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 당신께서는 '에너지의 전이 현상인 삭티파트는 에고없는 사람을 매개체로 해서 일어난다.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이비며, 그를 통해서는 삭티파트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식으로 삭티파트를 수행하면서 경전에 씌어진 대로 쿤달리니의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압니다.
이런 과정 전체가 거짓된 것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또한 그대가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점이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에 대응하는 거짓된 짝을 갖는다.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삶의 모든 차원에 위조품이 존재한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위조품이 진품보다 더 그럴듯해 보인다.
항상 이런 식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휘황찬란함이 위조품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진품은 그렇게 휘황찬란하지 않아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위조품은 떠들썩하게 자신을 내세워야 한다.
자신의 허구성을 감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조품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구매할 수 있다.
모든 영적인 현상은 그에 대응하는 위조품을 갖는다. 대응하는 위조품이 없는 경험은 아무것도 없다.
진짜 쿤달리니가 있다면 그에 대응하는 가짜 쿤달리니가 있다.
진짜 차크라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가짜 차크라가 있다.
진정한 요가의 방편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거짓 방편이 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진정한 경험이 영적인 차원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면 그는 많은 것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그는 전에는 알지 못했던 향기를 맡는다. 이 세상 것이 아닌 음악을 듣고, 이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색깔을 본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은 최면술에 의해서도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최면술에 의해 색깔, 멜로디, 맛과 향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경험에는 내적인 변형이 필요하지 않다.
최면에 의해 무의식 상태에 빠지기만 하면 된다. 이런 경험은 위조품이다.
명상 중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최면을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인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최면에 의해 유도된 상태다. 그것은 꿈과 같다.
그대가 어떤 여자를 사랑한다면 꿈 속에서도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 꿈 속의 그녀가 더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그녀가 실재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알겠는가?
꿈이 깬 다음에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온갖 꿈을 만들어 내는 방편들이 있다. 쿤달리니에 관한 꿈, 차크라에 관한 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온갖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대는 이런 꿈에 빠지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그 꿈이 너무나 황홀하기 때문에 그대는 꿈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이런 꿈들은 꿈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그 꿈들은 그대가 깨어서 활동하는 동안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낮에 꾸는 꿈이다. 이런 꿈은 연습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대는 이런 꿈에 빠져 평생을 허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아무데도 도달하지 못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대는 평생동안 기나긴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꿈을 만들어 내는 방편들이 있다. 다른 사람이 그대 안에 이런 꿈을 유도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 때 그대는 이 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대는 진짜 경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진짜 동전을 보지 못하고 항상 가짜 동전만 사용해온 사람이 있다면 그가 이 동전이 가짜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가짜를 가짜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진짜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쿤달리니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야만 이 두 가지 경험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 알 수 있다.
진짜 쿤달리니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명심하라. 쿤달리니에 관한 경전을 풀이한 설명 중에서 많은 부분이 거짓이다.
여기에 이유가 있다.
이제 내가 경전의 비밀에 대해 말하겠다.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성자와 선각자들은 그들의 경전안에 의도적으로 기본적인 오류를 남겨 두었다.
이것은 제자들의 구도 과정과 그 진실성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이 집에 방이 여섯 개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방이 다섯 개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대가 내게 와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집 안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당신 말대로 방이 다섯 개 있더군요."
이 때 나는 그대가 다른 곳을 보고 왔다는 것을 안다. 그대는 환상을 보았을 것이다.
그대가 본 것은 내가 말했던 그 집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방이 항상 빠져 있다.
이를 통해 그대가 진짜로 집안을 경험했는지, 그대의 경험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대의 경험이 경전과 완전히 일치한다면 그것은 가짜 경험이다.
경전에는 항상 무엇인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대의 경험이 책과 완전히 일치한다면 그것은 진짜 경험이 아니다. 책에 관한 지식이 투영된 것에 불과하다.
그대의 경험이 다른 식으로 왔을 때, 어떤 부분은 경전과 일치하고 어떤 부분은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 때 비로소 올바른 길에 들어선 것으로 생각하라. 무엇인가 진실한 일이 일어났다.
그대는 단순히 경전에서 읽은 내용을 투영하고 있는 게 아니다.
구도자가 갖는 경험의 진실성 여부를 가리기 위해 경전에는 의도적으로 변형된 부분들이 있다.
진정으로 쿤달리니가 깨어났을 때 그대는 어느 것이 그런 부분인지 알 것이다. 그 전에는 알 수 없다.
