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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나루 동작진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의 명당 국립서울현충원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8.10.05|조회수358 댓글 0


국립서울현충원은 서울시 동작구 현충로 210번지(서울시 동작구 동작동 산44-7번지)에 있다.
이곳은 바로 국군묘지로 시작해 훗날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묘지로 승격된 국립서울현충원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앞으로는 한강, 뒤로는 관악산 공작봉이 호위하듯 펼쳐 있는 형세다.
공작봉을 주봉으로 하여 정기어린 능선이 병풍을 치듯 묘역의 3면을 감싸고 있다.
특히 앞으로는 한강이 유유히 굽이쳐 흘러서 그런지 매우 안정적이고 아늑해 보였다.

현충원의 주산 공작봉 서달산이다.바로 해발 179m이다.산자락에는 바위들이 옹기종기 있다.
그 중에 거북이 형상 같은 일명 ‘거북바위’가 돋보인다.한강 너머로 북한산 남산 용마산 인왕산 북악산 등의

모습들이 한 눈에 든다. 공작봉 서달산이 현충원을 뒤에서 살포시 껴안고 있는 형국이다.

묘역 전체가 당장 서달산 아래로 부채처럼 펼쳐진 듯 보인다.
 "산수의 기본이 유정(有情)하고 산세가 전후좌우에 펼쳐져 흐르는 듯하여 하나의 산봉우리, 한 방울의 물도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은 곳이 없으며 마치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으로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홈페이지에서
국립서울현충원은 산 능선을 따라 말발굽을 비스듬히 세워 놓은 모양으로 펼쳐졌다.
그 말발굽을 격자무늬로 구획하여 56개의 일반 묘역과 세 곳의 장군 묘역 그리고 애국지사, 임시정부요인,
유공자 그리고 두 분의 대통령 묘역으로 나누었다. 
풍수지리상으로 명당으로 꼽히는 이곳의 최정상에는 박정희 대통령 묘소가 있다.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쭉 펴고 있는 모습이며,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장군대좌형(將軍對座形)에
또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渴形象)으로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하는 데 마치 만인지상(萬人之上)으로서
그 많은 영령들을 거느리듯 위치한 이곳에 올라가면 봉우리와 능선길이 파노라마처럼 수림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려다보이는 한강 물줄기의 유유한 흐름과 한강 좌우의 도시경관은 이곳이 명당이구나 하고 누구나 느낄 수 있을 만큼

지리적 위치와 산세가 훌륭하다. 이런 지형의 정점에 있는 박대통령 묘는 풍수술사들로부터 냉혈이니 수맥이 흐르니 하여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결국 주인공이 아니라는 말일 게다.
주인공은 이미 450여 년 전에 이곳을 선점한, 조선조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임금의 할머니 창빈 안씨다.
창빈의 묘를 이곳에 쓰고 동작릉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이다. 이 능은 전체 묘역의 중앙부쯤에 위치한 이승만 대통령 묘 입구

주차장부근에 있다. 주차장에서 부근의 창빈 안씨 신도비에서 20m쯤 올라 간곳에 곡장(曲牆)을 둘러 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풍수지리상으로 훌륭한 특징을 안고 있다.풍수가들은 그 특징을 이렇게 꼽는다.

첫째, 국립현충원의 주산은 관악산(해발 632m)이며 여기서 뻗어 내린 용맥은 한강을 만나면서 더 이상 행룡하지 못하고
현무봉인 서달산(160m)을 세운 뒤 좌우로 활짝 개장하면서 묘역공간을 감싸고 있다.

현무봉의 본신용호에 의해 사신사(四神砂·현무·좌청룡·우백호·안산)를 이루었고 대강수(大江水)인 한강을 득수해,

장풍(藏風)과 득수가 서로 조화를 이뤘다. 이처럼 국립현충원은 사신사에 의해 천기와 지기를 서로 조응·반사·응집하는

공간이므로 좋은 기가 바람에 의해 흩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머물게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지기를 받게 된다.

따라서 묘역공간에 모셔진 영혼들은 편안히 영면할 수 있는 명당공간이 된다.

둘째, 사신사 중 현무봉은 주산의 응축된 정기를 받고 있는 생명체이다.그 봉우리가 좌우로 가지맥을 크게 뻗으면서

감싸는 지세로 마치 큰 새가 날개를 활짝 펼친 형상이다. 풍수지리에서는 산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인식하므로 동작(銅雀)의

지명에 비추어 볼 때 국립현충원은 황금(銅)공작(雀)인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봉황포란형의 터가 된다.
현무봉은 머리요, 안온한 가슴공간은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의 묘역이 자리한 곳이다.앞쪽의 장군1묘역은 품고 있는 알을 의미한다.
그리고 좌청룡의 제1·2유공자, 장군 2·3묘역공간은 좌측 날개에, 우백호자락의 호국영령들의 묘역공간은 우측 날개 속에 포근히

영면하고 있다.

셋째, 내수(지당)와 외수(한강)를 득수했다. 내수는 현충원 주변 지세에서 발원한 계류수가 1차 공작지를 이룬 뒤 다시

장군묘역공간을 거쳐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공간을 환포하면서 흐르다가 다시 호국영령의 묘역을 적신 뒤 현충지에 모이는 수세다. 이것은 묘역공간이 항상 미기후를 이루면서 생태공간을 유지하게 된다.다음 외수는 한강이다. 안산을 대신한 물주작을 이루는데, 물길은 구곡수를 이루면서 항상 흘러들어오고 있는 득수형국이다.

