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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다난흥방(多難興邦)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5.12|조회수807 목록 댓글 0

다난흥방(多難興邦)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나야 나라가 흥성해진다는 뜻으로,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多 : 많을 다(夕/3)
難 : 어려울 난(隹/11)
興 : 일 흥(臼/9)
邦 : 나라 방(阝/4)

출전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4년


개인이나 나라나 평안한 나날만 계속되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지 않아 호사다마(好事多魔)나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말이 많이 나왔다.

일면 흥진비래(興盡悲來)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여 나쁘고 어려운 일 다음에는 좋은 세상이 온다고 위안을 주는 교훈도 있다.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면(多難) 오히려 내부를 결속시켜 나라가 더욱 일어난다는(興邦) 이 성어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나라 위기 때마다 뜻있는 사람들이 인용하여 용기를 고취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삼국시대(三國時代) 위(魏)나라에서 세력을 떨치던 사마씨(司馬氏)가 왕위를 물려받아 세운 진(晉)나라는 결국 통일을 이뤘다.

하지만 건국 초기 황족 8명의 피비린내 나는 세력 다툼 팔왕지난(八王之亂)이 16년이나 끌어 나라는 혼란의 극에 달했다.

이 틈을 타 북방의 흉노(匈奴), 선비(鮮卑) 등 다섯 민족이 남진한 오호난화(五胡亂華)까지 일어나 2대의 왕이 연속 살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광대한 영토가 유린되는 이런 난리를 보고도 좌승상 사마예(司馬睿)는 강남에서 관망만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조적(祖逖), 유곤(劉琨)과 같은 장수들은 북벌을 단행하는 한편, 180여 명의 이름으로 권진표(勸進表)를 올리고 제위 계승을 권했다.

그 내용 중 ‘많은 재난이나 어려움은 우리나라를 공고히 하게 하며, 깊은 근심은 황제로 하여금 더욱 현명하게 해줍니다.'에서 이 성어가 나왔다.
或多難以固邦國 或殷憂以啓聖明.
혹다난이고방국 혹은우이계성명.

사마예가 계승한 나라가 동진(東晋)인데 그는 현명하게 대처를 못하고 북벌은커녕 두 장군을 의심해 죽게 만들었다. 진서(晉書) 원제(元帝)편에 실려 있다.


⏹ 다난흥방(多難興邦)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나야 나라가 흥성해진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鄰國之難, 不可虞也.
이웃 나라의 재난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或多難以固其國, 啓其疆土.
혹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음으로써 그 나라를 굳건하게 만들 수 있고, 그 영토를 넓힐 수 있으며,

或無難以喪其國, 失其守宇.
혹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없음으로 해서 나라를 잃고 그 집을 잃을 수 있다.

이 말은 좌전(左傳) 소공(昭公) 4년에 나오는데,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음으로 해서 나라를 굳건하게 만들 수 있다는 다난고국(多難固國)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나야 나라를 흥하게 할 수 있다는 다난흥방(多難興邦)이 유래했다.

다난흥방(多難興邦)은 다음의 전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진(晉)의 창업자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아들 혜제(惠帝) 때 진나라는 팔왕(八王)의 난으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팔왕의 난은 여덟 명의 황족이 정권을 놓고 무려 16년 동안을 싸웠던 사건인데, 서로 이 싸움에서 이기려고, 각각 흉노족이나 선비족 등 외부의 이민족 세력을 불러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내부의 싸움에 무력으로 개입하게 된 이민족들은 마침내는 중원 땅에 밀고 들어와 그들의 독립적인 정권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3대 황제 회제(懷帝)와 4대 민제(閔帝)가 모두 포로로 잡혀 피살되자, 진은 부득이 장강 이남으로 나라를 옮기게 되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동진(東晉)이라고 한다. 이로써 서진은 멸망을 당하고 중국의 북쪽에 오호십육국의 시대가 열린다.

