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6791829514
저 직업들을 모두 한 방에 달성한 것은
중세시대의 이발사다.
우선 의사의 경우부터 살펴보자.
외과 수술은 예나 지금이나 반드시 필요했지만,
그와 별개로 사회적 지위가 그닥 높진 않았다.
마취도 소독도 없이 사람 몸을 자르는 사람들이라
그닥 존경받진 못했다. 두려움이면 모를까.
심지어 의사의 외과 진료를 금지한다는
포고령까지 떨어지자,
당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인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면도를 위해 칼을 다루고 지혈에도 일가견이 있는
이발사들이 무면허 외과의(!)가 된다.
물론 일부 대학에서는 여전히
정규교육을 받은 외과의가 육성되었고,
이들은 이발사 외과의들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당장 인원도 부족하고, 외과의의 지위 향상도 필요하니
애매모호한 연대 상태가 꽤 오래 이어진다.
그렇게 이발사의 상징은 피 묻은 붕대를 합친
적-백이 얽힌 그림이 되었다.
(*청색은 미국 이발사들이
성조기랑 비슷한 조합을 선호해서 넣었다는 설이 있다)
처음에는 피를 담은 대접을 이발소 앞에 뒀는데
보기 좀 그렇고 위생상 문제도 있어서 바꿨다.
18세기 들어 '오;; 위생 좆되겠는데'라는 인식이 생겨
이발사와 외과의를 분리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또한 이발사들은 부업으로
목욕탕을 운영하는 일이 잦았다.
(이론상으로는) 깨끗하게 씻고 & 간 김에 면도도 하고 &
아픈 데 있으면 치료도 받으니(주로 발치나 사혈)
나름 목욕탕이 중세식 보건소였던 셈이다.
목욕탕 좋아요 오호호
그러나 목욕탕이 사람들의 문화적 공간이 되자,
슬슬 제 버릇 버리지 못한 인류가
또다시 목욕탕을 퇴폐시설로 만들기 시작한다.
술과 음식이 들어가고,
탕 속에서 남녀가 뒤섞이기 시작하며
혼란하고 문란한 성적 방종의 공간이 된 것이다.
이발사(겸 목욕탕 사장)들 역시 손님 유치를 위해
매춘부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하였고,
그렇게 중세의 목욕탕은 점차 매음굴이 되어갔다.
물론 그만큼 목욕 자체의 질과 서비스는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지사.
이에 더해 당시 유행하던 매독 등 여러 성병과
흑사병이 목욕탕을 중심으로 창궐하기 시작하며
목욕탕의 인원은 눈에 띄게 감소하였고,
목욕탕에서 치료를 하던 이발사들의 업무에도
직간접적으로 타격이 가 유지불능의 상태에 도달한다.
병원에 갔는데 오히려 병이 생겨서 온다고 생각해 보라.
과연 누가 가고 싶어하겠는가.
그렇게 다양한 일을 맡았던 이발사들은
결국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본래의 직업인
이발과 면도만을 맡고 있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오다니 참 아이러니해
-끝-
댓펌
농담이지만 고대 아테네에서는 기자도 했습니다~ㅋㅋ
펠로폰네소스 전쟁때 한 손님이 이발사한테 서비스 받다가 "시라쿠사로 간 아테네 원정대 전멸했는데 왜 이리들 태연함?"이라고 했다가 졸지에 이발사가 뉴스 속보 전달하러 손님도 팽개치고 아고라로 달려감 ㅋㅋㅋ
전근대식 공중목욕탕은 이미지랑 달리 위생에 큰 도움 안되긴했음. 수도만 열면 물 콸콸나오는 현대에도 목욕탕물 자주 안갈았다고 말 많은데, 저 시대에 물을 얼마나 자주 교체하겠음.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몸 담구고 때밀고간 물에 좋다고 계속 들어가니 수인성 전염병이 자꾸 퍼지는 스포닝풀이 됨.
문제는 이런거 보고 "아 씻으면 병걸리는구나!" 같은 이상한 깨달음으로 연결되는 케이스도 있으니 참 세상사 복잡함
2000년 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전히 서울 장안동의 이발소는 성매매 업소로 활약했었으니 ㅋ 유서깊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