모든 경전은 필수적으로 어떤 정보를 빠뜨려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경험의 진실성 여부를 가리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한 교수가 있었다. 그는 내가 어떤 책을 언급할 때마다 '나도 그 책을 읽었다. '라고 말했다.
어느 날, 내가 가짜로 지어 낸 책이름과 저자의 이름을 들먹이며 말했다.
"이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참으로 훌륭한 책입니다."
그러자 교수가 말했다.
"물론, 나도 그 책을 읽었다. "
내가 말했다.
"교수님이 그 책을 지어 낸 모양이군요.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이런저런 책을 읽었다. '고 하신 교수님의 말씀은
모두 거짓입니다. 사실, 그런 책과 저자는 없습니다. "
그가 소스라치게 놀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런 책이 없다고?"
내가 말했다.
"물론, 그런 책은 없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주장이 진실인지 아닌지 가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진실을 아는 사람은 즉각 간파한다. 그대의 경험이 경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면 그대는 즉각 간파될 것이다.
경전과 진정한 경험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경전에는 거짓된 부분이 보태지고 진실된 것이 삭제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경전에 묘사된 경험은 인위적으로 창조될 수 있다.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마음의 능력은 참으로 엄청나다. 그대가 내면의 핵심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음은 온갖 수단을 다해 그대를 속인다.
게다가 그대가 자신을 속이고 싶어한다면 그런 일은 아주 쉽게 일어난다.
그러므로 경전에 어떤 식으로 묘사되어 있건, 어떤 사람이 삭티파트를 행한다고 주장하거나 어떤 방편에 대해 말하건,
나는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문제의 핵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경험의 진실성을 가리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된다. 그러나 꿈 속에서 물을 마신 사람은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아침에 그는 목이 차고 입술이 말라 있는 것을 발견한다. 꿈 속에서 마신 물이 갈증을 해소시키지는 못한다.
오직 진짜 물이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그러므로 그대의 갈증이 해소되었는지 살펴보면 그 물이 진짜였는지 아니었는지 알 수 있다.
지금 그대가 말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의 쿤달리니가 깨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들은 많은 것을 경험했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들의 방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물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수에 대해 아무것도 무른다.
그저께 한 친구가 나를 찾아와 무념의 상태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명상의 방법을 물었다.
자, 이런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어떤 사람은 쿤달리니가 깨어났다고 말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다.
어떤 사람은 쿤달리니가 각성되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섹스 문제로 시달린다.
이렇게 경험의 진실성을 판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법들이 있다.
진정한 경험을 얻은 사람은 탐구가 끝난다.
그 때는 신이 와서 지복과 평온을 준다 해도 그는 정중하게 거절할 것이다.
그는 '고맙지만 그것은 당신이 가지고 계십시오. 저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경험의 진실함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인격(personality)을 들여다보면 된다.
이것이 그의 내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삼매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그는 땅속에 6일 동안 매장되었다가 살아서 나온다.
그러나 그대가 집에 돈을 놓고 나가면 이 사람이 들어와 훔쳐갈 것이다!
그는 기회만 있으면 게걸스럽게 술을 마실 것이다.
만일 그가 삼매의 경지에 들었다고 주장한다면 사실을 몰랐다면
그대는 그에게서 가치 있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인격에는 향기가 없다. 광채도 없고 우아함도 없다.
그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다.
아니다. 그는 삼매의 경지에 든 것이 아니다. 그는 가짜 삼매의 속임수를 배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땅 속에서 6일 동안 머물 수 있는 호흡법을 터득했다. 그는 호흡은 어떻게 조절하는지 배웠다.
그래서 그는 주어진 공간에서 최소한의 산소를 소모하여 살아 남는다. 그는 땅속에서 6일 동안 머물 수 있다.
그는 눈 속에 들어가 6개월 동안 동면하는 시베리아 곰과 거의 똑같은 상태에 있다.
그는 삼매에 빠진 것이 아니다.
우기가 끝날 때쯤이면 개구리는 땅 속으로 들어가 8개월을 지낸다. 이 개구리들은 삼매의 경지에 든 것이 아니다.
이 사람도 똑같은 기술을 배웠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로 삼매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땅 속에 묻는다면 아마 그는 죽어 버릴 것이다.
삼매는 땅 속에 매장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만일 붓다나 마하비라를 이런 식으로 땅 속에 묻었다면 그들이 살아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기술을 터득한 사람은 살아나올 것이다. 이런 기술은 삼매와 아무 상관이 없다.