당시 좌승상으로 있던 황족 사마예(司馬睿)는 건강(健康, 남경)을 지키고 있었는데, 수도 낙양이 함락되고 많은 백성들이 재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러자 조적(祖逖)과 유곤(劉琨)을 비롯한 장군들이 군사를 이끌고 북벌을 하는 한편, 사공(司空), 병주자사(幷州刺史), 광무후(廣武侯) 유곤(劉琨), 유주자사(幽州刺史) 등 180인이 상서를 올려 그에게 제위를 계승하여 나라 일을 맡도록 청했는데, 이 상서를 권진표(勸進表)라고 하며, 유곤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글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或多難以固邦國, 或殷憂以啓聖明.
혹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음으로 해서 나라를 굳건히 할 수 있고, 혹은 깊은 염려는 황제의 밝음을 열어 줄 수 있습니다.

是以齊有無知之禍, 而小白爲五伯之長.
이런 까닭에 제나라는 무지(無知)의 화가 있고 나서 소백이 오패의 장이 되었으며,

有麗姬之難, 而重耳以主諸侯之盟.
진나라는 여희(麗姬)의 혼란이 있고 나서 중이가 제후의 맹주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사마예는 동진의 초대 황제에 즉위했는데, 끝내 북벌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두 사람을 의심하여 유곤을 살해했고, 조적은 울분을 이기지 못해 죽고 말았다.

무지의 화란 제나라 양공(襄公) 때 무지가 일으킨 난을 말한다. 희공이 죽은 후 그의 큰아들 제아(諸兒)가 뒤를 이었는데, 이이가 양공(襄公)이다.

양공은 포악무도했는데, 그러다 보니 법령이 제대로 서지 않고 간사한 무리가 판을 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양공의 동생인 공자 규와 소백도 자신들의 안전 문제를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공자 규는 관중과 함께 노(魯)나라로 피했고, 공자 소백은 포숙과 더불어 거(莒)나라로 망명했다. 양공을 원망하는 신하들이 자꾸 늘어났다.

그중에서도 양공을 가장 원망한 사람은 양공의 사촌동생 무지였다. 희공이 살아 있을 때 동생 이중년(夷中年)을 아주 아꼈는데, 동생이 일찍 죽자 그의 아들 무지를 태자와 똑같이 대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물론 공자 규와 소백은 그의 아버지의 이런 처사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데 제아가 즉위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사촌동생 무지에 대한 대우를 폐지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무지는 사촌형 양공에 대해 매우 깊은 원한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무지는 비밀리에 불평분자들을 모았다.

마침 교체를 해 주지 않는 데 불만을 품고 반란을 계획하던 국경 수비대장들이 양공의 정치가 날로 포악해지자 급기야는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무지를 앞세워 궁중에 침입하여 다락방 속에 숨어 있는 양공을 찾아내어 죽여 버렸다.

생각지도 않은 무지가 제나라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나라를 경영할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역시 양공처럼 포악무도하게 정치를 하다가 많은 사람에게 원한을 샀고, 왕이 된 지 수개월 만에 살해되고 말았다.(⏺ 관포지교(管鮑之交) 참조)

‘여희의 혼란’이란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총희인 여희로 인해 일어난 혼란을 말한다. 여희는 자기가 낳은 아들 해제(亥齊)를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계략을 꾸며 태자 등을 죽이려고 했다.

여희의 계략에 넘어간 헌공은 태자 신생(申生)과 중이(重耳)와 이오(夷吾) 등 세 아들을 죽이려 했다. 태자 신생은 자살했고, 중이와 이오는 국외로 도피하였다. 하지만 헌공이 죽은 뒤에 해제는 군주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대신들에게 살해당하였고, 여희는 자살하고 말았다.

중이는 무려 19년 동안 국외로 떠돌다가 돌아와 진나라의 왕이 되었는데, 이이가 바로 춘추오패의 한 사람인 진문공(晉文公)이다.(⏺ 일훈일유(一薰一蕕) 참조)


⏹ 다난흥방(多難興邦)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나면 나라가 부흥한다는 뜻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러모로 노력해야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 진(晉)은 혜제(惠帝)때 '팔왕(八王)의 난' 등으로 권력층에 내분이 일어났다. 이 틈을 타 북방민족이 침입하여 망하게 되니 이를 서진(西晉)이라 한다.