현충원 경내는 주요 묘역들이 섹션별 모두 9가지로 조성돼 있다.

다양한 계층의 참배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국가원수묘 4곳, 임시정부요인묘역, 애국지사묘역, 무후선열제단 등이 조성돼 있고,

3곳으로 분산된 국가유공자묘역과 3곳으로 분산된 장군묘역이 거리를 두고 각각 떨어져있었다. 또한 이곳 국립묘지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일반 장교와 병사묘역이 2개 구역으로 조성돼 있고, 경찰관묘역과 외국인묘역도 있다.




1953년 국립서울현충원의 전신인 국군묘지 터를 고르는 모습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국군묘지로 출발한다.국군묘지가 탄생하게 된 그 경위는 이렇다.

"1952년 5월 6일 국방부 국장급 회의에서 육군묘지 설치문제에 대하여 논의한 결과 육군묘지를 설치하게 되면
타군에서도 각기 군묘지를 만들어 관리상 많은 예산과 인원이 소요되고, 영현관리의 통일성을 기할 수 없는 등
여러가지 폐단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육군묘지 설치문제는 일단 보류하도록 지시하고, 3군 종합묘지 설치를 추진하되,
묘지의 명칭은 국군묘지로 칭할 것을 결의하였다.1952년 5월 26일 국방부 주관으로 국군묘지 후보지 선정을 위하여

3군 합동답사반을 편성하고, 1952년 11월 3일 군묘지설치위원회를 구성한 후 1952년 11월부터 1953년 9월까지 11개월 동안

7차에 걸쳐 10개 지역을 답사하였다. 답사 결과 동작동 현위치를 국군묘지 후보지로 선정하여 1953년 9월 29일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국군묘지 부지로 확정하고 1954년 3월 1일 정지공사를 착공한 이래 3년에 걸쳐 묘역 238.017㎡ 을 조성하고,
그 후 연차적으로 1968년 말까지 광장 99.174㎡, 임야 912.400㎡ 및 공원행정지역 178.513㎡을 조성하였다.

1955년 7월 15일 군묘지 업무를 관장할 국군묘지관리소가 발족되고, 이어서 1956년 4월 13일 대통령령으로 군묘지령이 제정되어

군묘지 운영 및 관리를 위한 제도적 기틀이 마련되어 전사 또는 순직한 군인, 군무원이 안장되고 덧붙여 순국선열 및 국가유공자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안장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국립서울현충원 홈페이지에서

국군묘지는 1965년 국립묘지로 그 이름이 바뀐다.국군과 경찰관만 들어갈 수 있는 아니다.일반국민들도 안장될 수 있도록

국립묘지로 확대해서 그 이름을 변경한 것이다.다시 국립서울현충원 홈페이지 내용을 살핀다.

 "6.25 전쟁으로 발생한 많은 전사장병 처리를 위해 지금까지 군인위주로 이루어져 왔던 군묘지 안장업무가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령으로 재정립되어 애국지사, 경찰관 및 향토예비군까지 대상이 확대됨으로써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삶을 희생하고 아울러 국가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분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모시게 되어
그 충의와 위훈을 후손들에게 영구히 보존, 계승시킬 수 있는 겨레의 성역으로서 국립묘지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2005년 7월 29일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제정 공포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동작동 국립묘지 의 명칭이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고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도 안장대상자에 포함되었다."
현충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삶을 희생하고 아울러 국가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분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모시게 되어 그 충의와 위훈을 후손들에게 영구히 보존, 계승시킬 수 있는 겨레의 성역으로서 국립묘지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2005년 7월 29일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제정 공포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동작동 국립묘지의 명칭이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고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도 안장대상자에 포함되었다.
가볼만한 묘지들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등 18위를 모신 임정요인 묘역을

비롯해 1983년 버마 아웅산 사태 희생자들의 묘소 ‘동쪽호국길’ 방향에 위치한 연제근상사의 묘(27묘역),부자(夫子)의 묘(29 묘역),

형제(兄弟)의 묘(30묘역), 강재구, 이인호 소령의 묘(51묘역), 이원등 상사의 묘(53묘역)들이 있으며,

반대편 ‘서쪽호국길’에 위치한 임동춘 대위의 묘(3묘역), 육탄10용사의 묘(6묘역), 양병수 상사의 묘(묘역), 김재현 기관사의 묘

(7묘역), 재일학도의용군묘역(16묘역), 1.21사태순직자묘역(24묘역), 베트남 찌빈둥 전투전사자묘역(26묘역) 등이 있었다.
국립현충원은 국군묘지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군인과 경찰들이 가장 많으나 서울과 대전의 국립묘지에는 의외로 민간인들도

80여명 정도 안장돼 있다.화학자 이태규 박사,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이종욱, 베를린 올림픽 영웅 손기정, 동요작가 윤석중, 한글학자 주시경,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등 저명인사들이 안장돼 있다.
또한 외국인 묘역으로 캐나다인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석호필), 중국 화교 장후이린(강혜림), 위쉬팡(위서방) 열사 등은

외국 국적이지만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스코필드 박사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재직 중 1919년 3·1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탑골공원에서 함께 만세운동을 펼쳤으며, 장후이린과 위시팡 열사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무공을 세웠던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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