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충보국(盡忠報國)
충성을 다하여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생명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 또는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헌신 봉공하는 것을 말한다.
盡 : 다될 진(皿/9)
忠 : 충성 충(心/4)
報 : 갚을 보(土/9)
國 : 나라 국(囗/8)
출전 : 주서(周書) 안지의전(顔之儀傳)
남북조시대 북주(北周)의 선제(宣帝)가 죽고 8세의 어린 정제(靜帝)가 뒤를 이었다. 조정에서는 나이 어린 정제의 후견인 문제로 의견 대립이 일어났다.
신하인 유방(劉昉), 정역(鄭譯) 등은 선제가 죽기 전에 반포한 명령을 사칭하여 양견(楊堅; 후의 隋文帝)을 승상으로 세워 정제를 보좌하게 하려고 했다. 안지의(顔之儀)는 선제의 유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거부하고 따르지 않았다.
유방 등은 조서를 만들어 서명을 하고 안지의에게도 서명을 강요했다. 그러자 안지의가 큰소리로 꾸짖었다. “선제께서 막 돌아가시고 즉위한 황제는 연소하므로 집정하는 대신들은 마땅히 황족 중에서 가장 걸출한 조왕(趙王)에게 담당하도록 해야 하오. 여러분들은 조정의 큰 은혜를 입었으므로 마땅히 충성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지, 어찌하여 제위를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오.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선제를 기망할 수는 없소(宜在宗英. 方今賢戚之內, 趙王最長, 以親以德, 合膺重寄. 公等備受朝恩, 當思盡忠報國, 奈何一旦欲以神器假人. 之儀有死而已, 不能誣罔先帝.).”
또 중국 남송(南宋)의 충신 악비(岳飛)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는 무예와 병법에 뛰어나 북쪽의 금(金)나라 침략에 맞서 굳건히 지킨 명장이기도 하다.
장군이 되기 전 어느 때 늘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겠다며 결심을 하던 아들을 보고 그의 어머니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등에 문신을 새겨 주었다. 바로 ‘盡忠報國’이었다.
악비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나라에 대한 충성을 한시도 잊지 않고 빼앗긴 영토를 찾아오자는 북벌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화친을 주장하는 간신 진회(秦檜)의 음모에 빠져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야기가 전하는 ‘송사(宋史)의 악비전’에 하주(何鑄)라는 사람에게 국문을 당할 때가 묘사되어 있다.
‘악비는 윗옷을 찢어 등을 보여주었는데 진충보국 네 글자가 피부 깊이 새겨져 있었다(初命何鑄鞫之, 飛裂裳以背示鑄, 有盡忠報國四大字, 深入膚理)’
◼ 진충보국(盡忠報國)
조선 중기에 일화와 해학(諧謔)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오성(鰲城)과 한음(漢陰)이라는 문신(文臣)이 있었다.
오성은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해졌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고, 한음(漢陰)은 이덕형(李德馨)이다.
이 두 분은 어릴 적부터 아주 가까운 친구로서, 선조(宣祖) 때 같이 벼슬하다가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치르면서 많은 공훈을 세웠고, 벼슬이 신하로서는 최고 지위인 영의정(領議政)에까지 이르렀고, 광해군(光海君) 때 영창대군(永昌大君) 살해와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귀양가는 신세가 되었는데, 두 분의 일생이 비슷하다.
한음은, 임진왜란 때는 체찰사(體察使)를 맡아 전쟁을 지휘하고, 명나라에 원병(援兵)을 요청하는 등 분골쇄신(粉骨碎身)하였고,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도 복구사업에 쉴 틈이 없었다.
나라 일이 워낙 바빠 집에 돌아가 식사할 겨를도 없었다. 그래서 대궐 문 밖에 조그만 집을 한 채 빌려 첩으로 하여금 거기서 거처하게 하여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날씨가 매우 더웠는데, 한음은 임금에게 장시간 여러 가지 일을 아뢰고 나자, 목이 되게 타고 가슴이 답답하였다. 대궐문 밖의 임시 거처로 급히 돌아와 입을 열어 말을 하기도 전에 손부터 내밀었다. 물을 달라는 표시였다.
그런데 그 첩은 미리 제호탕(醍醐湯)을 준비하였다가 바쳤다. 제호탕이란, 대추 오매(烏梅) 백단향(白檀香) 등 한약재를 가루로 내어 꿀에 버무려 두었다가 찬물에 타서 먹는 우리나라 전통의 청량음료이다.
