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어찌하면 악보를 처음 대할 때 빨리 곡을 익힐수 있냐는 의문을 갖고 있는데
여러 연주자들의 CD를 들어보고 곡 전체의 흐름을 파악 한 뒤 감정이 생길 때 까지
또는 감정을 실어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 해보고 세세한 부분 연습을 하는 방식이 예로 들어진다.
실제로 많은 연주자들은 이러한 방법을 쓰고 있고 이것의 효과를 보는 사람도 많은 건 사실이다.
또 어떤 성악가는 배워야 할 곡의 CD를 하루 죙일 틀어놓고 생활 한다고 한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곡이 몸에 붙는다고...
물론 이도 하나의 노력이기는 하다. 왜냐면 그조차도 아니하면서 고민하는 이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방식들의 약점은 자칫 잘못 하면 그 행위 자체가 우리들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상상의 능력을 방해하거나 혹은 앗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어떤 문학작품을 읽기 전에 그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한 일 일 것이다.
만약에라도 여러 음반 중 어떤 특정 연주자의 해석에 마음이 끌린다면
알게 모르게 그것에 지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도
자기 아버지의 장화를 신고 비도 오지 않는 날에 첨벙대며 걷는 것과 꽤 흡사한 일이 되고 만다.
사람은 신을 신는 유일한 동물이기에 자기 발에 맞는 신을 신어야 잘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악보만을 제 앞에 놓고도 그 음악의 흐름이나 쓰여 진 그 음악이 요구하는 특정한
자연법칙에 의거하는 소리 나지 않는 소리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소리란 들을 수 있는 것 뿐 아니라
냄새 맡으며 뼛속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청각 장애자들이 어떻게 노래를 배워 부르는지
독일 Pforzheim의 어린이 장애자 합창단에 가보면 볼 수 있다.) 더하여 그 곡이 작곡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작곡 당시 작곡가의 머릿속에 살이 숨 쉬고 있었던 판타지나 동기를 추정해보고 수집해
재현하며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하여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재창조 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 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우리는 고고학자와 비슷한, 어쩌면 더한 입장과 사명을 갖고 있는 것 이다.
예전에 또는 그보다 더 훨씬 전부터 존재 했던 한 예술 작품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에
다시 세우고 숨을 불어 넣어 부활 즉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해야 하니 말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자체 안에 형성 되어져 있는 수많은 여러 유기체들이 조화롭게 움직일 때 비로서
그 빛을 발하는 것이다. 건강한 자와 병든 자의 차이가 무엇이겠는가?
무르무르익어 보기 좋은 사과나무와 곧 시들어 쓰러질 듯 서만 있는 나무의 차이점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여러분들 가운데 일 년 걸릴 농사를 단 한 달 만에 하려는 어리석고 허황된 농부를 본 일 이 있는가?
모든 것의 진리는 불행 중 다행으로 일맥상통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몇 해 전에 뉴욕필의 지휘자였던 독일의 거장 Kurt Masur씨와의 저녁만찬에서 나누었던 얘기 중
“만약 선생님께서 어떤 모르는 곡을 빨리 배우셔야 한다면 어떤 방법을 쓰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했을 때 당시 칠순을 훨씬 넘긴 그 분은 눈을 지그시 감으시며 다음과 같이 대답 하셨다. “Lesen und immer lesen.. dann hörst du allmählich Eins nach dem Andern.
Zum Schluß hast du ein volles Bildnis vor und in dir. Seit ehrlich vor der Musik. Die Musik lügt niemals.„
번역 하면 {읽고 또 읽어라 그러면 점차적으로 하나에서 다른 것 들이 들릴 것 이다.
결국엔 네 앞과 안에 하나의 꽉 찬 그림을 가질 것이다. 음악 앞에서 진실 하라. 음악은 거짓을 결코 하지 아니 하느니라.}
그런 것이다. 일단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악보 안에 기입 되어 있거나 숨겨져 있는데,
보통 우리가 연주 하려는 작품 들은 당대 최고의 천재 음악가들에 의해 쓰여 졌던 곡 들 로서
그 자체가 이미 살아 있는 유기체 인데 그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갖지 못 한 우리라면
어찌 그들의 메시지를 묵인 할 수 있겠는가?
매번 반복 되는 모든 행위의 처음 또한 대단히 중요 한 것이다.
이 것 저 것 몇 번 들어보고 감정이 생길 때 까지 연주하고 세밀한 부분연습을 한다는 얘기는
절대 틀린 것이 아니지만, 만약 한 건축가가 설계도를 보고 그 건물이 정작 세워졌을 때를 판단 할 수 없어서
일단 남이 져 놓은 것 보고 한 번 지어 보고 고칠 곳을 고치자 라고 한다면 당신에겐 어떠한 일들이 상상 되어 지겠는가?
예술가 이고 싶으면 예술인으로 살아야 하며 좋은 땅에서도 좋은 비료를 먹고 자란 나무들에게
오래오래 백년 이백년 잘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처음엔 느린 것 같지만 결국 가장 빠른 방법은 우선 *무턱대고* 음반 듣는 일은 좀 뒤로 하고
( 여기서 *무턱대고* 란 “없는 턱을 대고“란 뜻으로 ”얼굴에 턱이 없어서 내내 잘 될 턱이 있을까“ 라고 풀이 됨.)
쓰여 진 말씀 즉 악보를 말 그대로 탐구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구사 할 수 있는 테크닉의 역량 안에서 시대에 걸 맞는,
경우에 따라서는 시대를 초월 하는 자신의 독창적인 언어 상상력을 동원해 그의 최대치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 후에 여러 음반들을 들어 보는 것이 비교적 비교, 정리, 정립 하는데 환하고 수월하다.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마치 잘 자란 나뭇가지에 풍성한 열매와 아름답게 우거진 잎사귀들을 보는 것 과 같고(득음)
더 나아가 우리가 늘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 안에서 숨 쉬는 영혼의 소리 인 것이다.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