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창작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왔다. 대개 글(문장)을 통한 창작 중 시(운문)나 소설(산문) 등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개인역량에 의한 집필(개인 창작)이 중심이었다. 그 경향은 앞으로도 확고부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말이다. 그만큼 개인 창작이 독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존엄한 영장만이 갖추고 있는 본성적 조건과 자립적 환경으로부터 기인한다. 사유에 따른 인간사회의 견해와 세계에 대한 입장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려는 강렬한 욕구가 이미 인간의지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똑 같은 형태 환경 조건이 같은데 인식하는 사람과 인식 못하는 사람의 차이 어떤일에 몰두 할때 하는 행동 또는 말을 듣지 못할때 인식의 차이가 발생한다 우리는 그런것을 삼매경지 라고 한다 막말로 독서에 열중 할때 모기가 물어도 인식을 못한다 그런 의식의 집중화가 아쉽다 보통사람은 이런 의식화 집중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의식 집중화을 돈 받고 가르치는 곳 있다작성자바다물작성시간22.06.12
작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창작을 위해서다. 창작은 작가의 첫째 임무며 제일의 사명이다. 작가는 옛것을 거울삼아 현재를 훑고,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구현해야한다. 그 일 또한 작가의 운명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게 말같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창작열이 식는다거나, 창작의 목적의식을 현저히 잃을 때, 그로 말미암을 왜곡과 기형은 필히 따라붙는다. 이는 작가자신뿐만 아니라 관련된 장르와 영역을 중심으로 심각한 이반현상을 일으킨다. 그 한편의 결과는 석연치 않을 절필이며, 또 다른 측면은 납득할 수 없는 행세주의와 패거리 작태로까지 불거진다.
작가의 문학적 생산은 창작이다. 창작의 백미는 독창성이다. 독창성은 새로운 것이다. 이렇듯 새것이라는 이름의 독창성은 전무후무한 것이기에 앞서, 전통 속에서 발전적인 요소를 계승함과 아울러 창조(변혁)할 보편적 단서를 제시하는 것이다. 창작이란 세계가 천태만상으로 각각 유별한 형체가 있듯, 인류라는 종이 확연한 구분으로 독특한 성향을 가지듯, 그 안에서 상대적인 우수성(발전적 요소)을 잉태하여, 특수성(보편적 단서)을 출산하는 것을 말한다.
구조물이 옳게 서기위해서는 기초가 튼튼해야한다. 청사진이 나온 뒤 본격적인 공사의 시작은 토공의 삽질부터다. 땅을 파야한다. 이렇듯 나오거나 솟을 것의 전제는 한편으로 견고히 다져져 묻히는 것이다. 특정구조물의 규모는 그에 상응할 기반과 윤곽에 따라 필히 결정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글(작품)이 세상에 나오면 미발표 작이 존재하는 경우다. 대략 마무리를 마쳤다손 치더라도 게재나 출판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 매듭짓지 않은 것, 미루어진 것, 햇빛을 보지 못한 것들이다.
초보의 독자들은 어떤 작품이 전개될 흐름과 작가의중이나 계획을 예단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불가피하게 시간이 흘러 특정작가의 생각이나 작품유형에 익숙하다보면, 대강의 얼개를 추측해 갈 수 있다. 작품마다 아우르는 체재(体裁), 소재를 껴안는 제재, 시공간이 처해진 설정 및 얘기꺼리가 달라도, 그런 후의 독자들은 순간순간 흡착되어지는 그 무엇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바로 작품저변에서 묻어나는 작가들의 관성과 타성이다.
무릇 하고자하고,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의 직업과 생활로 개척해 간다면, 이미 그것은 어떤 큰 성과와 축복 이상일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엔 정신적 만족과 경제적 해결책은 물론 전문적인 이론과 지식, 풍부한 실천적 지평까지 일궈낼 확신이 서기 때문이다. 더불어 뭇사람들의 갈채와 승인까지 얻는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겠는가. 게다가 부부가 같은 분야에서 함께한다든지, 서로 애틋한 이해와 넉넉한 조력으로 안받침을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어디 그뿐일까. 상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격려와 비판마저 충당할 수 있다. 작가의 길 역시 그럴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언어는 만들어지고 부서진다. 있던 말과 글이 새롭게 태어나고 다시 죽으며, 사라진 것이 복원되기도 하고 영원히 묻히기도 한다. 특히 작가에 의해서 창조되거나, 인류의 발자취와 더불어 긴밀하게 그 삶의 한복판에서 솟구친다. 의식과 문물의 변화에 따라 말과 글은 앞서가기도 하고 뒤따라 붙기도 한다. 새로운 제도와 질서, 상품의 등장에 따라 신조어(新造語)는 칠삭둥이처럼 급하게 나오기도 하고, 유산되기도 한다. 온전한 말과 글은 선천적으로 예고되기도 하며, 후천적으로 장애를 입기도 한다. 부실한 말과 글이 영양을 공급받아 반듯하게 걷는 것 같지만 지쳐 주저앉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