그 후 일족 중 사마 예(司馬睿; 동진의 元帝)가 양쯔강(揚子江) 이남의 땅을 영토로 하여 317년 건업(建業, 지금의 남경)에 진왕조를 재건, 이를 동진(東晉)이라 하였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니 장수들은 군사를 이끌고 북방지역을 침범한 호족들을 몰아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황제는 미적미적하였다. 이에 사공(司空), 광무후 유곤(劉琨), 광요후 조적 등 180여 명이 권진표(勸進表)를 올렸다.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臣聞昏明迭, 否泰相濟, 天命無改, 曆數有歸.
신들이 듣기에 어둠과 밝음은 번갈아 들고, 비운과 행운이 번갈아 오며, 천명은 바뀌지 않고, 역수가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或多難以固邦國, 或殷憂以啓聖明.
많은 재난이나 어려움은 우리나라를 공고히 하게 하며, 깊은 근심은 황제로 하여금 더욱 현명하게 해줍니다."

나라가 망해 남경으로 피난 가서 새 나라를 세우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중흥의 조짐이 있다고 희망을 찾았다.

비록 이들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조적은 무기를 직접 조달해가며 갈족의 왕 석륵(石勒)을 물리치고 황하 이남의 전 영토를 수복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다난흥방(多難興邦)'이란 말이 나왔다. 많은 어려운 일을 겪고서야 나라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러모로 노력해야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진서(晉書)권육 원제(元帝)편에 나온다.

중국 쓰촨(四川)성 지진 지역을 방문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베이촨(北川) 중학교의 임시 천막교실에서 이 고사성어를 칠판에 크게 쓰고 학생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재난을 겪은 사람이야말로 한층 더 노력할 수 있다. 이 네 글자를 절대 잊지 말라."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불어넣는 지도자의 품격이 엿보이는 듯하다.


