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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살인마]세계의 살인마 - 95. 해든 클라크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1.04.11|조회수1,326 목록 댓글 2

시체를 좋아한 에드 게인이 비록 오늘날 공포영화의 원조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사실 그가 ‘피 튀기는’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여성 복장 차림의 사이코킬러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영화 <사이코>나 <드레스드 투 킬>에서 살아나온 듯한 무서우면서도 자신의 성별을 착각하는 실제 연쇄살인범은 따로 있다. 그의 이름은 해든 클라크이다.

 

초라하고 가난에 찌든 성장환경에서 자란 다른 많은 연쇄살인범들과 다르게 클라크는 부유하고 특권을 지닌 집안에서 자라났다. 그의 어머니의 선조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최초로 이주한 이들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화학공학자로 여러 개의 학위를 지녔을 뿐 아니라 업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클라크 가족의 명망과 부에도 불구하고, 클라크의 아버지는 지독한 알콜 중독자였고, 아내와 잘 지내지 못했다.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는 부모 때문에 클라크 집안의 분위기는 심각하리만치 불안했고, 그것은 네 자녀 가운데 세 명에게서 여실히 드러났다. 막내딸인 앨리슨은 10대 때 가출을 한 뒤로 부모와의 인연을 영영 끊어버렸다. 장남인 브래드필드는 여자친구를 살해해서 평생 감옥살이를 했다. 그는 여자친구의 가슴살을 구워서 먹어치웠을 정도였다.

 

해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지진아’라며 조롱했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여자 옷을 입힌 뒤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즐겼다. 해든이 정신 이상을 지닌 청년으로 자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다른 아이들을 치기를 즐겼고 자신을 괴롭히는 학교친구들의 집 앞에 애완동물의 목을 잘라 내버려두기도 했다.

 

학문적으로는 성공할 수 없었던 클라크는 결국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심술궂은 기질에도 불구하고, 일류 조리전문대학을 졸업했다. 학위를 얻은 그는 프로빈스타운의 케이프코드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그 지역은 대안적 생활양식을 상당히 용인해주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조차 클라크의 행동은 극단적인 것으로만 여겨졌다. 어쩔수 없이 그는 계속 일자리를 옮겨다녀야 했다.

 

한동안 클라크는 요리사로 익힌 실력을 더 사악한 목적에 이용했다고 한다. 훗날 자백에 따르면 그는 케이프코드에 살던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며, 벌거벗은 여인의 손을 잘라내고 웰플리트 모래 언덕에 묻기도 했다. 케이프코드의 식당들에서 더는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가 된 클라크는 이후 몇 년간 여러 곳을 전전했고, 유람선의 주방, 롱아일랜드의 연회장, 또 1980년 올림픽이 열린 뉴욕 레이크 플래시드에서도 일을 했다. 그는 해군 주방장으로 군에서도 생활했다. 그러나 동료 선원들은 갈수록 괴상해지는 그의 행동, 주름잡힌 팬티를 좋아하는 취향까지는 잘 받아주지 않았고, 그는 동료들에게 빈번하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클라크는 편집증적 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뒤 군에서 제대했고, 메릴랜드 주 실버스프링에 살던 형 제프리를 찾아갔다. 그 곳에서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그가 저지른 것이 확인된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다. 사건은 1986년 5월 31일 무더운 오후에 발생했다. 그는 어린 조카 엘리자 앞에서 자위를 했다가 집에서 쫓겨났다. 그가 짐을 꾸리고 있을 때 여섯 살난 미셀 도어가 분홍색의 구겨진 수영복 차림으로 친구인 엘리자를 찾으며 집 뒤뜰의 물웅덩이 주변에서 돌아다녔다. 클라크는 아이를 집으로 유인한 뒤 자신의 조리용 칼로 난도질했고 죽은 시체와 성교를 시도했다. 그러다가 아이의 시체를 배낭에 구겨 넣고서는 근처 공원으로 차를 몰고 가 살점을 뜯어먹었고, 얕은 무덤에 매장했다.

 

경찰이 미셀의 정신 나간 아버지엑 혐의를 둔 사이 클라크는 정처 없이 떠돌았고, 픽업트럭에서 생활하며 임시직으로 일을 구해 생활했다. 그의 정신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되어 갔다. 1989년에 그는 여러 다양한 죄를 지어 붙잡혔다. 그의 어머니를 폭행했고, 가게에서 여성용품을 훔쳤으며, 세 들어 살던 집에 검은 물감을 칠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다람쥐와 새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1992년 메릴랜드 주 베데스다에서 정원사로 일하던 동안 집주인 페니 휴텔링을 상대로 마지막 범행을 저질렀다. 10월 17일 자정 무렵 그는 휴텔링 부인의 딸 로라의 침실에 몰래 들어갔다. 로라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나이였다. 그는 가발, 핸드백, 블라우스, 평상복 바지 차림으로 완전히 여자 복장을 하고서는 22구경 권총을 꺼내들었다. 그는 잠든 소녀를 슬쩍 깨우고는 자신의 침대에서 뭘 하느냐고 물었다. 또 겁에 질린 로라에게 자신이 로라라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마치 공포영화에 나오는 광경과도 같았다. 미친 복장 도착자가 아리따운 젊은 여성을 느닷없이 깨워서 그녀의 정체를 묻고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식이었다.

 

그는 로라를 총으로 위협해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켰으며 테이프로 얼굴을 감싸서 질식사시켰다. 그런 다음 가위로 귓불을 잘라냈으며, 그녀의 시체와 피 묻은 침대보를 모두 자신의 트력에 실은 후 외딴 곳으로 가버렸다. 클라크는 즉시 용의선상에 올랐고, 그가 기념품으로 간직한 피 묻은 베겟잇에서 그의 지문이 나온 뒤 체포되었다. 1993년 그는 2급 살인죄를 인정했고, 30년 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미셀 도어 사건을 자랑스레 떠들었고, 결국 시체를 묻은 곳까지 경찰을 데려가주었다. 그는 다시 재판을 받았으며 추가로 30년형을 선고받았다.

 

클라크의 최후가 어떻게 되어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두 번째 재판을 받은 뒤 교도소에서 머리가 긴 동료 죄수를 살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확신했으며, 그에게 자신의 모든 범행을 털어 놓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그는 미국 북동부 지역 여러 곳에서 모두 14건이 넘는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2000년 초, 클라크는 수사관들을 자신의 범행 현장에 데리고 가는 데 동의했다. 단 그가 여장차림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는 새 가발, 속옷, 치마로 단장을 한 뒤에야 형사들을 데리고 코네티컷,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매사추세츠 등 여러 곳을 다녔다. 한때 클라크의 할아버지가 소유했던 케이프코드의 어느 지역에서 경찰은 보석이 200개나 담겨 있는 물통을 파내기도 했다. 그 보석 중에는 로라 휴텔링의 것도 있었다. 클라크는 그 보석들이 많은 희생자의 것이며, 기념물이라고 주장했다. 로라와 어린 미셀 도어의 유해 외에 다른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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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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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임용관 | 작성시간 11.04.11 심리적으로 상당히 복잡한 유형이네요.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4.11 희생자가 정확히 몇명인지 알수없다는 점에서 하이클래스의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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