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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5.10|조회수1,870 목록 댓글 0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 선비 사(/0)

: 할 위(/8)

: 알 지(/3)

: 몸 기(/0)

: 놈 자(/5)

: 죽을 사(/2)

 

 

사내 대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남자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며 때로는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좋은 덕목을 가진 이상적인 사람이 선비였다. 학식이 있고 말보다 실천이 앞서고, 예절이 바르며 재물을 탐내지 않고 거기에다 고결한 인품을 지녔으니 말이다. 공자(孔子)가 강조하는 군자(君子)와 같고 우리나라의 양반이나 서양의 젠틀맨(gentleman)이 부분 해당하겠다.

 

그런 반면 백면서생(白面書生)이나 남산골 딸깍발이란 말이 일러주는 대로 글만 읽어 세상 물정을 모르고, 가난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백면서생은 야전을 누비며 햇볕에 얼굴을 그을린 검은 얼굴의 무관과 대비되는, 실내에서 책만 읽어 얼굴이 창백하고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문신들을 비꼬아 한 말이다.

 

남산골 딸깍발이란 살림이 궁핍하여도 살아갈 궁리를 못하고 글만 읽는 가난한 선비를 비웃어 이르는 말이다. 옛날 서울 남산 밑에는 몰락한 구차한 생원(生員)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생원은 소과(小科)에 급제한 선비 또는 나이 많은 선비에 대한 존대어였다. 그 생원이 샌님으로 되었다.

 

남산골 샌님을 딸깍발이라 했는데, 샌님들이 나막신을 신고 다닌 데서 나온 말이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許生傳)의 허생도 남산골 샌님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국어학자 이희승의 <딸깍발이>란 수필도 남산골 샌님들의 가난한 가운데 지조를 예찬한 글이다.

 

선비 중에서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이 성어 이상으로 의리를 지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며 때로는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의리의 사나이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의 예양(禮讓)이다.

 

당시 진()나라엔 가신들의 세력다툼이 치열했다. 예양은 처음엔 빛을 못 보다가 지백(智伯)의 휘하에 들어가서부터 총애를 받았다.

 

제일 강성하던 지백은 조양자(趙襄子)가 다른 세력을 연합하여 싸움을 걸어옴에 따라 패배하고 말았다. 전멸한 병사와 함께 지백은 일가까지 모두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고 예양은 산속으로 도주했다. 자신을 알아준 주군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으리라 다짐했다.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

사내대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꾸민다는 말이 있으니 조양자를 없애야 지백의 은혜를 갚고 자신의 영혼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 했다.

 

예양은 이름을 바꾸고 죄인들 틈에 끼여 조양자의 궁중에서 변소의 벽을 바르는 일을 하게 됐다. 비수를 품고 습격했다가 발각됐고, 풀려난 뒤에도 다리 밑에서 기회를 노렸으나 또 실패했다. 의기를 높이 산 조양자도 용서할 수 없다고 하자 의복을 달라고 해서 칼로 찢고 자신도 찔렀다.

 

사기(史記)의 자객(刺客) 열전과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 등 여러 곳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다.

 

춘추 말, 전국 초 시대의 일이다. 당시 북방의 강국이었던 제후국 진()나라는 유력한 가신인 범(), 중항(中行), ()(()), ()(양자(襄子)), ()(강자(康子)), ()(선자宣子)의 육경(六卿)이 국정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 중에서 범씨와 중항씨는 먼저 멸망했고, 나머지 네 사람이 세력 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그중 세력이 가장 강한 지백(智伯)이 맹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백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나머지 세 사람에게 토지를 할양할 것을 요구했다. 한강자(韓康子)와 위선자(魏宣子)는 이에 굴복하여 만호(萬戶)의 고을을 할양했다. 하지만 조양자(趙襄子)는 가신인 장맹담(張孟談)과 숙의한 끝에 지백의 요구를 거절해 버렸다.

 

조양자를 괘씸하게 생각한 지백은 자신의 군대는 물론, 한강자와 위선자의 군대까지 동원시켜 조양자를 공격했다. 조양자는 진양성(晉陽城)으로 들어가 완강히 대항했다. 세 제후는 연합하여 조양자의 성이 있는 진양을 공격했으나 조양자가 완강히 버티는 바람에 2년 동안이나 승리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을 버티다가 막바지에 몰린 조양자는 이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이때 조양자의 모사인 장맹담이 계책을 올렸다. “한강자와 위선자는 어쩔 수 없이 지백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들을 잘 설득하여 지백을 배반하고 우리와 연합하게 하여 함께 지씨를 공격하면 될 것입니다.”