삼매는 전혀 다른 현상이다. 그러나 땅 속에서 살아 남는 기술을 배운 사람은 대중의 인기를 끌 것이다.
만일 마하비라가 실패하고 이 사람이 성공한다면 이 사람이 진짜 티르탕카르로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마하비라는 가짜로 전락할 것이다.
이렇게 초능력 현상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그럴듯하게 영적인 주장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이 주장을 합리화시키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개발해 냈다.
그래서 그들의 주변에는 실체와 아무 상관이 없는 별개의 세계가 형성되었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변형을 일으키는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땅 속에서 6일을 머물건 6개월을 머물건 그것은 깨달음과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다. 그런 사람의 내적인 상태는 어떤가?
그의 내면에 얼마만큼의 평화와 침묵이 깃들어 있는가? 그의 내면이 지복으로 층만한가?
물론 그는 땅 속에 묻혀서도 6일 동안 편안하게 머물 수 있다.
그러나 동전 한 닢만 잃어버려도 그는 끙끙 앓으며 밤잠을 설칠 것이다.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해아 한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삭티파트를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삭티파트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최면의 일종이다. 깊은 곳에서 보면 그들은 어느 정도 최면술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물론, 그들이 이런 방면에 관해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런 최면적인 과정에 대해 과학적으로 아는 것이 없다. 자신의 주장이 허구라는 것도 모른다.
그들 역시 크게 혼동하고 있다.
인도의 길거리에서는 흔히 마술사를 볼 수 있다. 그가 천을 펼쳐 놓고는 어린 소년에게 그 위에 누우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년의 가슴 위에 장신구를 올려놓는다.
그런 다음 소년에게 '저 사람 주머니 속에 있는 지폐의 일련 번호가 뭐지?'하고 묻는다.
그러면 소년이 일련 번호를 정학하게 말할 것이다.
'저기 서 있는 사람의 시계가 몇시를 가리키고 있지?'하고 물으면 소년이 정확한 시간을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의 이름이 뭐지?'하고 물으면 소년이 그 이름을 말할 것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은 이것을 장신구의 마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그가 소년의 가슴에서 장신구를 치우고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소년은 묵묵부답으로 누워 있다.
소년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이제 이 마술사가 마법의 장신구를 팔기 시작한다. 한 개에 단돈 1루피! 그대는 이 장신구를 사서 집으로 가지고 간다.
그리고 가슴에 장신구를 올려놓는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소년이 마술사에게서 '가슴 위에 장신구를 올려놓으면 말을 하고, 장신구를 치우면 입을 다물어라.'하고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장신구에 특별한 마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수법에는 보다 더 깊고 미묘한 차원이 있다.
이것을 알면 그대는 놀랄 것이다.
이 수법은 '최면 후의 암시(posthypnotic suggestion)'라고 불린다. 어떤 사람이 최면에 걸려 무의식 상태에 빠진다.
이런 최면 상태에서 그는 장신구를 잘 보라는 말을 듣는다.
또한 그는 장신구를 가슴에 올려놓으면 무의식 상태에 빠지라는 말을 듣는다.
그 다음에 이런 무의식 상태에서 그는 지폐의 일련 번호를 읽거나 시계의 시간을 맞출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속임수는 없다. 소년은 천 위에 눕고 가슴 위에 장신구가 놓이자마자 최면 상태에 빠진다.
이제 그는 마술사가 묻기만 하면 지폐의 일련 번호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소년은 자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마술사 역시 소년의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마술사는 한 가지 수법을 배웠다. 한 사람에게 최면을 건 다음 어떤 물건을 보여주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 이 물건이 당신 위에 놓일 때마다 당신은 즉각 무의식 상태에 빠질 것이다. 다시 최면상태가 될 것이다."
이 방법이 완벽하게 작용한다. 마술사가 아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내면의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이 에너지 현상이 역학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소년도 모르고 마술사도 모른다. 만일 이것을 알았다면 길거리에서 이런 공연이나 하면서 살지 않을 것이다.
비록 이것이 심령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해도 이런 현상의 메커니즘을 아는 것은 상당히 심도 있는 주제다.
프로이트와 융도 이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몰랐다.
현대의 가장 뛰어난 심리 학자들도 이 신체 에너지의 역학 작용에 대해 전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이 마술사는 어쩌다가 이 수법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생계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실용화시켰다.
전기 스위치를 누르는 데 전기가 무엇인지, 전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알 필요없다.
