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경기도 내 '외딴집 일가족 연쇄살인 사건’의 주인공은 김대두(당시 26세)였다. 그는 두 달 동안 주로 경기도의 외딴집만 골라 일가족 등 무려 17명을 살해하는 ‘이유없는’ 살인 행각을 이어 나갔다.
김씨는 15세에 간신히 초등학교를 마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고 학습능력도 떨어졌다. 중학 진학에 실패했고, 허약 체질로 인해 군 입대마저 좌절되면서 그의 열등감은 극에 달했다. 그는 부모와의 불화로 가출, 광주와 서울의 공장 등을 전전했으나 역시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은 그의 폭력성을 키웠고 사소한 시비로 폭력 전과 2범이 되었다. 가뜩이나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출소한 이후 자신에 대한 주변의 냉대가 더 심해지자 “어떻게 하든 돈을 많이 벌어 나를 멸시하는 놈들에게 복수하겠다”며 연쇄살인 행각에 뛰어들었다.
1975년 9월 즈음 일주일 사이에 평택, 양주, 시흥, 수원 등의 4개 지역의 외딴집에서 일가족이 글로 표현하기도 참혹할 정도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인, 어린이, 갓난아기라 할 것도 없이 생명이란 게 있으면 무작정 죽이는 그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평택의 외딴 초가 안의 모습은 정말 인간의 짓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잔혹했다. 초가 안에는 할머니(71)와 손자 둘(7세, 5세)이 둔기로 가격을 당해 머리와 안면부가 거의 함몰된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으며, 손녀(11세)는 집에서 150미터쯤 떨어진 야산에서 손과 발이 나무에 묶이고 얼굴에는 보자기가 씌워져 있었다. 손녀 역시 온 몸에 둔기로 난타 당해 살해되었고 범행에 사용된 장도리는 나무 손잡이가 부러져 떨어져 나간 채 발견되었다.
양주군 사건현장 역시 평창사건과 유사하게 피해자들을 둔기로 난타한 흔적이 발견되었고 칼로 추정되는 도구에 마구 찔려 피살된 모습이었다.
가장 참혹했던 현장은 바로 시흥군이었다. 20대 후반의 아기엄마는 발가벗겨진 채 강간당한 후 둔기로 무수히 가격 당하고 칼로 여러 차례 찔려 살해당했고, 생후 3개월짜리 갓난아기는 흉기로 얻어맞은 데다 발로 짓밟혀 내장이 다 손상된 상태로 사망했다.
수원 사건현장은 피해자인 30대 부부는 집에 있다가 남편은 집에서 둔기와 칼에 여러 차례 가격당하고 찔려 살해당했고, 아내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야산까지 끌려가 알몸으로 양손이 묶인 채 둔기와 칼에 무수히 공격당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김대두의 현장 검증 사진
수원 살인 사건과 성남 강간 미수사건이 발생하고 6일이 지난 후 서울 전농동의 한 세탁소에 깡마르고 기분 나쁜 기운을 풍기는 남자가 더러운 청바지를 가지고와서 맡기고 갔다. 세탁소 주인은 기분이 묘해서 청바지를 확인해봤더니 꼭 핏자국 같은 것이 여기저기 묻어있던 것이었다. 주인은 아들과 상의 끝에 경찰에 신고를 하였고, 경찰이 잠복수사 끝에 김대두의 살인행각이막을 내리게 된다. 경찰조사결과 김대두는 경기도 외딴집 연쇄살인 말고도 6명을 더 살해하였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고 진술하였다. 김대두는 2004년 유영철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총 17명을 연쇄살인한 희대의 살인마로 기록되고 있다.
재판정의 김대두
김대두는 가족, 학교, 집단 간에 유대관계가 강하지 못했다. Hirschi는 가족, 학교, 집단 간 유대관계가 강한 사람들일수록 범죄를 덜 저지른다는 사회 결속 이론을 주장해왔다. 또 사회결속의 중요한 요소로 애착, 집념, 참여, 신념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의 유대관계가 강하지 못했고, 몸이 허약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학교, 집단 간, 친구 간 유대관계도 강하지 못하였고, 사회결속의 요소 중 부모의 애착이 있었다면 범죄 저지르는 억제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또 사회에 적응 하지 못해 개인이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만드는 중요한 사회결속이 점점 약해졌기 때문에 범죄에 더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교도소 출소 이후 사람들은 김대두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피하기만 했다. 이 부분에서는 낙인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데, 낙인이론은 사회 구성원들이 일탈행동이라고 규정한 행동을 어떤 사람이 행한 경우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일탈행위자로 낙인찍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탈행동을 더 저지르게 된다고 보는 견해이다. 또한, 구성원들이 일탈행위자였던 사람의 경력을 들추어내면서 앞으로도 일탈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단정하면서 스스로도 일탈행위자라는 낙인을 당연시하게 되어 일탈행동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김대두를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어 더 멸시하고 냉대하자 김대두는 그 낙인으로 인해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