한음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마시려고 하다가 마시지 않고 그 첩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나는 이제부터 너를 버리겠으니, 너 갈 데로 가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 길로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버렸다.
그 첩은 평소 매우 영리하였는데 한음의 총애를 한층 더 받기 위해서 미리 머리를 써서 더위를 식혀줄 제호탕을 준비하였는데, 그 일로 인하여 자신이 버림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울다가 이튿날 한음과 마음이 가장 잘 통하는 백사(白沙)에게로 달려가 그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백사도 친구 한음이 정말 사랑하던 첩을 버렸다는 말을 듣고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 뒤 한음을 만나자 백사는 “총애하던 여인을 아무 이유도 없이 버리는 것은 어째서인지?” 라고 묻자,
한음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여인이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네. 얼마 전 내가 임금님께 일을 아뢰고 나왔을 때. 날씨가 매우 더워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말랐네. 그런데 내가 말도 하기 전에 그녀가 미리 제호탕을 준비했다가 주는 게 아닌가. 그 영리함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내가 그 그릇을 받아 들고서 그 얼굴을 보니, 온갖 애교가 내 마음을 끌어 더욱 아름답게 보이더군. 그래서 내가 ‘전쟁 뒤에 나라가 어지러워 아직 평정을 찾지도 못하여 안위(安危)를 걱정해야 할 시국인데, 나라 일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마음이 끌려 돌아보는 곳이 있게 되면 나라 일을 그르치고 말겠구나.’라고 생각하여 은혜와 사랑을 끊고 나라 일에 전념하기로 한 것이라네. 그녀에게 죄가 있는 것은 아니라네.”
한음의 말을 듣고 백사는, “자네의 이번 일은 정말 늠름한 대장부다운 처사라네. 나 같은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일일세” 라고 탄복하며 칭찬해 마지않았다.
(大東奇聞 券二)
나라 일을 맡은 공직자로서 개인적인 애정관계를 끊은 한음의 처사는 공정하다고 하겠다. 모든 공직자들이 자기 사사로운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충성스런 마음으로 나라 일에 전념한다면, 나라는 저절로 잘되어 갈 것이다.
◼ 진충보국(盡忠報國)
충성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다
북서(北書) 안지의전(顔之儀傳)에 실려 전해진다.
해마다 상기하는 일이지만 6월은 호국보은(護國報恩)의 달이다. 호국보은이란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위하여 힘쓴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함을 말한다.
우리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커다란 비극을 치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은 구소련(舊蘇聯)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金日成)이 일으킨 명백한 침략전쟁이며, 그 후 UN이 개입되고 소련과 중국이 북(北韓)을 지원하는 이념전쟁으로 확대되어 아직까지 휴전선이 존재하고, 이산가족(離散家族)들의 한(恨)을 풀어주지 못하며, 서로를 적대시(敵對視)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아물지 않는 6.25 후유증은 이제 불행하게도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집단까지 생겨 숭고한 호국영령(護國英靈)들의 마음을 짓밟는 역할마저 서슴지 않고 있다.
진충보국(盡忠報國)의 유래는 멀리 중국의 남북조(南北朝)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송(宋)나라 휘종(徵宗) 때 금(金)나라가 여러 차례 송나라를 침략하였다.
그 당시 부정부패(不正腐敗)가 만연했던 송나라는 금(金)나라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굴복해서 황하(黃河) 이북의 땅을 모두 금나라에 내어주고 휘종(徽宗)과 그의 아들 흠종(欽宗)은 수도(首都)인 개봉(開封)이 함락될 때 포로로 잡혀서 북방으로 끌려갔다.
이런 와중에서도 휘종의 아홉째 아들인 강왕(康王)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탈출하였고, 그는 장강(長江)을 건너 절강 임안(臨安)에서 남송(南宋)을 개국하여 고종(高宗)이 되었다. 그렇게 한 후 송나라는 겨우 나라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송나라 조정에 있던 대신들은 대부분이 무능하고 어리석은 데다가 놀기를 좋아해서 나라의 큰일은 돌보지 않고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기에 급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송(南宋)에는 다행히 악비(岳飛)라는 큰 충신영웅(忠臣英雄)이 있었다. 그는 무예(武藝)와 병법(兵法)에 뛰어났으며, 밤낮으로 나라의 위기에 대해 진정으로 염려하였다. 이런 난세를 보면서 악비(岳飛)는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이때 아주 현명하고 대의(大義)에 밝은 악비의 어머니는 아들이 나라를 위해 늘 걱정을 하면서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세운 것을 알고 매우 기뻐하며 격려하였다.