스위치만 누르면 전기가 흐른다. 스위치를 누르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거리의 마술사는 최면 후의 암시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이 기술을 장신구를 파는데 이용한다.
그대는 장신구를 사서 집으로 갖고 가지만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최면적 암시의 과정에서는 분명히 장신구가 효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대가 이 장신구를 가슴 위에 올려놓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때 그대는 자기에게 어떤 잘못이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그대는 이 장신구가 분명히 작용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많은 가짜 경험, 사이비 경험이 창조될 수 있다.
이것을 사이비며 가짜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런 경험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영적인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사이비며 가짜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심령 현상일 뿐이다.
모든 영적인 경험에는 그에 대응하는 심령 현상이 있다. 그러므로 이런 심령 현상은 얼마든지 창조될 수 있다.
심령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영적인 경험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은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삭티파트를 행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행위자'라면 해프닝이 일어났을 때 그대는 내게 집착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사람은 행위자가 되지 않는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그는 공이다. 그런 사람의 곁에만 있어도 어떤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대 로마 시대에 한 성자가 있었다.
그의 존재로부터 뻗어 나가는 향기와 지혜의 빛이 어찌나 강한지 하늘에 있는 신들까지 그것을 알게 되었다.
신들이 그에게 찾아와 말했다.
"그대의 소원을 말하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 주겠다."
성자가 말했다.
"일어나야 할 일은 모두 일어났다. 내겐 더 이상 아무 욕망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무엇인가를 원하라는 부탁으로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말라. 당신들의 제의로 나를 곤경에 빠뜨리지 말라.
그 제의를 거절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것도 요구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 일어나야 할 일은 모두 일어났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까지."
이 말을 듣고 신들은 더 감동받았다. 그가 모든 욕망을 초월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의 향기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신들은 고집을 피웠다.
"당신은 무엇인가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
성자는 난처한 지경에 처했다.
"나보고 무엇을 요구하라는 말인가? 나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좋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주고 싶은 것을 주어라. 그것을 받아들이겠다. "
신들이 말했다.
"우리는 당신에게 신비한 힘을 주겠다. 당신이 만지기만 해도 병든 자가 깨끗이 나을 것이며 죽은 자가 살아날 것이다. "
성자가 말했다.
"좋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훌륭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되는가? 나는 큰 문제에 빠질 것이다.
내 안에 '내가 병든 자를 치료했다. 내가 죽은 자를 다시 살려 놓았다.'는 에고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이렇게 에고가 들어오면 나는 끝장이다. 나는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러니 부디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
내가 기적을 일으킨다 해도 나 자신은 그것을 모르게 해 달라."
이 말에 신들이 동의했다.
"이제부터 당신의 그림자가 스치는 곳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성자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다. 이제 내 마지막 소원을 들어 달라. 내 목을 뻣뻣하게 만들어 달라.
그래서 내 그림자가 어떤 효력을 미치는지 돌아보지 못하게 해 달라."
신들은 이 소원을 들어주었다.
성자는 묵이 굳어서 뒤를 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이 마을 저 마을로 방랑했다.
그의 그림자가 스치는 곳마다 시들었던 꽃이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그는 저만큼 가 버린 뒤였다.
그는 목이 굳어서 돌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그림자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몰랐다.
죽음을 맞는 날, 그가 신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의 선물이 결실을 맺었는가?"
그는 자신이 일으킨 기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매우 사랑한다.
삭티파트는 이처럼 일어난다. 삭티파트는 매개체의 그림자와 더불어 일어난다.
그런데 그는 목이 뻣뻣하게 굳어서 되돌아볼 수 없다.
신의 에너지가 흐르는 매개체는 완벽한 공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머리가 뒤를 돌아볼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에고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인가 일어난 것을 알게 되면 '내가 그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온다. 이런 생각을 버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완벽한 공이 되면 그의 주변에서 삭티파트가 아주 쉽게 일어난다.
이것은 태양이 떠오르면 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 강물이 흐르고, 나무는 그로부터 양분을 흡수한다.
강은 많은 나무에 물을 주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나 때문에 많은 나무가 꽃을 피웠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강은 이런 일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 나무에서 꽃이 피어날 때쯤이면 이미 강물은 바다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강물이 나무 곁에 기다리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려고 하겠는가? 그럴 시간이 있는가? 뒤돌아볼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나는 삭티파트는 영적인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에고가 남아 있다면, '내가 이 일을 했다.' 는 행위자가 남아있다면 그것은 심리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최면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OS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