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이랄지 ‘뉘앙스’ 혹은 ‘반어(반의)’ 따위들은 글에서 곧잘 기술적으로 쓰여 진다. 그러나 그 취지가 터무니없는 증오나 경멸 또는 적의로 흐를 때가 있다. 그러면 작가는 다분히 고의적이고 범죄적일 과도한 감정파열의 심리를, 등장인물들을 통해 작품전반으로 확산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긴장과 흥미가 미궁과 예측을 타고 생생하게 살아나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은 그 특유의 상상력을 마음껏 누리며 가늠해 들어간다. 이미 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라, 몰입된 생각의 고리는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책갈피를 넘기기 마련이다. 작중인물들의 배치와 상황설정을 소홀히 하지 않고 우선하는 것에 유념할수록 지나칠 것이 없다.
생을 통해 온통 버리거나 던질 수 있는 삶의 최고 가치로서 사랑이란 그 이름을, 다가올 날들에 혁명적 방식으로 새롭게 제시할 작가나 본격적으로 구현하는 그런 작품이 등장한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혁명적 사랑’의 패러다임으로 방향을 틀어 급기야는 막아서지 못할 거대한 물살로 휘몰아칠 것이다. 아마....... 아니, 분명.
애써 담지 못할 사유의 편린들에는 미련을 버리자. 언뜻 스쳐 지나치던 그 온전하고 정당한 것들. 그 찰나의 각음(覺音)이여! 그래, 애써 얽매이지도 끌어내지도 말자. 그것은 다시 사유와 망각의 건널목을 지나 명확한 회상으로 안기리니. 그러나 이 안타까움이여 분노여. 납득 못할 존재의 수상한 복기(復碁)의 한계여. 어찌 몽매한 그대와 나를 이토록 처연히 짓밟아 불면의 밤을 더욱 병적으로 내모는 것이냐. 아! 사색의 자유마저, 그 찬란한 기록의 시간마저 앗아가 버린 이 염증일게 하는 징벌의 세월이여, 천형(天刑)의 세월이여.
봄날이어도 가을날이어도 좋다. 그날들의 조용한 산책길이라면 더욱 좋다. 살갗을 두드리며 다가오는 바람과 햇볕이 동행하면 더욱 좋고. 그 속에 섞여있는 가벼운 적막과 고적....... 거기서 멀어지려는 싸늘한 습도와 회색빛 우울은 아주 털어라. 일상의 맥없는 굴절까지. 세상은 무언가 뒤틀렸어도, 생명의 씨앗은 어김없이 곳곳에 내려 고통의 시간을 채운 뒤 싹틀 것이니. 얼음장 물살 밑일지라도. 그러니 어림잡아 두어 시간 신열이 다가와도 산책의 시간을 가져라. 여름날이어도 겨울날이어도 좋다. 그대에게 여유만 있다면.
한 사람의 인품은 여러 요인의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복잡한 구조를 가졌으며 같은 인품도 높은 얼굴과 낮은 얼굴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높고 낮은 여러가지 얼굴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가 그가 처하는 상황 변화에 따라서 때로는 착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추악한 얼굴을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