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들 가운데 듣기 좋은 말과 듣기 싫은 말이 있습니다. 듣기 좋은 말은 퍽 아름답게 들리고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합니다. 그러면서 말하는 사람에 대한 인상이 퍽 곱고 우아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듣기 싫은 말은 무척 거칠면서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말하는 사람의 인품이 유치하고 상대할 기분이 나지 않게 합니다.
듣기 좋은 말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싫증나지 않고 유쾌하기만 합니다. 이와 같이 말속에는 그 말의 뜻과 그 말의 운율이 있습니다. 듣기 좋은 말도 차분하고 조용하게 설득력 있게 할 때 우리의 귀는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좋은 내용의 뜻을 전하기란 이와 같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詩의 말」이라는 말과 「보통의 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시에는 시에만 쓰이는 말이 있고 보통으로 쓰이는 말에는 또 따로 보통의 말이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시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사람이 하는 말에는 대단한 창의성이 있어서 그 말의 구분은 어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만 어번(Urban)이라는 학자는 과학의 언어 형태가 추론적이지만 시적 언어 형태는 원초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리챠즈(Richards)라는 학자는 과학적 인식적 언어 용법과 시적 정의적(情意的) 언어 용법으로 나눈다고 하면서 시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언어적 요소를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말뜻(sense)이고, 둘째 느낌(feeling)이며, 셋째 어조(tone), 그리고 넷째 의도(intension)라고 했습니다. 다만 이러한 시의 언어적 요소를 지니기 위해서는 정의적 용법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부언을 달고 있습니다. 랭그(Langer)라는 학자는 비추리적 상징 형태의 시의 언어와 추리적 이성의 산물인 외연적 담화라는 말로 구분하였습니다.
이들 세 학자의 말은 바로 시의 말과 보통의 말을 구분해 보려는 노력입니다. 다만 그 구분상의 표현 형식과 생각과 인식의 형식이 다를 뿐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라는 말에는 동감을 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이 좀 어려운 상태로 들어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잠깐만이라도 눈을 돌려보십시오. 이런 두 가지 형태의 말 법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고 그 버릇 또한 많이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볼까요. 한 학생이 교실 문을 밀며 들어 왔습니다. 헐레벌떡 숨을 몰아내면서
- 큰일났어 숙이가 사고를 냈어.
- 뭐? 무슨 사고?
- 자전거를 타다 아이를 치었어.
- 많이 다쳤니?
- 다리가 부러졌대.
- 많이?
- 다리가 풍선처럼 부었어.
자. 여러분 이 말에서 어디에 시적인 말이 있고 보통의 말을 구분 할 수 있을까요. 다리를 다치게 한 숙이의 사고 소식과 다리를 다친 아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말들 속에는 보통 우리가 일상으로 하는 말 같으면서도 뭔가 좀 색다른 감정적인 느낌을 나타낸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일 끝에 한 말입니다.
- 다리가 풍선처럼 부었어.
라고 말한 것은 분명히 그 앞의 다른 대화보다는 다른 감정과 느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리가 <풍선>이라는 바람이 가득 찬 상태와 같이 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말 앞의 대화에서는 그러한 것이 없습니다. 단순한 사건의 보고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나타낼 때 그것은 시의 말이 되는 것입니다.
- 다리가 부었어.
라는 말과
- 다리가 <풍선처럼> 부었어.
라는 말은 분명히 <풍선>이라는 사물에 빗대어 느끼는 감정이 곁들어 한결 그 상상을 불러 일으키게 하여 주고 있습니다. 다리가 부은 것이 풍선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마는 그 말하는 사람이 부은 다리를 보는 순간 그 많은 과거의 느낌이나 체험 가운데서 하필이면 풍선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풍선과 다리는 사실 아무 상관이 없고 비슷한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의 말이라는 것은 시인이 체험하고 보고 느꼈던 이전의 모든 것, 많은 것들이 교묘하게도 하나의 그리고자 하는 글 속에 튀어 떠오르게 되고 그 유사성을 찾고야 마는 것입니다.
수석(水石) 채집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돌 채집을 하려 북한강이나 남한강으로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한 개의 추상석을 만났을 때 그 일행들의 표현은 무척 인상적인 상상을 합니다.
- 야, 그것 새의 머리야,
- 달마를 닮았군.
- 웃는 얼굴인데.
