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 명상가 안에서 삭티파트는 몇 번째 차원에서 일어나며, 은총은 몇 번째 차원에서 일어납니까?
그리고 만일 명상가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 신체가 완전히 개발되어 있지 않다면
쿤달리니의 각성과 삭티파트는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나는 이미 앞에서, 삭티파트는 첫 번째 신체에서 일어나고 은총은 네 번째 신체에 일어난다고 말했다.
첫 번째 신체에서 삭티파트가 일어나면 쿤달리니가 깨어날 것이다. 아주 강력한 속도로 깨어날 것이다.
이 때 그대는 조심해야 한다. 흔히 몇 달에 걸쳐서 일어나는 일이 삭티파트를 통해서는 단 몇 초안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삭티파트 전에 처음의 세 가지 신체가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에게 갑자기 삭티파트가 일어나면 해로울 수도 있다.
따라서 삭티파트 전에 준비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아주 세심한 준비는 필요 없다.
그저 세가지 신체에 초점을 맞출 정도면 충분하다. 이것이 첫 번째로 할 일이다.
두 번째로, 이 세 가지 신체 사이에 어떤 연결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가 어디에서도 막히지 않는다.
만일 삭티파트가 첫 번째 차원에서 막혀 버리면 위험할 수도 있다.
삭티파트가 세 가지 차원 전체로 퍼져 나가면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첫 번째 차원에서 중단되면 매우 위험하다.
이것은 땅 위에 서 있다가 전기 충격을 받는 것과 같다. 이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나무 위에 서 있으면 안전하다.
이 때는 전기의 흐름이 그대의 몸을 통과해 지나가면서 하나의 순환(circuit)을 형성한다.
순환이 형성되면 아무 위험이 없다.
위험은 순환이 깨졌을 때 온다. 모든 에너지는 똑같은 법칙을 따른다. 에너지는 원을 그리며 계속해서 순환한다.
만일 이 순환이 깨지면 그대는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러나 나무 위에 서 있으면 아무 충격도 받지 않는다.
명상가들이 나무 좌대를 사용한 것은 나무가 절연체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목적은 없었다.
사슴 가죽과 표범 가죽을 사용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명상가에게서 방출되는 에너지가 충격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이런 절연 물질이 좌대로 사용되었다.
이 전기 충격에 의해 인간이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명상가는 나무 신발을 신었으며, 나무 침상 위에서 잠을 잤다.
그는 이런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단지 경전에 나온 규칙대로 따랐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몸이 편안하지 않도록 자신을 고문하는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이유가 아니었다.
위험은 전혀 다른 데 있었다. 명상가의 내면에 어느 순간에 해프닝이 일어날지 모른다.
알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그런 일이 닥쳐올 수 있다. 그러므로 명상가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의 처음 세 가지 신체가 완벽하게 준비되면 그가 받아들인 에너지는 그의 안에서 순환을 형성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에너지가 첫 번째 신체에서 막혀 버린다. 이것은 해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명상가가 하나의 순환을 만들 수 있도록 최소한의 준비가 행해져야 한다. 이 준비는 쉽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는다. 결코 어렵지 않다. 신성을 일별 하는 정도까지는 삭티파트가 유용하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삭티파트는 해롭다.
삭티파트를 통해 쿤달리니가 강렬하게 솟구친다. 이 쿤달리니의 상승은 네 번째 신체까지만 올라간다.
그러나 이 정도면 일별을 얻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 후에 따르는 여행은 철저하게 개인에게 달린 문제다.
어두운 밤에 번개가 치면서 잠시 길을 보여 주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일단 길이 보인 다음에는 모든 것이 변한다.
이제 그대는 예전과 똑같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삭티파트는 조금 앞을 보여 주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먼저 자신의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직접 삭티파트가 주어지면 그것은 해를 미칠 수도 있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준비되지 않은 일반 대중이 항상 삭티파트나 이와 유사한 것들을 바란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무엇인가 공짜로 얻기를 원한다.
그러나 공짜로 얻는 것은 없다. 공짜로 얻은 선물의 대가가 얼마나 비싼 것인지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든지 공짜로 얻으려고 하지 말라.