 

장맹담은 한강자와 위선자의 진영에 잠입하여 이들을 설득했다. “지백은 탐욕스러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멸망하고 나면 지백은 바로 당신들을 칠 것입니다. 우리와 연합하여 지백을 치고, 땅을 나누어 가집시다.”

 

한강자와 위선자는 장맹담의 설득에 넘어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들 세 제후는 진양성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길을 지백의 땅으로 돌려 역으로 수공을 하기로 하고, 군사를 동원하여 밤새 제방을 파 물꼬를 터 지백의 진영으로 흘러 들어가게 했다. 순식간에 지백의 진영은 물에 잠겼다.

 

세 제후의 군대는 배를 이용하여 공격해 들어갔다. 생각지도 않았던 공격을 당한 지백의 군대는 전멸하고 말았다. 이들은 지백을 사로잡아 그 일족을 모두 처형하고, 봉지를 나누었다. 이로써 진나라는 조씨의 조나라, 한씨의 한나라, 위씨의 위나라로 나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땅을 삼진(三晉)의 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조양자는 지백을 죽이고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 그의 두개골에 옻칠을 하고 술잔(일설에는 변기)으로 사용하였다. 지백의 가신 중에 지백의 총애를 받던 예양(豫讓)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豫讓遁逃山中, , 嗟乎.

예양둔도산중, , 차호.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

今智伯知我. 我必爲報讎而死.

금지백지아. 아필위보수이사.

以報智伯, 則吾魂魄不愧矣.

이보지백, 즉오혼백불괴의.

그는 산으로 도망하여 조양자의 행위에 분개하여 한탄하였다. “사내대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꾸민다고 들었다. 지백은 나를 알아준 사람이다. 내 기필코 원수를 갚은 뒤 죽겠다. 이렇게 하여 지백에게 은혜를 갚는다면 내 영혼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예양은 성명을 바꾸고 스스로 죄인이 되어 조양자의 궁에 들어가 비수를 품고 변소의 내부를 칠하는 일을 하면서 조양자를 죽일 기회를 찾고 있었다. 조양자가 변소에 가다가 갑자기 살기를 느껴 수색을 한 결과, 비수를 품고 있는 예양을 잡았다.

 

심문 결과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는 예양의 대답을 듣고 그의 의기를 높이 사 석방했다. 그 후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이처럼 꾸미고 숯을 머금어 벙어리가 되어 남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신을 하고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거지 노릇을 하면서 복수의 기회를 찾았다.

 

먼저 조양자의 신하가 되어 그의 신임을 받은 후에 복수를 하는 방법을 친구가 알려 주었지만, 그는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얼마 후 조양자가 외출을 했는데, 예양은 조양자가 통과할 다리 밑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조양자가 다리에 이르자 갑자기 말이 놀랐다. 이번에도 예양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잡혔다.

 

조양자는 그의 충정에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가 지백을 위해 충성한 것은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내가 그대를 석방하는 것도 이미 충분하였으니, 더 이상 그대를 용서할 수 없다.”

 

예양이 말했다. “신이 듣건대 현명한 군주는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이름을 가리지 않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이름과 지조를 위하여 죽을 의무가 있다고 합니다. 전날 군왕께서 신을 너그럽게 용서한 일로 천하 사람들 가운데 당신의 어짊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오늘 일로 신은 죽어 마땅하나 당신의 옷을 얻어 그것을 칼로 베어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도록 해 주신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이것은 신이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신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은 것뿐입니다.”

 

조양자는 그를 의롭게 여겨 자기 옷을 예양에게 주었다. 예양은 칼을 빼들고 여러 차례 뛰면서 옷을 친 후, 마침내 칼에 엎드려 자결했다. 예양이 죽던 날, 조나라의 지사들이 모두 울며 그를 애도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나오는데, 사내대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는다는 예양의 말에서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가 유래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꾸민다.’라는 뜻의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도 나왔다. 같은 이야기가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에도 나온다.

