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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사]베트남 전쟁사 - 73. 육군 항공 지원과 의무 지원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04.14|조회수686 목록 댓글 3

1961년 12월 11일 미 육군의 2개 헬기중대가 파병된 이래 1965년 1월에 베트남에는 510대의 헬기가 있었다. 헬기에 대한 보급 및 정비지원은 붕타우(Vung Tau)에 있는 1개의 일반지원중대와 붕타우, 사이공과 나트랑(Na Trang)에 있는 3개의 직접지원중대가 담당하였다.

육군 항공부대 소요가 급증하면서 1966년 1월에 제34일반지원단이 창설되어 군수사령부로부터 독립하여 주베트남 미 육군사령과의 직접 통제 하에 보급 및 정비지원활동을 담당하였다. 1967년 10월에는 주베트남 미 육군 사령부에 항공참모도 편성되었다.

제34일반지원단은 2개의 보급창 중대, 5개의 일반지원중대, 11개의 직접지원중대, 4개의 항공전자 중대, 항공장비 관리 센타로 편성되어 다낭(Da Nang)과 플레이쿠(Pleiku)를 포함한 11개 지역에 위치하여 지원임무를 수행하였고 특수 기술요원이 부족하여 민간 회사와 고용계약을 맺어 민간인 기술자를 확보하였다. 민간인 고용 계약자는 1965년 34명에서 1969년에는 2,120명까지 증가하였다.

베트남 내 미 육군 항공기는 1969년에 4,228대로 증가되어 142개 중대 규모로(이중 63개 중대는 사단, 여단 등의 편성부대에 배속) 전투지원 임무는 물론 보급지원, 장비 인양 등 전투근무지원 임무도 수행하였다. 전쟁이 절정에 있었던 1967년부터 1969년까지 3년 동안 헬기가 수송한 보급품은 323만 톤이나 되었으며 적 활동지역에서 인양한 피해 장비나 고장장비는 가격으로 환산하여 25억 달러였다.

물자와 병력을 실어나르는 기체는 돌아갈때는 시체자루를 날랐다.

 

1965 회계연도부터 1971 회계연도 전반기까지의 미 육군의 헬기 가동률은 다음 표와 같다.

단위 : %

회계년도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

1971

수리부속대기

4.6

9.2

9.4

7.6

7.0

4.8

4.9

정비대기

12.8

18.8

20.3

22.1

21.2

21.3

19.1

가동

82.6

72.0

70.3

70.3

71.8

73.9

76.0

 

1965년 12월에 미 육군항공이 책정한 기준은 수리부속 대기율 7%, 정비대기율 21%, 가동율 72%였다. 그러나 1968 회계연도까지의 가동율은 이 기준에 미달되어 UH-1, AH-1G, CH-47, OH-6 등의 헬기를 증가시켜야 될 지경에 이르자 1969년 9월부터 분석에 착수하여 가동율 향상방안을 모색하였다.

1966년 미군 휴이 UH-1D 헬리콥터

 

자동순환 지원팀은 수리부속의 보급이나 정비대기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분야에 집중노력하여 1970년 5월에는 새로운 기준을 설정하여 수리부속 대기율을 5%, 정비대기율을 20%로 하여 가동율을 75%로 향상하도록 제반조치를 취하였다.

즉 자동순환 지원개념에 따라 수리부속 보급을 원활히 하여 1965년보다 2%의 가동율이 향상되도록 하였다. 또한 규정된 비행시간이 경과하면 미 본토로 후송하여 정밀검사 및 재생을 하여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규정된 비행시간을 연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UH-1는 2,200시간의 비행시간이 경과하면 정밀검사 및 재생 작업을 받도록 되어 있는데 후송헬기의 85%는 비행시간이 2,140시간이었고 아직도 비행이 가능한 상태였으므로 이를 3,300시간까지 연장시킨 것이다.

 

베트남에서 미군의 의무지원 활동은 완벽하였다. 어느 곳에서든지 환자나 전사상자가 발생 시에는 30분 이내의 비행거리 내에서 DUST-OFF(1964년도에 전사한 용감한 후송 헬기의 조종사 찰스 켈리(Charles Kelly)의 무전호출 부호였음)라고 불리운 헬기가 즉각 후송하였다. 1970년까지 남베트남군, 남베트남 민간인까지 포함하여 헬기로 후송된 환자는 83만여 명이나 되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찰스 켈리

 

미군의 후송방침은 30일이었고 40%의 베드는 항상 비워놓고 비상시에 대비하였다. 1971년까지의 통계로 보면 총 환자의 83%는 각종 질병(말라리아, 불명열, 피부병 등)과 안전사고 등의 비전투행위로 인한 환자였고 17%가 전상자였다.

전투 간 사상자는 15%가 전사, 85%가 부상이었고 85%의 부상자 중 2,5%는 병원으로 후송된 후 사망하였다. 이 비율은 1차 세계대전시 8.1%, 2차 세계대전시 4.5%보다는 훨씬 낮은 비율이었고 한국전쟁 시와는 동일한 비율이었다.

전투 간 소화기에 의한 전사자가 전체의 51%나 되었다. 이 비율은 2차 세계대전시 32%, 한국전쟁 시 33%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서 이는 M-16이나 AK-47이 경량이면서 발사속도와 충격효과가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 원인별 전사상자 비율

전사비율(%)

원 인

부상비율(%)

51

소화기

16

36

포탄파편

65

11

부비트랩, 지뢰

15

 

대나무침, 철침함정

2

2

기타

2

 

월남전 당시 가장 많았던 위장식 함정의 부비트랩

 

전투 간 부상 부위는 중상자를 기준으로 두부(머리, 얼굴, 목 부분까지 포함)가 39%가 가장 많은 것은 전투 간 철모를 착용하기 싫어하는 습성에 기인한다고 분석되었다.

 

※ 부상 부위별 비율

중상자 비율(%)

부상부위

경상자 비율(%)

39

머리 부분(목 포함)

14

19

가슴부위

7

1

18

18

복부

5

7

다리

36

16

복합부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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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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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리야스필 | 작성시간 13.04.14 헬기 운용이 대단하네요.
  • 작성자+ CARDCAPTOR SAKURA | 작성시간 13.04.14 장미형님 북베트남좀 알려주세욤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4.14 어떤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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