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항상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려 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외면적으로는 다 봉헌했다 하더라도 마음 깊숙이 숨어 있는 욕심, 이기심, 교만 등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버릇이나 악의, 미움, 원한, 복수심 따위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한다고 하지만 그분의 뜻에 맞지 않는 생각과 판단, 말과 행동 등이 남아 있다. 가령 모든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했다 하더라도 세월이 흘러가는 가운데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번 봉헌했던 것을 되돌려 가지려고 한다. 자기 봉헌의 행위는 한 번에 결정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한평생 매일 매순간 되풀이해서 갱신하며 심화해 가야 하는 것이다. - 김보록의 '묵주기도 묵상' 중에서 -작성자이남순(마리아)작성시간25.07.05
"자기 의지를 자기의 것으로 삼고, 자기 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을 자랑하는 바로 그 사람은 선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는 것입니다. 결국, 악마의 꾐에 빠져 계명을 거슬렀기 때문에, 먹은 것이 그에게 악을 알게 하는 열매가 되어 버렸습니다." - 프란치스코 -작성자이남순(마리아)작성시간25.05.19
"사람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기 때문에 상처의 치유가 필요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을까요? 사실 내가 ‘참나’를 찾은 존재라면 상처를 주거나 받는 것이 아니라 만든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를 주려 해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않으면, 즉 상대가 주는 말과 행동을 그냥 지나가게 만들면(잠심하면)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받아 내 안에서 주인 행세를 하도록 하기 때문에 상처를 주거나 받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연애편지를 읽지 않았다면 그 편지에서 영향을 받지 않지만, 읽게 되면 영향을 받게 된다고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한 수준 더 올라서면 읽고도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의식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는 상처를 주고받지만 그 수준이 높아지면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습니다. 수준이 높은 사람에게는 상처를 줄 수 없습니다. 그가 상처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상처를 주거나 받는 현상은 무질서한 애착과 욕심 속에서, 나 중심적으로 살아가면서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영신수련교재에작성자이남순(마리아)작성시간24.12.09
죽음의 목전에서 깨달은 것은, 나를 생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미움이었다. 사랑은 나를 자유롭게 죽을 수 있게 하였다.... 정말 고통스러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 내가 여전히 미워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나를 미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정말 문제였다.(헨리 나우웬)작성자이남순(마리아)작성시간23.07.2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게 된 새로운 눈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고, 새로운 길, 곧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 길 위에 성령께서는 우리가 새로운 길을 지치지 않고 걸어가도록 그리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도록 도와주십니다.작성자이남순(마리아)작성시간23.02.25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 코로나로 소통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이네요... 주보자료실에 늘 새소식이 올라와서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새해에도 여전히 수고를 해주시리라 믿고 들어왔는데 주보가 안 올려져서 아쉬워서요...ㅋ 성당을 못가니 더욱 궁금해져서리...ㅋ 작성자신데레사(경숙)작성시간2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