어느 날 악비의 어머니는 아들이 서재에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탄식하는 것을 보고 아들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든지 간에 너는 나라의 은혜(恩惠)에 보답(報答)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뜻에서 내가 네 등에 문신(文身)을 새겨 영원히 잊지 않게 해주고자 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악비는 나라에 충성을 다할 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효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그는 즉시 웃옷을 벗고 돌아앉아 어머니에게 문신을 새기게 하였다.
악비의 어머니는 서슴없이 아들의 등에 '진충보국(盡忠報國)'이란 네 글자를 새겨 넣었다.
그 후 악비는 북벌을 하여 여러 차례 전투에 승리했고, 그는 국가적 영웅으로 휘종과 흠종을 모셔 오고 빼앗긴 강토를 수복하자고 주장했지만 고종(高宗)은 화의(和議)를 주장하는 당시 재상인 진회(秦檜)의 말만 듣고 악비의 말은 무시하였다.
그 후 악비는 진회의 음모에 빠져 서른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국가에 더 충성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으며 송나라는 금나라에 군신(君臣)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악비는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제갈량(諸葛亮)에 버금가는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리고 남송(南宋) 조정(朝廷)은 그에게 무목(武穆), 충무(忠武)의 시호를 내리고, 악왕묘(岳王廟)라는 사당을 지어 추모하는 등 악비장군을 크게 추앙하고 있다.
악비의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아들의 등에 '진충보국(盡忠報國)'이란 문신을 새겨 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악비와 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이익은 돌보지 않고 일하는 것을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고 한다.
김일성(金日成)이 일으킨 6.25 사변 때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들이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고 쓴 머리띠를 두르고 입영열차에 올라 전선으로 떠나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던진 고귀함, 또 조국을 위해 이름 없이 산화한 무명용사, 학도병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명예도, 재물도, 권력도 아닌 오직 조국(祖國)을 위기(危機)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일념(一念)에서 꽃같은 젊은 고귀한 생명을 바쳤던 것이다.
국가의 안위와 풍요는 개인들의 사욕(私慾)이나 파당(派黨)들의 이익 추구에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는 이렇게 노래했다.
天下雖興好戰必亡
천하가 비록 흥해도 전쟁을 좋아하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天下雖安忘戰必危
천하가 비록 평안해도 전쟁을 잊고 있으면 (그 나라는) 반드시 위태롭다.
不好不忘天下之王也
(따라서) 전쟁을 좋아하지 않고, 평안함에 (전쟁대비)잊고 있지 않는 자 진정한 왕이다
국민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고귀한 생명을 아낌없이 조국에 바친 거룩한 호국영령(護國英靈)께 부끄러움이 없는 후손이 되어야 한다. 이 고귀하고 소중한 진충정신(盡忠精神)을 정치적으로 장난을 치는 자들은 국가를 위태로움으로 몰아가는 가장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자행하는 자가 될 것이다.
