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면 제대로 써갈 수 있을지의 여부로 숙고하는 것. 누구나 어느 때고 미끄러져 한번쯤 심각하게 동요하는 것. 그러다 글의 막다른 벼랑에 주저앉아 푹푹 신열을 앓는 것. 결국 강한 자기유혹에 돌연히 일어서지 못해 회의하는 것. 이 불규칙적이며 간헐적인 글밭에서의 발작에 필사적으로 빠져나와야한다는 것.
민족철학서 및....... 사서와 삼경 그리고 성경, 불경, 코란....... 동서양 여러 고전이나 설레는 문제작....... 현대의 다양한 성과나 쟁점을 다룬 역작....... 미래세계의 안내통로에 비치된 노작....... 우리라는 일상을 담은 한가득 소소한 소묘....... 내 조국에 대한 신화, 전설, 설화, 민담....... 인류사 이면에 가려진 진실 혹은 실상....... 가끔의 나를 고요히 두드리는 일기.......
글감으로 모대기를 한다. 글 쓰는 사람들의 하나같은 고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고민을 한다고 모든 고민꺼리가 풀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풀릴 듯 꼬이다 꼬인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묶이기도 한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정신이 돌아와 눈이 떠지고 덜컥 습작의욕이 솟구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작품해설. 이처럼 난감한 것이 또 있을까. 독자로서- 문학이든 비문학영역이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을진대- 각자들이 특정작품을 읽어내려 감상의 느낌과 언질을 얻는 쪽을 권장하면 옳은 일이다. 예전엔 작가자신 혹은 편집인 또는 문우들이 출판기념과 아울러 독자들을 위한 작품개괄 및 독서안내 비스름한 취지의 촌평을 책머리를 통해 밝혀주며 거들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평론가라는 뚜렷한 영역이 있어 형식적이라도 이들의 사전심사나 감정을 통과하거나 받아야한다. 필요를 뛰어넘는 독자일반에 대한 친절한 편의제공이라 할 수 있다.
치고나가는 문학정책이어야 한다. 통틀어 극복할 사안이 있다면, 대안은 응당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 무엇으로의 대명제가 서지 않았다면, 실행계획이란 한낱 책임소재 없는 일회성 공연일 뿐이다. 세계화를 고민하기 전에 통일문학의 끊어진 다리를 놓고, 분단 상황의 주름을 성형하기 전에 세계문학의 실태에 따른 기반을 닦아야한다. 그때 우리문학의 향방을 옳게 진단하고 공히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다양한 여건 조성과 행사, 창작지원, 홍보 등은 다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