 

(선비 사)는 회의문자로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는 사람이라는 데서 선비를 뜻한다. 그래서 ()(1)장기에 있어서 궁을 지키기 위하여 궁밭에 붙이는 두 개의 말 (2)중국 주()나라 때 사민(四民)의 위이며 대부(大夫)의 밑에 처해 있던 신분 등의 뜻으로 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관리(官吏), 벼슬아치 사내, 남자(男子) 군사(軍士), 병사(兵士) , 직무(職務) 칭호(稱號)나 직업의 이름에 붙이는 말 군인(軍人)의 계급 벼슬의 이름 벼슬하다 일삼다, 종사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선비 유(), 선비 언()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장수 장(), 백성 민()이다. 용례로는 병사를 지휘하는 무관을 사관(士官), 선비의 아내 또는 남자와 여자를 사녀(士女), 선비의 힘 또는 병사의 힘을 사력(士力), 장교가 아닌 모든 졸병을 사병(士兵), 병사의 대오를 사오(士伍), 학식이 있되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를 사인(士人), 군사를 사졸(士卒), 군사의 기세 또는 선비의 기개를 사기(士氣), 선비로서 응당 지켜야 할 도의를 사도(士道), 선비들 사이의 논의를 사론(士論), 선비와 서민 또는 양반 계급의 사람을 사민(士民), 일반 백성을 사서(士庶), 선비의 풍습을 사습(士習), 문벌이 좋은 집안 또는 그 자손을 사족(士族), 학문을 연구하고 덕을 닦는 선비의 무리를 사류(士類), 군사와 말을 사마(士馬), 선비의 기풍을 사풍(士風), 양반을 일반 평민에 대하여 일컫는 말을 사대부(士大夫), 사회적 지위가 있으며 덕행이 높고 학문에 통달한 사람을 사군자(士君子), 교육이나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을 인사(人士), 하사관 아래의 군인을 병사(兵士), 절의가 있는 선비를 지사(志士),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성심껏 장렬하게 싸운 사람을 열사(烈士), 의리와 지조를 굳게 지키는 사람을 의사(義士), 기개와 골격이 굳센 사람을 장사(壯士), 세상을 피하여 조용히 살고 있는 선비를 은사(隱士), 학덕이 있고 행실이 선비처럼 어진 여자를 여사(女士), 의욕이나 자신감이 충만하여 굽힐 줄 모르는 씩씩한 기세를 떨쳐 일으킴을 사기진작(士氣振作),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음을 사기충천(士氣衝天) 등에 쓰인다.

 

(할 위)는 상형문자로 (), ()는 통자(通字), ()는 간자(簡字)이다.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양을 본떴다. ()하여 하다, 이루다, 만들다, 다스리다의 뜻으로 삼고 다시 전()하여 남을 위하다, 나라를 위하다 따위의 뜻으로 쓴다. 그래서 ()하다 위하다 다스리다 되다, 이루어지다 생각하다 삼다 배우다 가장(假裝)하다 속하다 있다 행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 옮길 사(), 옮길 반(), 흔들 요(), 옮길 운(), 들 거(), 옮길 이(), 다닐 행(), 구를 전()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를 위함을 위국(爲國),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爲民), 다른 것에 앞서 우선하는 일이라는 위선(爲先), 힘을 다함을 위력(爲力), 첫번을 삼아 시작함을 위시(爲始),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생업을 삼음 또는 사업을 경영함을 위업(爲業), 사람의 됨됨이를 위인(爲人), 정치를 행함을 위정(爲政), 주되는 것으로 삼는 것을 위주(爲主), 예정임 또는 작정임을 위계(爲計), 진실한 즐거움을 위락(爲樂), 어떤 것을 첫 자리나 으뜸으로 함을 위수(爲首), 기준으로 삼음을 위준(爲準), 나라를 위한 기도를 위축(爲祝), 부모를 위함을 위친(爲親), 부모를 섬기는 도리라는 위친지도(爲親之道), 자식된 도리라는 위자지도(爲子之道), 자기를 이롭게 하려다가 도리어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이르는 위총구작(爲叢驅雀), 어떤 사람을 위해 벼슬자리를 새로이 마련한다는 위인설관(爲人設官), 임금 노릇하기도 신하 노릇하기도 어렵다는 위군난위신불이(爲君難爲臣不易), 도마 위의 물고기가 된다는 위어육(爲魚肉), 나라를 위한 충성스러운 절개라는 위국충절(爲國忠節) 등에 쓰인다.