▶️ 多(많을 다)는 ❶회의문자로 多는 夕(석; 저녁)을 겹친 모양이 아니고 신에게 바치는 고기를 쌓은 모양으로 물건이 많음을 나타낸다. 뒷날에 와서 夕(석;밤)이 거듭 쌓여서 多(다)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多자는 '많다'나 '낫다', '겹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多자는 夕(저녁 석)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실은 肉(고기 육)자를 겹쳐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서는 肉자가 서로 겹쳐진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지만, 금문에서는 夕자와 肉자가 매우 비슷하여 혼동이 있었다. 多자는 본래 고기가 쌓여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많다'라는 뜻을 갖게 된 글자이다. 그래서 多(다)는 ①많다 ②낫다, 더 좋다, 뛰어나다 ③아름답게 여기다 ④많게 하다 ⑤두텁다 ⑥붇다, 늘어나다 ⑦겹치다, 포개지다 ⑧도량이 넓다 ⑨중(重)히 여기다 ⑩크다 ⑪남다 ⑫공훈(功勳), 전공(戰功) ⑬나머지 ⑭단지(但只), 다만, 겨우 ⑮두터이 ⑯많이 ⑰때 마침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적을 과(寡), 적을 소(少)이다. 용례로는 모양이나 양식이 여러 가지임을 다양(多樣), 운수가 좋음이나 일이 좋게 됨을 다행(多幸), 수효가 많음 또는 많은 수효를 다수(多數), 분량이나 정도의 많음과 적음을 다소(多少), 일이 바싹 닥쳐서 매우 급함을 다급(多急), 매우 바쁨이나 일이 매우 많음을 다망(多忙), 복이 많음 또는 많은 복을 다복(多福), 많은 분량을 다량(多量), 인정이 많음이나 교분이 두터움을 다정(多情), 여러 가지 빛깔이 어울려 아름다움을 다채(多彩), 많이 읽음을 다독(多讀), 많이 발생함을 다발(多發), 근원이 많음 또는 많은 근원을 다원(多元), 많이 알고 있음으로 학식이 많음을 다식(多識), 많은 사람이나 여러 사람을 다중(多衆), 가장 많음을 최다(最多), 너무 많음을 과다(過多), 소문 따위가 어느 곳에 널리 알려진 상태에 있음을 파다(播多), 매우 많음을 허다(許多), 여러 가지가 뒤섞여서 갈피를 잡기 어려움을 잡다(雜多), 번거로울 정도로 많음을 번다(煩多),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를 찾기 어려움 또는 방침이 많아 할 바를 모르게 됨을 이르는 말을 다기망양(多岐亡羊),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는 말을 다다익선(多多益善), 정이 많고 느낌이 많다는 뜻으로 생각과 느낌이 섬세하고 풍부함을 이르는 말을 다정다감(多情多感), 여러 가지로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사다난(多事多難),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잘 처리함을 이르는 말을 다다익판(多多益辦), 아들을 많이 두면 여러 가지로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남다구(多男多懼), 유난히 잘 느끼고 또 원한도 잘 가짐 또는 애틋한 정도 많고 한스러운 일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정다한(多情多恨), 밑천이 많은 사람이 장사도 잘함을 이르는 말을 다전선고(多錢善賈), 수효나 양의 많고 적음을 헤아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다소불계(多少不計), 재주와 능력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재다능(多才多能), 재주가 많은 사람은 흔히 약하고 잔병이 많다는 말을 다재다병(多才多病), 보고 들은 것이 많고 학식이 넓음을 이르는 말을 다문박식(多聞博識),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한 처지에 빠짐을 이르는 말을 다언삭궁(多言數窮), 일이 많은 데다가 까닭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사다단(多事多端), 일이 많아 몹시 바쁨이나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쁨을 이르는 말을 다사다망(多事多忙), 일이 가장 많을 때나 가장 바쁠 때 또는 흔히 국가적이나 사회적으로 일이 가장 많이 벌어진 때를 이르는 말을 다사지추(多事之秋),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어쩌다가 사리에 맞는 말도 있음을 이르는 말을 다언혹중(多言或中), 재능과 기예가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재다예(多才多藝), 여러 가지로 일이 많고 몹시 바쁨을 이르는 말을 다사분주(多事奔走), 종류가 많고 그 양식이나 모양이 여러 가지임을 이르는 말을 다종다양(多種多樣), 좋은 일에는 방해가 되는 일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호사다마(好事多魔), 학문이 넓고 식견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박학다식(博學多識), 준치는 맛은 좋으나 가시가 많다는 뜻으로 좋은 일의 한편에는 귀찮은 일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시어다골(鰣魚多骨), 일이 얽히고 설키다 갈피를 잡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복잡다단(複雜多端), 입춘을 맞이하여 길운을 기원하는 글을 이르는 말을 건양다경(建陽多慶), 오래 살면 욕됨이 많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고생이나 망신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수즉다욕(壽則多辱), 이익을 적게 보고 많이 팔아 이문을 올림을 일컫는 말을 박리다매(薄利多賣) 등에 쓰인다.