▶️ 盡(다할 진)은 ❶형성문자로 尽(진)은 통자(通字), 尽(진)은 간자(簡字), 侭(진)과, 儘(진)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그릇 명(皿; 그릇)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다하다의 뜻을 가진 부수(部首)를 제외한 글자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릇 속을 비우다가 전(轉)하여, 다하다, 남김 없이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盡자는 ‘다하다’나 ‘완수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盡자는 皿(그릇 명)자와 聿(붓 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聿자는 손에 붓을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솔’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한다. 盡자는 이렇게 솔을 들고 있는 모습에 皿자를 결합한 것으로 식기를 씻는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식기를 씻고 있다는 것은 이미 식사가 끝났다는 뜻이다. 그래서 盡자는 식사가 끝난 후 설거지까지 마무리했다는 의미에서 ‘다하다’나 ‘완수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盡(진)은 ①다하다 ②완수(完遂)하다 ③극치(極致)에 달하다 ④최고에 달하다 ⑤다 없어지다 ⑥사망(死亡)하다 ⑦죽다 ⑧모든 ⑨전부(全部)의 ⑩~만 ⑪다만 ~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곤할 곤(困), 다할 추(湫), 다할 극(極), 다할 진(殄), 다할 궁(窮), 다할 갈(竭), 가난할 빈(貧)이다. 용례로는 있는 힘을 다함을 진력(盡力), 몸과 마음이 지쳐 쓰러질 정도로 열심히 힘을 다함 또는 그렇게 하는 일을 진췌(盡悴), 마음과 정성을 다함을 진심(盡心), 창고에 있는 곡식이나 물건을 풀어서 죄다 나누어 줌을 진분(盡分), 맡은 바 직분을 다함을 진직(盡職), 돈이나 물품을 남김없이 다 내어 줌을 진하(盡下), 정성을 다함을 진성(盡誠), 생각 했던 바를 다 쏟아 놓는 말을 진언(盡言), 운이 다함을 진운(盡運), 충성을 다함을 진충(盡忠), 죄다 멸망하거나 또는 멸망시킴을 진멸(盡滅), 사물의 근원을 속 깊이 연구하여 앎을 진원(盡源), 술이 몹시 취함을 진취(盡醉), 모조리 다 죽음을 진몰(盡歿), 재물이나 정력 따위가 죄다 없어짐을 핍진(乏盡), 줄거나 또는 해져서 다 없어짐을 모진(耗盡), 시들어 없어짐을 조진(凋盡), 아직 다하지 못함을 미진(未盡), 하나도 남지 않고 다 팔림을 매진(賣盡), 아주 사라져 다 없어짐을 소진(消盡), 점점 쇠하여 다 됨을 쇠진(衰盡), 재물 따위를 죄다 써서 없애 버리는 것을 탕진(蕩盡), 힘이나 마음을 다함을 극진(極盡), 무엇이 저절로 다 됨 또는 몸과 마음으로 정성을 다함을 자진(自盡), 모조리 잡음이나 휘몰아 잡음을 타진(打盡), 간곡하게 정성을 다함을 곡진(曲盡), 기력이 다 빠져 없어짐을 탈진(脫盡), 모두 타 버림을 소진(燒盡), 기력이 다하여 없어짐을 기진(氣盡), 끝나거나 다하지 않음을 부진(不盡), 다 없어짐을 절진(絶盡), 맥이 풀리고 기운이 아주 빠짐을 맥진(脈盡), 줄어 없어짐을 감진(減盡), 마음과 힘을 있는 대로 다 씀을 비진(備盡), 힘이 다 지침을 역진(力盡), 세상의 모든 잡귀를 굴복시키는 일을 항진(降盡), 멸하여 없어지거나 없앰을 멸진(滅盡),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다하여 없어짐을 갈진(竭盡), 모조리 닳아 없어짐을 올진(兀盡), 몹시 써늘함을 냉진(冷盡), 목숨이 끊어져 죽음을 합진(溘盡), 쓸 만한 계책이 다하여 없음을 계진(計盡), 충성을 다하고 힘을 다함을 진충갈력(盡忠竭力), 착함과 아름다움을 다한다는 뜻으로 완전무결함을 이르는 말을 진선진미(盡善盡美), 맡은 일에 진종일 부지런히 쓰는 힘을 진일지력(盡日之力),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낮춰 온힘을 다한다는 뜻을 나타냄을 국궁진력(鞠躬盡力),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모자람 없이 넉넉함을 끽착부진(喫着不盡), 글로는 의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을 서부진언(書不盡言), 식량이 떨어져 기운이 다함을 식갈역진(食竭力盡) 등에 쓰인다.