 

(알 지)는 회의문자로 (; )(; 화살)의 합자(合字)이다. 화살이 활에서 나가듯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말한다. 많이 알고 있으면 화살()처럼 말()이 빨리 나간다는 뜻을 합()하여 알다를 뜻한다. 또 화살이 꿰뚫듯이 마음속에 확실히 결정한 일이나, 말은 마음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알다, 알리다, 지식 등을 말한다. 그래서 ()(1)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정신의 작용하는 힘. 깨닫는 힘 (2)()의 하나 등의 뜻으로 알다 알리다, 알게 하다 나타내다, 드러내다 맡다, 주재하다 주관하다 대접하다 사귀다 병이 낫다 사귐 친한 친구 나를 알아주는 사람 , 배우자(配偶者) 대접(待接), 대우(待遇) 슬기, 지혜(智慧, 知慧) 지식(知識), 지사(知事) 어조사(語助辭) 따위의 뜻이 있다.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알 인(), 살펴 알 량/(), 알 식(),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닐 행()이다. 용례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을 지식(知識),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지혜(知慧), 지적 활동의 능력을 지능(知能), 지혜로운 성품을 지성(知性), 지식이 있는 것 또는 지식에 관한 것을 지적(知的), 알아서 깨달음 또는 그 능력을 지각(知覺), 지식과 도덕을 지덕(知德), 아는 사람 또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봄을 지인(知人), 새로운 것을 앎을 지신(知新), 은혜를 앎을 지은(知恩), 지식이 많고 사물의 이치에 밝은 사람을 지자(知者), 제 분수를 알아 마음에 불만함이 없음 곧 무엇이 넉넉하고 족한 줄을 앎을 지족(知足), 자기 분에 지나치지 않도록 그칠 줄을 앎을 지지(知止),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 여러 사람이 어떤 사실을 널리 아는 것을 주지(周知), 어떤 일을 느끼어 아는 것을 감지(感知),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지(朋知), 기별하여 알림을 통지(通知), 인정하여 앎을 인지(認知), 아는 것이 없음을 무지(無知), 고하여 알림을 고지(告知), 더듬어 살펴 알아냄을 탐지(探知), 세상 사람들이 다 알거나 알게 함을 공지(公知), 서로 잘 알고 친근하게 지내는 사람을 친지(親知), 자기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한 친구를 지기지우(知己之友),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지피지기(知彼知己),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한다는 지과필개(知過必改) 등에 쓰인다.

 

▶️ (몸 기)는 상형문자이나 지사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본래 구불거리는 긴 끈의 모양을 본떴고, 굽은 것을 바로잡는 모양에서 일으키는 일의 뜻으로 쓰인다. 일으키다의 뜻은 나중에 ()로 쓰고, ()는 천간(天干)의 여섯번째로 쓰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自己), 자아(自我) 여섯째 천간(天干) 사욕(私慾) 어조사(語助辭) 다스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여섯 번째를 기사(己巳), 열여섯째를 기묘(己卯), 스물여섯째를 기축(己丑), 서른여섯째를 기해(己亥), 마흔여섯째 기유(己酉), 쉰여섯째를 기미(己未)라 한다. 그리고 자기의 물건을 기물(己物), 자기 마음을 기심(己心), 자기가 낳은 자녀를 기출(己出), 자신의 의견이나 소견을 기견(己見), 자신의 초상을 기상(己喪), 자기의 소유를 기유(己有), 자기의 물건은 기물(己物), 제 몸이나 제 자신으로 막연하게 사람을 가리키는 말을 자기(自己),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음을 수기(修己), 안색을 바로잡아 엄정히 함이나 자기자신을 다스림을 율기(律己), 몸을 가지거나 행동하는 일을 행기(行己), 자기에게 필요함 또는 그 일을 절기(切己), 언짢은 일이 제 자신에게 가까이 닥쳐 옴을 핍기(逼己), 신분이나 지위가 자기와 같음을 유기(類己), 자기를 사랑함 애기(愛己), 자기가 굶주리고 자기가 물에 빠진 듯이 생각한다는 기기기익(己飢己溺), 중종때 남곤 일파 조광조 등을 쫓아내어 죽인 사건을 기묘사화(己卯士禍), 기미년 31일 일제에 항거하여 일어난 한국의 독립운동을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등에 쓰인다.