▶ 難(어려울 난, 우거질 나)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새 추(隹;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근; 난)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진흙 속에 빠진 새가 진흙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다는 뜻이 합(合)하여 '어렵다'를 뜻한다. 본래 菫(근)과 鳥(조)를 결합한 글자 형태였으나 획수를 줄이기 위하여 難(난)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새의 이름을 가리켰다. ❷형성문자로 難자는 ‘어렵다’나 ‘꺼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難자는 堇(진흙 근)자와 隹(새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堇자는 진흙 위에 사람이 올라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근→난’으로의 발음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難자는 본래 새의 일종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나 일찌감치 ‘어렵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새를 뜻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새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가 왜 ‘어렵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일까? 혹시 너무도 잡기 어려웠던 새는 아니었을까? 가벼운 추측이기는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래서 難(난, 나)은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어서 어려운 형편이나 처지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어렵다 ②꺼리다 ③싫어하다 ④괴롭히다 ⑤물리치다 ⑥막다 ⑦힐난하다 ⑧나무라다 ⑨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⑩공경하다, 황공해하다 ⑪근심, 재앙(災殃) ⑫병란(兵亂), 난리(亂離) ⑬적, 원수(怨讐) 그리고 ⓐ우거지다(나) ⓑ굿하다(나) ⓒ어찌(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쓸 고(苦), 어려울 간(艱)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쉬울 이(易)이다. 용례에는 어려운 고비를 난국(難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난문(難問), 어려운 문제를 난제(難題), 전쟁이나 사고나 천재지변 따위를 당하여 살아 가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 백성을 난민(難民), 풀기가 어려움을 난해(難解), 일을 해 나가기가 어려움을 난관(難關), 무슨 일이 여러 가지 장애로 말미암아 순조롭게 진척되지 않음을 난항(難航),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기색을 난색(難色), 어려움과 쉬움을 난이(難易), 견디어 내기 어려움을 난감(難堪), 바라기 어려움을 난망(難望), 처리하기 어려움을 난처(難處), 잊기 어렵거나 또는 잊지 못함을 난망(難忘), 어떤 사물의 해명하기 어려운 점을 난점(難點), 뭐라고 말하기 어려움을 난언(難言), 병을 고치기 어려움을 난치(難治), 이러니 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시비를 따져 논하는 것을 논란(論難), 남의 잘못이나 흠 따위를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을 비난(非難), 경제적으로 몹시 어렵고 궁핍함을 곤란(困難),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을 재난(災難), 힐문하여 비난함을 힐난(詰難), 괴로움과 어려움을 고난(苦難), 위험하고 어려움을 험난(險難), 공격하기 어려워 좀처럼 함락되지 아니하는 난공불락(難攻不落), 잊을 수 없는 은혜를 난망지은(難忘之恩), 누구를 형이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난형난제(難兄難弟) 등에 쓰인다.

▶️ 興(일 흥, 피 바를 흔)은 ❶회의문자로 同(동)과 舁(여)의 합자(合字)이다. 여럿이 들어 돌리다, 일으키다, 일어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興자는 ‘일으키다’나 ‘창성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興자는 舁(마주들 여)자와 同(한 가지 동)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舁자는 위아래로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마주 들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興자는 이렇게 무언가를 마주 드는 모습을 그린 舁자와 ‘함께’라는 뜻을 가진 同자를 결합한 것으로 ‘함께 마주 들다’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興자의 갑골문을 보면 큰 그릇을 맞잡고 옮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고대에는 나라의 부흥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다. 興자는 그러한 의미가 담긴 것으로 ‘일으키다’나 ‘창성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興(흥, 흔)은 (1)재미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감정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일다 ②일으키다 ③시작하다 ④창성(昌盛)하다⑤흥겹다 ⑥기뻐하다 ⑦성공하다 ⑧등용하다 ⑨다스리다 ⑩징발(徵發)하다 ⑪느끼다 ⑫유행하다 ⑬흥(興), 흥취(興趣) ⑭흥미(興味) ⑮취미(趣味) ⑯시(詩)의 한 체(體) ⑰혹시(或是: 그러할 리는 없지만 만일에) ⑱어조사(語助辭) 그리고 ⓐ희생의 피를 바르다(흔) ⓑ다툴 기미, 실마리(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세울 건(建), 왕성할 왕(旺), 창성할 창(昌), 우거질 번(蕃), 필 발(發), 성할 성(盛), 설 립(立), 세울 수(竪), 일어날 기(起),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빠질 몰(沒), 패할 패(敗)이다. 용례로는 어떤 자극으로 감정이 북받쳐 일어남 또는 그 감정을 흥분(興奮), 어떠한 사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감정을 흥미(興味), 잘 되어 일어남과 못 되어 없어짐이나 흥함과 망함을 흥망(興亡), 왕성하게 행해짐을 흥행(興行), 마음이 끌릴 만큼 좋은 멋이나 취미를 흥취(興趣), 재미있거나 신나는 느낌, 또는 그런 기분을 흥감(興感), 쇠퇴하던 것이 다시 일어나거나 일어나게 함을 흥복(興復), 감동되어 떨쳐 일어남을 흥기(興起), 침체된 상태에서 떨쳐 일으킴을 진흥(振興), 한 번 쇠퇴한 것이 다시 성하여 일어남 또는 일어나게 함을 부흥(復興), 세차게 일어남을 융흥(隆興), 새로 일어남을 신흥(新興), 멋있는 흥이나 좋은 흥취를 가흥(佳興), 흥취 있게 놂을 유흥(遊興), 술에 취하여 일어나는 흥취를 취흥(醉興), 마음에 깊이 감동되어 일어나는 흥취를 감흥(感興), 한창 흥겹게 일어나는 흥을 고흥(高興), 쇠퇴한 것이 중간에서 다시 일어남을 중흥(中興), 즐거운 일이 지나가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흥진비래(興盡悲來),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하는 일을 흥망성쇠(興亡盛衰), 흥미가 넘칠 만큼 많다는 흥미진진(興味津津), 있는 말 없는 말을 보태어 함부로 남을 비방함을 흥와주산(興訛做訕), 나라를 일으키고 군사를 강하게 함을 흥국강병(興國强兵), 흥미를 잃어 가는 모양을 이르는 말을 흥미삭연(興味索然) 등에 쓰인다.