▶️ 忠(충성 충)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中(중, 충)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마음속에서(心) 우러 나오는 참된 뜻이라는 뜻의 충성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忠자는 ‘충성스럽다’나 ‘공평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忠자는 中(가운데 중)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中자는 원안에 깃발이 꽂혀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중심’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중심’이라는 뜻을 가진 中자와 心자가 결합한 忠자는 ‘중심이 서 있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마음에 중심이 서 있다는 것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忠자는 마음에 중심이 잡혀있다는 의미에서 ‘공평하다’나 ‘충성스럽다’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忠(충)은 (1)임금에 대하여, 신하와 백성 된 본분을 다할 것을 요구하는 사상(思想)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충성 ②공평(公平) ③정성(精誠) ④공변되다(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다) ⑤정성스럽다 ⑥충성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간사할 간(奸), 간사할 사(邪), 거스릴 역(逆)이다. 용례로는 나라와 임금 등에게 몸과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을 충성(忠誠), 남의 잘못을 고치도록 타이름을 충고(忠告), 표리가 없고 성실함을 충실(忠實), 충실하고 인정 많음을 충서(忠恕), 주인에게 충실한 개를 충견(忠犬),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절을 다하는 신하를 충신(忠臣),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를 충효(忠孝), 충성스러운 마음을 충심(忠心), 충성스럽고 곧음을 충직(忠直), 임금께 충성을 다함을 충군(忠君), 충성스럽고 참된 정을 충정(忠情), 충직하고 순후함을 충후(忠厚), 충성스럽고 절의에 열렬함을 충렬(忠烈), 충성스럽게 간함을 충간(忠諫), 충고하는 말이나 충직한 말을 충언(忠言), 진정으로 임금을 섬기는 마음을 충간(忠肝), 충성스럽고 절개가 곧음을 충정(忠貞), 충성스러워서 삼가는 마음이 깊음을 충숙(忠肅), 공경하여 충성함을 경충(敬忠), 홀로 다 바치는 충성을 고충(孤忠), 변변하지 못한 충성을 미충(微忠), 충성스럽지 못함을 불충(不忠), 정성을 다하는 충성을 혈충(血忠), 충성을 힘써 다함을 효충(效忠), 독실한 충성을 독충(篤忠), 남을 위하여 꾀를 내어 줌을 모충(謀忠), 겉으로만 꾸며 나타내는 거짓된 충성을 사충(詐忠), 자기의 충성됨을 그 상대편에게 나타내 보임을 헌충(獻忠),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충언역이(忠言逆耳), 임금께 충성을 다하고 나라를 사랑함을 충군애국(忠君愛國), 충성스럽고 절개가 곧은 마음을 충의지심(忠義之心), 충성과 효도를 다 두루 갖춤을 충효양전(忠孝兩全), 충성스러운 마음과 의로운 담력을 충간의담(忠肝義膽) 등에 쓰인다.
▶️ 報(갚을 보/알릴 보)는 ❶회의문자로 죄를 짓고(幸) 다스림을 받은(문자의 오른쪽 부분인 글자 복 사람을 복종시키는 모양, 다스리는 모양) 사람이라는 데서 갚다를 뜻한다. 죄받다, 대답하다, 갚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報자는 '갚다'나 '판가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報자는 執(잡을 집)자와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報자의 금문을 보면 수갑을 찬 죄수를 잡으려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글자의 형태로만 본다면 같은 시기에 그려진 執(잡을 집)자와 비슷하다. 다만 報자에는 又(또 우)자가 있으므로 수갑을 차고 있는 죄수를 붙잡아두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죄수를 붙잡아둔 모습이 왜 '갚다'라는 뜻을 가지게 된 것일까? 報자에서 말하는 '갚다'라는 것은 사실 벌을 받아 죗값을 치르라는 뜻이다. 그래서 報(보)는 ①갚다 ②알리다 ③대답(對答)하다 ④여쭈다 ⑤치붙다 ⑥재판하다 ⑦판가름하다 ⑧공초(供招)받다(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다) ⑨간통(姦通)하다, 간음(姦淫)하다 ⑩나아가다, 급(急)히 가다 ⑪갚음 ⑫알림, 통지 ⑬신문, 신문지 ⑭처형,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갚을 상(償), 갚을 수(酬)이다. 용례로는 일반에게 알리는 새로운 소식을 보도(報道), 알리어 바치거나 베풀어 알림을 보고(報告), 근로의 대가로 주는 금전이나 물품을 보수(報酬), 입은 혜택이나 은혜를 갚음을 보답(報答), 원수를 갚음을 보복(報復), 은혜를 갚음을 보은(報恩), 공훈에 보답함을 보훈(報勳), 남에게 진 빚이나 받은 것을 갚음을 보상(報償), 착한 일은 착한 대로 악한 일은 악한 대로 선악이 대갚음됨을 보응(報應), 사정이나 정황의 보고를 정보(情報), 널리 알리는 것 또는 그 소식이나 보도를 홍보(弘報), 통지하여 보고함을 통보(通報), 상대방의 정보나 형편을 몰래 탐지하여 보고함을 첩보(諜報), 신문 기사에서 일컫는 그 신문 자체를 본보(本報), 앞으로의 일을 예상해서 미리 알림을 예보(豫報), 반가운 소식을 낭보(朗報), 경계하라고 미리 알림을 경보(警報), 정보를 제공함을 제보(提報), 빨리 알리는 것 또는 그 보도를 속보(速報), 확실하게 알림 또는 그러한 보도나 소식을 확보(確報), 여러 가지 일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 