 

(놈 자)는 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 ()는 동자(同字)이다. 원래의 자형(字形)()()의 합자(合字)이다. 나이 드신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낮추어 말한다()는 뜻을 합()하여 말하는 대상을 가리켜 사람, 놈을 뜻한다. 또는 불 위에 장작을 잔뜩 쌓고 태우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그래서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여, 어느 방면의 일이나 지식에 능통하여 무엇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또는 무엇을 하는 사람임을 뜻하는 말 (2)사람을 가리켜 말할 때, 좀 얕잡아 이르는 말로서, 사람 또는 놈 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 사람 , 장소(場所) 허락하는 소리 여러, 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접속사) ~와 같다 기재하다, 적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병을 앓는 사람을 환자(患者),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글을 쓰거나 엮어 짜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기자(記者),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책을 지은 사람을 저자(著者), 살림이 넉넉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을 부자(富者), 힘이나 기능이 약한 사람이나 생물 또는 집단을 약자(弱者), 그 사업을 직접 경영하는 사람을 업자(業者), 달리는 사람을 주자(走者), 어떤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을 신자(信者), 이치나 도리에 어두운 사람을 매자(昧者), 성질이 야릇하고 까다로운 사람 벽자(僻者), 악하고 간사한 사람을 특자(慝者), 협기 있는 사람을 협자(俠者),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사람을 참자(讒者), 책을 편저한 사람을 엮은이를 편자(編者), 비평하는 사람을 평자(評者), 솜씨 있는 사람이나 어떤 일에 숙련되어 있는 사람을 교자(巧者), 나이가 젊은 사람을 소자(少者),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 붉은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된다는 근주자적(近朱者赤) 등에 쓰인다.

 

(죽을 사)는 회의문자로 죽을사변(=; , 죽음)는 뼈가 산산이 흩어지는 일을 나타낸다. 즉 사람이 죽어 영혼과 육체의 생명력이 흩어져 목숨이 다하여 앙상한 뼈만 남은 상태로 변하니() 죽음을 뜻한다. ()의 오른쪽을 본디는 ()이라 썼는데 나중에 ()라 쓴 것은 ()는 변하다로 뼈로 변화하다란 기분을 나타내기 위하여서다. 그래서 ()는 죽는 일 또는 죽음의 뜻으로 죽다 생기(生氣)가 없다 활동력(活動力)이 없다 죽이다 다하다 목숨을 걸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 살 활(), 있을 유(), 날 생()이다. 용례로는 죽음을 사망(死亡), 활용하지 않고 쓸모없이 넣어 둠 또는 묵혀 둠을 사장(死藏), 죽음의 원인을 사인(死因), 죽는 것과 사는 것을 사활(死活), 사람이나 그밖의 동물의 죽은 몸뚱이를 사체(死體), 죽음을 무릅쓰고 지킴을 사수(死守), 죽어 멸망함이나 없어짐을 사멸(死滅), 죽어서 이별함을 사별(死別), 죽기를 무릅쓰고 쓰는 힘을 사력(死力),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서로 저버리지 않을 만큼 절친한 벗을 사우(死友), 죽을 힘을 다하여 싸우거나 목숨을 내어 걸고 싸움 또는 그 싸움을 사투(死鬪), 죽음과 부상을 사상(死傷), 수형자의 생명을 끊는 형벌을 사형(死刑), 태어남과 죽음이나 삶과 죽음을 생사(生死), 뜻밖의 재앙에 걸리어 죽음을 횡사(橫死), 참혹하게 죽음을 참사(慘事), 쓰러져 죽음을 폐사(斃死), 굶어 죽음을 아사(餓死), 물에 빠져 죽음을 익사(溺死), 나무나 풀이 시들어 죽음을 고사(枯死), 죽지 아니함을 불사(不死), 병으로 인한 죽음 병사(病死), 죽어도 한이 없다는 사무여한(死無餘恨), 죽을 때에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사부전목(死不顚目), 죽을 고비에서 살길을 찾는다는 사중구활(死中求活), 죽는 한이 있어도 피할 수가 없다는 사차불피(死且不避), 죽더라도 썩지 않는다는 사차불후(死且不朽),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라는 사생지지(死生之地), 다 탄 재가 다시 불이 붙었다는 사회부연(死灰復燃), 이미 때가 지난 후에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죽고 사는 것을 가리지 않고 끝장을 내려고 덤벼든다는 사생결단(死生決斷), 죽어서나 살아서나 늘 함께 있다는 사생동거(死生同居), 죽어야 그친다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사이후이(死而後已)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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