▶️ 邦(나라 방)은 ❶형성문자로 邫(방)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우부방(阝=邑; 마을)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경계(境界)를 뜻하는 글자 丯(봉, 방)으로 이루어졌다. 경계를 나타내는 우거진 수목(樹木)으로 이루어졌다. 경계 내(內)의 부족(部族)의 뜻이, 전(轉)하여 나라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邦자는 ‘나라’나 ‘수도’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邦자는 丰(예쁠 봉)자와 邑(고을 읍)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丰자는 초목이 무성하게 올라온 모습을 그린 것으로 ‘우거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邦자를 보면 田(밭 전)자 위로 풀이 올라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밭에 농작물이 무성히 자라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사람들이 ‘터전을 잡은 곳’이라는 뜻이다. 금문에서는 田자 대신 邑자가 쓰이게 되었는데, 의미 역시 확대되어 ‘나라’나 ‘수도’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전에는 邦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하지만 한(漢)나라 때는 태조 유방(劉邦)의 이름과 겹치는 것을 피하고자 같은 뜻을 가진 國(나라 국)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邦(방)은 성(姓)의 하나 ①나라 ②서울, 수도(首都) ③제후(諸侯)의 봉토(封土) ④천하(天下) ⑤형(兄), 윗누이 ⑥제후를 봉하다 ⑦여지(輿地)를 주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라 국(國)이다. 용례로는 나라의 정치를 방치(邦治), 영토와 국민과 주권을 갖춘 사회를 방가(邦家), 영토와 국민과 주권을 갖춘 사회나 나라를 방국(邦國), 서울에 가까운 땅으로 서울 근교를 방기(邦機), 나라와 나라가 사귀는 관계를 방교(邦交), 나라의 근본을 방본(邦本), 나랏말을 방어(邦語), 자기 나라에서 제작된 영화를 방화(邦畫), 나라에서 금하는 일을 방금(邦禁), 나라의 풍속을 방속(邦俗), 나라의 형률을 방형(邦刑), 나라의 경계를 방경(邦境), 나라의 경사를 방경(邦慶), 나라의 길흉의 의식을 방례(邦禮), 나라의 사업을 방업(邦業), 자기 나라 사람을 방인(邦人), 다른 나라를 수방(殊邦), 동맹을 맺은 나라를 맹방(盟邦), 가까이 사귀는 나라를 우방(友邦), 나라를 합침을 합방(合邦), 모든 나라를 만방(萬邦), 우리 나라를 아방(我邦), 동쪽에 있는 나라를 동방(東邦), 각 나라 또는 여러 나라를 각방(各邦), 힘이 강한 나라를 강방(强邦), 내가 태어난 나라를 부모지방(父母之邦), 예의를 숭상하며 잘 지키는 나라를 예의지방(禮儀之邦), 위험한 곳에 들어가지 않음을 위방불입(危邦不入), 많은 어려운 일을 겪고서야 나라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러모로 노력해야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다난흥방(多難興邦)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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