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오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입말을 아끼면서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 사라지는 그들. 바람에 흔들리면서 서로 잡으려 하지만 끝내 만나지 못하는 두 나무의 가지들, 그 밑으로 뒹구는 낙엽들, 아슴푸레한 먼 불빛 하나에도 응시하면서 긴 숨을 고르는 그들. 숨이 턱밑까지 차도록 뛰어서 책상 앞으로 달려가는 그들. 펜을 들거나 컴퓨터 화면을 켜는 그들. 머릿속에서 단어들을 불러낸다. 마치 모래밭을 사박사박 걷듯이 단어 하나하나 결을 조심스레 매만지고 다듬는 그들. 이름하여 ‘신춘문예 지망생들’. 80년 가까이 되어 가는 신춘문예의 역사는 우리에게만 있는 독특한 문학 등용문이며, 숱한 작가를 생산해온 역사적인 문학 행사다.
해마다 신춘문예의 계절이 돌아오면 독한 사랑과 같은 열병을 앓는 사람들이 있다. 11월 초 첫 공고가 나가고 한 달 후 마감. 신춘문예 담당 기자의 전화기는 종일 울어댄다. “소설을 200자 원고지에 직접 쓰는 것과 A4 용지에 인쇄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심사위원님들 마음에 들까요?” “시 3편 이상이라고 했는데, 제가 깜빡하고 1편만 부쳤는데, 돌려줄 수 있나요?”
사실, 문인이 되는 길은 신춘문예만이 아니다. 문학잡지도 있고, 공모도 있다. 그래도 1월 1일 새해 아침에 신문 지면에 인쇄되어 나오는 당선자 발표의 감동은 어느 것과도 바꾸기 어려운 모양이다. 15년 동안 신춘문예에 40여 회나 응모했지만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신 끝에 문예지로 등단한 한 작가가 있다. 그는 신춘문예 지망생들, 특히 예비 낙선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신춘문예가 그렇게도 매력적인 이유는 천재인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삼류 문인들이 심사에 가담하고 있다는 희극성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곁에서 천재가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당연히 당신의 낙선은 당신의 천재성만이 아니라 당신의 천재성을 시기하여 그것을 훼손하려는 비열한 삼류 문인들의 작당과 농간의 결과다.”
그래도 정말 비결은 없을까?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권혁웅은 ‘미래파-새로운 시와 시인을 위하여’란 책에서 ‘신춘문예용 시(詩) 작법’을 논한다. ?새해에 맞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을 것 ?하나의 대상을 선택하되, 두세 개의 비유를 중심으로 서술해 나갈 것 ?특정한 종교적 색채를 띠지 말 것 ?A4 용지 한 장 이내에 담을 분량일 것 ?분련시(分聯詩)의 경우, 3~5연 이내로 적을 것 ?생활에서 파생되는 감정이나 여행지에서 만나는 소회를 적을 것. 그는 또 “약간의 은유(단순할수록 비유는 빛난다)와 문법적인 어사들을 생략한 시행(詩行·이게 축약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결구(結句·이걸 수미상관이라고 한다), 여기에 그리움이나 만시지탄을 버무리면, 감상하기에 적당한 시 한 편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눈 밝은 독자들은 이미 눈치챘을 것! 정형화된 신춘문예용 시들이 범람하는 현상을 권혁웅은 냉소적이고 위악적인 제안으로 조롱하고 있다.
‘문학의 위기’라지만, ‘문학,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라는 신념으로 문학이라는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들을 어찌 막을 것인가. 당선 비법은 간단하다. 기성 문인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한 개성의 발현이다.
낙선하면 책임지겠느냐고? 이미 말했다. 당신의 낙선은 “천재를 시기하는 삼류 심사위원들의 작당과 농간의 결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