람은 되도록 피하는 편이었으나, 이 경우는 큰 결격사유는 없되 부모님께는 그리 매력적인 혼처는 아닐 듯싶었다.
그런데 마침 그 사람이 나온 고등학교의 교장과 아버지께서 비교적 친한 분이셨기에, 화려한 생활기록부의 성적을 보면 아버지께서 혹여 마음이 움직이실까 싶어 고교 생활기록부를 한 번 볼 수 있으면 보시라고 하였다.

아,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보여주신 그 사람의 생활기록부에는 ‘소아마비’라고 적혀 있었다. 난 너무 놀랐다. 그 동안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부모님은 완강히 반대하셨다. 지금은 별로 불편함이 눈에 안 띄어도 나이가 들면 많이 불편해지고 다른 건강에도 지장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 몹시 심한 소아마비인 어떤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 예를 들며, 그 아저씨의 부인도 아저씨가 다리 불편한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결혼했다는데 오늘날 어떻더냐 하면서, 굳이 오랜 연애도 아니니 만난지 얼마 안 된 이때에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유심히 보면 빨리 걷거나 버스를 잡으러 뛸 때 아주 약간 불편한 것이 보였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용인하면 내겐 별로 문제될 것이 없는 사항이었다. 그러나 결국 난 부모님께 버티지 못하고, 궁합이 좋지 않다는 이유 아닌 이유를 대고 그 사람과 서로 아쉬운 만남을 끝냈다.

1년 후쯤 지났을까, 어느 날 교보문고에서 책을 막 사서 들어오니 그 사람의 전화가 왔다. 지금 막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전화했다고 잠깐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집 근처 찻집에서 그 사람은 교보문고 앞에서 내가 자기가 타고 있는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고 반가워서 계속 눈길을 떼지 않았는데, 내가 그저 창밖만 쳐다보며 전혀 다른 쪽에 시선 한 번 안주더라고 했다.
그리고 곧 전액장학금 받고 아이비리그의 모 대학에 유학 간다고 하였다. 만나는 분 있냐고 묻길래, 마침 지금의 남편과 만나고 있었으므로 그렇다고 했더니 나와 결혼하는 분은 너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참 고맙고 잊히지 않는다. 그 사람도 나를 만나는 동안 좋은 느낌을 가졌던 것이 고마웠다. 지금쯤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어디에서 대학교수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사람의 부인도 좋은 남편 만나 참 행복할 거라는 생각도 하고 …

지금도 그 사람은 사진을 취미로 하고 여전히 산에 오를까?
아마 그러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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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Jan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11.06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한 반에 두어 명씩은 소아마비 학생들이 있었지요. 이젠 전세계적으로 소아마비가 거의 보고되지 않는답니다. 소아과 의사들이 예방에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래요. 우리 부모님 세대는 천연두로 얼굴이 얽으신 분들이 많지만, 그 역시 백신이 큰 역할을 해서 저희 세대엔 얽은 사람이 없죠
  • 작성자Jan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11.06 친한 친구가 대학 1학년때부터 7년 이상 서울 법대생과 연애했었어요. 저희 친구들이 축제 파트너 조달 미팅도 많이 부탁해서 친했지요. 너무 좋은 분인데, 제 친구가 직장에서 만난 동료와 결혼을 했어요. 그것도 학벌도 그저그렇고 심한 소아마비 장애가 있는 분과... 결혼식에 왔던 친구들은 신랑이 다른 사람인 것에
  • 작성자Jan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11.06 깜짝 놀랬대요. 친구가 대학 졸업 후에 들어간 직장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마음이 많이 흔들렸었나 본데, 우리들에게 거의 언질을 주지 않아 몰랐죠. 하기는 제 이야기를 그때 듣고 친구가 보인 반응은 "소아마비가 뭐 어때서?"였거든요. 법대생이 친구 맘을 돌리려 애썼건만... 그 친구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 작성자은물결 | 작성시간 04.11.06 존 키팅(John Keating) 선생님도 "We must constantly look at things in a different way"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왜 그렇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꾸준한 성찰이 필요한 것 같아요.
  • 작성자은밤 | 작성시간 07.11.06 2005.03.21 21:26 (사랑방 게시판에 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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