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는 조그만 초집 정자이다 [乾坤一草亭題語]
- 홍대용/담헌서 외집부록
大秋毫而小泰山(대추호이소태산)。
莊周氏之激也(장주씨지격야)。
‘추호(秋毫)가 크고 태산(泰山)이 작다.’ 한 것은
장주(莊周)의 과격한 이론인데
今余視乾坤爲一草(금여시건곤위일초)。
余將爲莊周氏之學乎(여장위장주씨지학호)。
내가 지금 천지를 하나의 초(草)집 정자로 여기니,
내가 장차 장주의 학문을 하려는 것일까?
三十年讀聖人書(삼십년독성인서)。
余豈逃儒而入墨哉(여기도유이입묵재)。
30년을 성인(聖人)의 글을 읽었는데
내가 어찌 유학(儒學)을 버리고
묵자(墨子)의 학(學)으로 들어갈 것인가?
處衰俗而閱喪威(처쇠속이열상위)。
蒿目傷心之極也(호목상심지극야)。
쇠퇴한 세상에 살면서 상실된 위신을 보자니,
눈이 찌푸려지고 마음을 상함이 극도에 달한 것이다.
嗚呼(오호)。不識物我有成(불식물아유성)。
何論貴賤與榮辱(하론귀천여영욕)。
아아! 만물이나 내 자신이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인 줄을 모른다면
어찌 귀천(貴賤)과 영욕(榮辱)을 논할 수 있을 것인가?
忽生忽死(홀생홀사)。不啻若蜉蝣之起滅(불시약부유지기멸)。
갑자기 생겨났다가 갑자기 죽어가
마치 하루살이가 잠시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닌 것이다.
已焉哉(이언재)。逍遙乎寢臥斯亭(소요호침와사정)。
逝將還此身於造物(서장환차신어조물)。
그만 두어라, 한가로이 이 정자에서 누웠다가 자다가 하다가
앞으로 이 몸을 조물주에게 돌려보내리라.
生無名死速朽(생무명사속후)。走之志也(주지지야)。
살아서 아무 이름이 없고 죽어서 빨리 썩어지려는 것이
나의 뜻이다.
忽生忽死(홀생홀사)。乾坤直一草爾(건곤직일초이)。
况於人乎(황어인호)。
갑자기 났다가 갑자기 죽어가,
천지가 바로 하나의 초집 정자에 불과한 것인데
하물며 사람에게이겠는가?
走已解脫于世矣(주이해탈우세의)。
나는 이미 세속에서 풀려 벗어났노라.
獲玆小屋(획자소옥)。聊寄十數年嘯傲(료기십수년소오)。
이 자그마한 정자를 구득하여
애오라지 여남은 해 소오(嘯傲)하면서 살아가니,
願諸公敎之(원제공교지)。
원컨대, 제공(諸公)들은 나를 교도하여다오.
華士嘲其椎愚(화사조기추우)。
화사한 선비들은 나를 유치하고 어리석다고 비웃을 것이요,
莊士誚其曠達(장사초기광달)。
씩씩한 선비들은 나를 광달(曠達)하다고 나무랄 것인데,
皆走所願聞也(개주소원문야)。
모두 내가 듣고 싶은 바이오.
謹白(근백)。
삼가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