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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보조개

작성자수줍은하늘|작성시간20.07.06|조회수331 목록 댓글 22


그녀의 보조개

                               


세탁기를 돌리는 날, 그녀의 작은 분화구에서 꽃이 피었다.

서방의 빨랫감을 점검할 때는 의례히 주머니부터 뒤집는다.

티끌이나 미처 빼놓지 않은 소지품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배춧닢에 그려진 세종대왕이 미소를 띄울 때면

횡재의 날이라고 좋아했었다.

그 날도 조금의 기대 속에 바지 뒷주머니부터 뒤집기 시작했다.

 

' 혹시 알어? 세쌍둥이 세종대왕님이 나타날지.

다섯쌍둥이면 더 좋구 말구지. 이 인간이 요즘은 비상금을

다른 곳에 두나? 세종대왕 본지도 오래됐네. 

율곡이 아짐이라도 확 나타났음 좋겠네...................어머나!!'

 

작업복이었다. 무릎 옆의 간이주머니를 뒤집는데 율곡여사(사임당인데...)가

열 분이나 나왔다. 돌돌 말아 맷돌로 눌러놓은듯 율곡여사(사임당으로 고쳐야하는데)의 코가 납작해진 채였다.

오모나!! 어떡해...웬 횡재... 

하지만 횡재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거금이었다.

그저 세종 선생 서너 명이 나타나도 기분이 삼삼한데 율곡여사 (여기도 사임당으로)열 분이라니...

 

그녀는 고민스러웠다.

불로소득은 아니지만 세탁비 치고는 당치 않은 금액이니 서방님께 돌려줘야한다는 생각과,

모른 채하고 입을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격하게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씨름을 해도 결판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서방님이 퇴근을 하시었다.

 

서방님은 주머니의 돈을 기억조차 못하는지 평소와 다름없다.

시장기가 돈다고 밥이나 빨리 달라는 표정이다.

불안하기까지한 김여사가 김치통 언저리에 묻은 양념을 닦으며 말문을 열었다.

 

" 여보~~ 저 있잖아...."

" 왜? 뭐? 무슨 일 있었어? 무슨 말인지 해봐 우리 김여사..."

" 으....작업복에 돈이....있던데...무슨 돈이야? ...그런 건 기억하고 소중히 해야지...."

 

자수하여 광명을 찾으니 이렇게 편한 걸....

꼬깃한 오십만 원을 내놓는 김여사.

여기에 무덤덤하면서도 살짝 미소가 진국인 서방님.....서방님의 한마디...

 

" 그 거 세탁비야! 전에 친구들 모임에서 그간 남았던 적립금을 나눠가졌었거든.

그냥 주면 안받을 것 같고해서...당신은 세탁 전에 항상 주머니 점검을 하잖어...

모른 채하고 쓰면 될 것을..."

 

부부라도 각자의 비밀이 있다. 특히 돈의 존재를 속속들이 알면 재미가 없다.

작은 돈이지만 의외성을 가지고 부부간에 정을 담아준다면 그 돈의 가치는 만배다.

 

" 헤~~~~"

 

그녀의 볼에 작은 분화구가 생겼다. 분화구에서 꽃이 피었다.           

 

    

* 이웃에 사는 죽마고우의 이야기를 글로 옳겨보았습니다.

  밴댕이 친구는 아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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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수줍은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7.07 회장님은 맨날 칭찬 만 주시네요.
    버릇 없어지면 우얄라꼬요.ㅎㅎ

    꿉벅! 기쁨 가득하소서~~^^
  • 작성자수정구슬 | 작성시간 20.07.07 봄 되어 남편 겨울 옷 세탁소 맡기기 전에 주머니를 뒤지다 보면,
    사임당 한 두 분 나오곤 합니다.
    아쉽게도 금년 봄엔 그런 행운이 없었네요. ㅎㅎㅎ
    물흐르듯 쉽게 읽히며 독자에게 웃음까지 주는 글은 쓰기가 어렵습니다.
    수줍은하늘님의 필력이 잘 드러나는 재미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
  • 답댓글 작성자수줍은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7.07 주위엔 곱게 사시는 분들이 참 많아요.
    저의 눈높이나 성질이 못돼 이슈가 되는 사건이나 사고에 치중을 하기에
    부정적인 요소 만 관심을 가졌었지요.
    각양각색의 삶들을 바라보며 언젠가부터 고운 모습들, 감동적인 모습들을
    글로 표현하며 자신을 정화하고 가꿔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적으로 '이랬으면 더 좋았겠다'를 가미하게 되는 것이죠.
    재밌게 읽어주심에 감사 드리옵고...예쁜 날 되소서 수정구슬님...^^
  • 작성자브이맨 | 작성시간 20.07.07 달빛 같은 은근함의 사랑이 느껴지네요.^
  • 답댓글 작성자수줍은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7.08 친구 사는 모습에 응석도 부리고 싶고 투정도 부리고 싶답니다.
    샘도 나고 질투도 나고 부럽기가 하늘을 찌르고...ㅎㅎㅎ
    부부를 묶어 존경심이 가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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