우리는 항상 값을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실제로 값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을수록 우리는 더 가치 있는 것을 얻는다.
영적으로 성장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치를 수 있는 가장 비싼 값이다.
이틀 전에 한 여성이 내게 와서 말했다.
"나는 이제 나이를 먹었고 죽을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내가 언제 깨달음을 얻을까요? 내가 죽기 전에 뭔가 해 주십시오."
나는 그녀에게 며칠 동안 명상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보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명상 따위로 골치를 썩기 싫습니다.
내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무엇인가 해 주십시오."
이제 이 여자는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무엇인가 얻으려 하고 있다. 이런 욕심은 위험하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무엇인가 잃을 것이다.
명상하는 사람은 이런 식의 허황된 기대를 갖지 말아야 한다. 먼저 받을 자격을 갖추어야만 받을 수 있다.
이것을 진리로 믿어야 한다. 자격을 갖추기만 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얻는다. 그보다 못한 것을 얻지는 않는다.
이것이 존재계의 법칙이며 우주의 법칙이다. 그대는 준비를 갖춘 정도만큼만 얻는다.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해서 이것을 불공정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의 준비가 덜된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항상 우리에게 불공정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우리는 항상 '나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확신하면서 존재계에 대해 불평한다.
우리는 자격을 갖춘 정도에 상응하는 것을 얻는다. 자격을 갖추는 것과 무엇인가 얻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기대한다.
이렇게 우리의 노력과 기대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다. 이 간격이 문제다. 이 간격이 자멸을 초래한다.
이것은 매우 해로울 수도 있다. 허황된 기대를 갖고 우리는 무엇인가 얻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이런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반드시 그들을 착취하려고 전면으로 나서는 교활한 자가 있다.
그는 사람이 공짜로 얻으려고 하는 것을 주겠다고 제안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는 거의 아는 게 없다.
그는 어딘가 에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갖고 나타난다.
이 방법의 효과는 크지 않겠지만 그래도 해악을 미칠 수 있다.
가령, 삭티파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육체의 자기장을 이용해 약간의 삭티파트를 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내면의 다른 여섯 가지 신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육체는 고유의 자력을 갖는다.
그래서 특정한 상황이 조정되면 그대는 이 자력을 통해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고대의 구도자들이 잠자는 중에 머리를 어느 쪽에 드느냐 하는 문제에 신중을 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머리나 발을 특정한 방향으로 두는 것을 피했다.
지구에는 고유의 자력이 있다. 명상가는 이 자력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끊임없이 자화될 수 있도록 유념해야 한다.
이 힘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잠을 자면 그대 몸의 자기장이 흐트러진다.
반면, 이 흐름과 일치되는 방향으로 누우면 지구에 자성을 주고 지축을 형성하는 이 힘이
그대 몸의 자력 또한 강화시킬 것이다. 이 힘이 그대의 몸을 자력으로 가득 채운다.
이것은 자석 앞에 놓인 쇳조각이 자화되는 것과 같다.
자화된 후에 이 쇳조각은 핀이나 바늘 등 작은 물건을 끌어당기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듯 몸에는 고유의 자력이 있다. 이 힘이 지구의 자력과 적절하게 일치하면 그 혜택은 매우 크다.
하늘의 별들 또한 자력을 갖는다. 특별한 경우에 특정한 별이 특정한 자성을 갖는다.
이것은 충분히 증명될 수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만일 그대가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자세로 앉으면 특정한 별이 그대의 몸이 자화되도록 촉진할 것이다.
이 때 그대는 누구에게든지 자기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삭티파트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삭티파트가 아니다.
몸에는 고유의 전기가 있다. 이 전기가 특정한 방식으로 생산되면 그대는 전구를 손에 잡는 것만으로도 5와트나
10와트의 불을 밝힐 수 있다. 이런 실험은 이미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전구를 손에 잡는 것만으로도 불을 켤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몸 안의 에너지는 이보다 훨씬 더 무한하다.
20년 전에 벨기에(belgium)의 한 여성이 난데없이 전기를 띠게 되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
그녀와 몸이 닿은 사람들은 누구나 전기 쇼크를 받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이혼 당했다. 남편은 그녀의 몸에 닿을 때마다 쇼크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이혼은 전세계에 화제를 일으켰다.