이런 대화를 듣게 됩니다. 이들의 대화는 사실 웃기는 말들입니다. 한 개의 돌이 분명한 데 이 추상적인 돌에다가 그들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돌과 무엇을 비유하여 이를 말해 버립니다. 말하자면 <새><달마> 얼굴>은 돌이라는 사실적인 말 대신에 새롭게 가져온 시의 말을 부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규보 선생은 그의 《백운소설》이라는 책에서 "무릇 시란 그 뜻을 주로 삼는다. 뜻을 세움이 가장 어려운 일이고 글로 엮는 일은 그 다음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뜻을 세운다라는 말에는 그 의상의 장식적인 뜻이 있습니다. 말에 어떤 의미의 장식을 꾸며 보자는 데 있는 것입니다.
어떤 글이든 그 표현에 나타나는 묘사는 대조적일 수가 있습니다. 다음의 두 문장을 비교해 봅시다.
군수(君秀)의 얼굴은 검으테테하였으되 키가 설멍하게 큰데다가 떡 버러진 어깨와 길고 곧은 다리의 임자이니 세비로나 입고 금테안경이나 버티고 단장이나 두르고 나서면 그 풍채의 훌륭하기가 바로 무슨 회사의 사장이나 취재역 같이 보이었다. 그는 쾌활한 호인물 이었다. 결코 남을 비꼬든지 해치지 않는다. 남이 제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해도 마이동풍으로 흘려 들었다.
앞에 쓴 문장은 현진건 선생의 소설 「지새는 안개」의 한 구절입니다. 이 글에서는 군수라는 사람의 생김과 인물 됨됨이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군수라는 사람의 형상을 '이렇습니다'하는 식으로 보고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상을 그대로 나타내었지 하등의 감정적인 느낌은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인물의 형상을 실상 그대로 나타내어 독자로 하여금 그 윤곽을 알도록 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인물에 대한 사실의 실상을 묘사한 보고입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글을 비교해 보십시오.
거침없는 선이여,
그 위엔 고구려 남아의 의연한 기상이 맺혔고,
부드러운 색조여,
그 속엔 백제의 다사로운 꿈이 깃들인 속에 남국적인 정열이 어렸도다.
목에 걸린 구슬이여,
이는 소식조차 아득한, 조국 땅에 남아 있는,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이런가?
알알이 빛나고 줄 이어 맺혔으니,
국난을 막기 위한 단결된 그들의 정성이 여기 있도다.
범할 수 없는 관음상이여,
그리운 사람의 환상마저 잊으려는 담징의 각고의 노력으로 열반의 상징 보살이 이루 어 졌도다.
윤이 흐르는 생기여! 그것은 조국에 대한 담징의 충성이었다.
이 문장은 정한숙 선생의 《금당벽화》라는 단편소설 속에 나오는 구절인데 담징이 금당벽화의 관음상을 완성하는 장면의 묘사를 가장 적절하게 그려 보이기 위해서 그 표현 기법을 보통의 말인 산문형식을 피하고 시의 말인 율문 형식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담징이 관음상을 그리는 장면을 산문의 형식으로는 그 실상을 표현하고, 감히 그 아름다운 모습을 실감할 수 없었기에 율문인 시의 말로써만이 그 표현이 가장 적절하고 가까웠던 것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표현을 작가가 보통의 말인 산문 형식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도저히 그 붓의 움직임이나 그림의 형상에 신비감은 감소될 것이고 모든 것은 일상으로 끝나는 보고 형식의 사실성만 나타내고 말았을 것입니다.
만약 위의 작품에서 작자가 담징이 관음보살상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장면을 보통의 말인 산문으로 표현했다면 어떨까요. 다만 실제적인 표현인 산문 형식으로 다음과 같은 표현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 획의 선에서 고구려 남아의 의연한 기상을 그렸고, 아름다운 빛깔로 백제의 꿈이 그려진 남국의 정열이 어려 있음을 표현했다.
이런 식으로 나타낼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그 표현이 단순한 보고 형식으로 끝나 관음상의 옷깃이나 나풀거리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고 환상적 세계는 줄어들고 감동적이지 못한 단순 표현만 보여 주고 말았겠지요.
이와 같이 시의 언어는 감동적인 정감이 거침없이 나타나서 읽는 이로 하여금 깊은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담담하게 읽히면서 정서에 젖어 드는 말, 그 사실에 그대로 흡입되어 감정이 부풀어오르는 듯한 말, 아름다운 느낌과 상상으로 하늘로 붕 떠오르는 말, 그것이 바로 시의 말인 것입니다. 마음을 움직여 주고 깊은 마술 속에 숨어 있는 말, 이 것이 시의 말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