발행한 책자를 화보(畫報),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기사를 적어 벽이나 게시판에 붙이는 종이를 벽보(壁報), 그릇된 보도 또는 그릇 보도함을 오보(誤報), 근본에 보답하고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천지와 선조의 은혜에 보답함을 보본반시(報本反始), 남을 국사로 대우하면 자기도 또한 국사로서 대접을 받는다는 뜻으로 지기知己의 은혜에 감동함을 이르는 말을 보이국사(報以國士), 조상의 음덕을 추모함을 보본추원(報本追遠), 자신의 삶의 은인인 군사부君師父에 대해서 죽음으로써 보답함을 보생이사(報生以死), 원한 있는 자에게 은덕으로써 갚는다는 뜻으로 앙갚음하지 않는다는 말을 보원이덕(報怨以德), 서로 대갚음을 하는 자연의 이치를 보복지리(報復之理), 봉숭아에 대한 보답으로 오얏을 보낸다는 뜻으로 내가 은덕을 베풀면 남도 이를 본받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투도보리(投挑報李), 자식이 부모가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반포보은(反哺報恩), 원인과 결과는 서로 물고 물린다는 뜻으로 과거 또는 전생의 선악의 인연에 따라서 뒷날 길흉 화복의 갚음을 받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과응보(因果應報),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죽어 혼이 되더라도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을 결초보은(結草報恩) 등에 쓰인다.
▶️ 國(나라 국)은 ❶회의문자로 国(국)은 간자(簡字), 囗(국), 囶(국), 圀(국)은 고자(古字), 囲(국), 围(국)은 동자(同字)이다. 國(국)은 백성들(口)과 땅(一)을 지키기 위해 국경(口)을 에워싸고 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는 데서 나라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國자는 '나라'나 '국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國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或(혹 혹)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或자는 창을 들고 성벽을 경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或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누가 쳐들어올까 걱정한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후에 '혹시'나 '만일'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囗자를 더한 國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國자는 성벽이 두 개나 그려진 형태가 되었다. 참고로 國자는 약자로는 国(나라 국)자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 國(국)은 (1)어떤 명사(名詞) 다음에 쓰이어 국가(國家), 나라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나라, 국가(國家) ②서울, 도읍(都邑) ③고향(故鄕) ④고장, 지방(地方) ⑤세상(世上), 세계(世界) ⑥나라를 세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 백성을 국민(國民), 나라의 법적인 호칭을 국가(國家), 나라의 정사를 국정(國政), 나라의 안을 국내(國內), 나라의 군대를 국군(國軍), 나라의 이익을 국익(國益), 나라에서 나라의 보배로 지정한 물체를 국보(國寶), 국민 전체가 쓰는 그 나라의 고유한 말을 국어(國語), 한 나라의 전체를 전국(全國), 자기 나라 밖의 딴 나라를 외국(外國), 양쪽의 두 나라를 양국(兩國), 외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국(歸國), 국가의 수를 세는 단위를 개국(個國), 조상 적부터 살던 나라를 조국(祖國), 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을 순국(殉國),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애국(愛國),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둘도 없다는 뜻으로 매우 뛰어난 인재를 이르는 말을 국사무쌍(國士無雙), 나라의 수치와 국민의 욕됨을 이르는 말을 국치민욕(國恥民辱), 나라의 급료를 받는 신하를 국록지신(國祿之臣), 나라의 풍속을 순수하고 온화하게 힘을 이르는 말을 국풍순화(國風醇化),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흩어졌으나 오직 산과 강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을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구하는 방패와 성이란 뜻으로 나라를 구하여 지키는 믿음직한 군인이나 인물을 이르는 말을 구국간성(救國干城), 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으로 저속하고 난잡한 음악을 일컫는 말을 망국지음(亡國之音), 국권피탈을 경술년에 당한 나라의 수치라는 뜻으로 일컫는 말을 경술국치(庚戌國恥),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이해 관계가 밀접한 나라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순치지국(脣齒之國),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노자가 그린 이상 사회, 이상 국가를 이르는 말을 소국과민(小國寡民), 한 번 돌아보면 나라가 기운다는 뜻으로 뛰어난 미인을 이르는 말을 일고경국(一顧傾國), 사이가 썩 친밀하여 가깝게 지내는 나라 또는 서로 혼인 관계를 맺은 나라를 이르는 말을 형제지국(兄弟之國)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