많은 실험을 거친 결과 그녀의 몸이 전기를 과잉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몸에는 많은 배터리가 있다.
이 배터리가 질서 정연하게 제대로 작용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이 질서가 흐트러지면 상당량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그대는 음식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이 에너지는 몸 속의 배터리들을 충전한다.
그대는 이 배터리를 충전할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이 지쳐서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밤 동안의 충분한 휴식과 잠이 그를 재충전한다.
그러나 그는 밤중에 그를 재충전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잠자는 동안 어떤 힘이 그에게 작용한다.
많은 연구가 행해진 결과, 이제 우리는 잠 속에서 어떤 종류의 힘이 그에게 작용하는지 안다.
원하기만 하면 그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이 힘이 주는 이점을 활용할 수 있다.
이 때 그는 그대에게 에너지 충격을 줄 수 있다. 이것은 자력조차도 아니다. 이것은 신체의 전기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을 삭티파트로 착각할 수 있다. 가짜 삭티파트를 일으키는 많은 방법이 있다. 이들 모두가 가짜다.
이 방법들은 신성한 에너지의 전이와 아무 상관이 없다.
신체의 자력과 전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대의 몸에 흐르는 전기의 순환을 파괴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도 그대에게 에너지 충격을 줄 수 있다. 신체 전기의 순환을 파괴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
이 순환이 방해받으면 그대는 쇼크를 받는다. 다른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충격을 느낀다. 이것은 그대 신체의 전기에서 오는 충격이다.
전기의 흐름이 방해받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이 자리에는 모든 것을 상세하게 말할 수는 없다.
이런 것을 상세하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불완전하다.
나는 이 거짓된 방편들을 완전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런 방편에 대해 자세히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에게는 이런 방법을 시도해 보고 싶은 충동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호기심은 아주 피상적이다.
어떤 신비주의자는 호기심을 죄악으로 언급했다. 인간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 못하지만, 호기심이 인간으로 하여금 많은 죄악을 저지르게 만든다.
성경의 일화가 있다.
신은 아담에게 한 나무를 제외한 모든 나무의 열매를 따먹도록 허락했다.
이제 이 한 나무에 대한 호기심이 아담을 궁지로 몰아 넣었다. 원죄는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아담은 너무나 궁금했다. 이 나무에 무슨 비밀이 있을까?
숲 속의 맛있는 나무 열매는 모두 허용하면서 이 평범해 보이는 나무의 열매는 왜 금지한 것일까?
이 나무에 무슨 특별한 점이 있길래?
이런 생각이 들자 이 나무가 특별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으며, 다른 모든 나무가 무의미해 보였다.
그의 마음은 항상 이 나무에 가 있었다. 이 금지된 나무 열매를 맛보지 않고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호기심이 그를 이겼다.
기독교는 이것이 인간의 원죄였다고 말한다. 특정한 나무 열매를 맛보는 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원죄는 인간의 호기심이었다. 우리는 마음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을 뿐 탐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탐구는 우리가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서까지 성장했을 때 비로소 일어난다.
명심하라. 호기심과 탐구에는 기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결코 탐구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뿐 어느 것 하나도 전체적으로 파고들지 않는다.
그는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열 가지 다른 것들이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이 때 그는 탐구할 수 없다.
내가 가짜 방편들에 대해 말한 내용은 미비한 점이 많다.
나는 이 방편들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음은 이런 방법들을 행하도록 우리의 호기심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을 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거짓된 구도자가 힘을 추구하면 그는 이런 힘을 주는 가짜 안내자를 만난다. 이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다.
앞서 가는 소경이 구덩이에 빠지고, 그 뒤를 따라오는 소경들 또한 똑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이것은 한번의 생이 아니라 여러 생에 걸쳐서 해를 미친다.
어떤 것을 부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다시 제대로 세우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니 이런 방면에 호기심을 갖고 뛰어들지 말라. 올바른 방향에서 그대 자신을 준비하라.
그러면 그대에게 일어나기로 되어 있는 일이 그대를 찾아올 것이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OS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