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선생 묘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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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앞의 묘가 심강선생 묘, 중간이 심강의 부친인 심련원의 묘, 상단이 심강의 조부인 심순문의 묘역입니다. |
심강은 중종 38년(1543) 진사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 : 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음)로 활인서별좌가 되었다. 그의 딸 인순왕후가 명종의 비(妃)가 되자 명종 1년(1546) 영돈녕부사에 임명되어, 청릉부원군에 봉해졌다. 명종 18년(1563)에는 신진사류로서 화를 당하려던 박순(朴淳) 등을 구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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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 좌우로 심강선생 신도비와 심련원선생 신도비가 있으며, 뒷편 언덕 위에 묘역이 있습니다. |
심강 신도비(경기 유형문화재 14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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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강선생 신도비(묘역 하단 좌측 위치) 비각과 신도비의 귀부 모습 |
심강(1514∼1567)의 신도비는 지대석 위에 귀부·비신·이수를 갖춘 복고풍의 비로 이수와 귀부의 조각이 좋으며 비신을 귀부의 머리·꼬리 방향으로 세운 것이 특이하다. 비문은 영중추부사 심수경이 짓고 손자 심열(沈悅)이 썼다.
글씨는 조선화(朝鮮化)된 송설체(松雪體)로 짜임이 좀 미숙하다. 비문에는 여말 선초의 명신 심덕부를 비롯한 심온·심회·심원·심순문·심연원 등 조상의 약력에 이어 심강의 성장과정과 관력(官歷) 및 그의 효성과 덕행 등이 기술되었으며, 이어 부인과 인겸·의겸·예겸 등 여덟 아들과 손자들에 대해 약술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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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하게 비신이 귀부의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
심련원 신도비(경기 유형문화재 14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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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련원선생 신도비(묘역 하단 우측 위치) 비각과 신도비의 귀부 모습 |
조선 전기의 문신 보암(保庵) 심연원(1491∼1558)의 신도비로 묘역에서 산 아래쪽으로 8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2단의 지대석 위에 귀부·비신·이수를 갖춘 복고풍이다. 이수의 조각은 좋으나 귀부는 생동감이 적다.
비문은 외아들 심강(沈鋼)의 부탁으로 판중추부사(조선시대 왕명 출납 기관인 중추부의 판사로 종1품 벼슬) 정사룡이 지었고 글씨는 송인이 썼는데 전형적인 송설체이다. 두전(頭篆)은 조카 병조참지(조선시대 병조에 있던 정3품 벼슬) 심전이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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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련원선생 신도비도 특이하게 귀부의 하단이 받침돌과 많이 떨어져 있어서 다리와 배 측면이 많이 노출된 모습입니다. |
비문에는 여말선초의 명신 심덕부(沈德符)를 비롯한 심온(沈溫)·심회(沈澮)·심원·심순문(沈順門)등 선조의 약력에 이어 심연원의 성장 과정과 영의정에 오르기까지 관리로서의 활동, 이후 병을 이유로 벼슬을 사양하는 과정 및 그의 근신한 행동, 너그러운 성품, 간명한 일처리 등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
심강선생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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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을 오르면 바로 보이는 묘역이 심강선생 묘역이며, 사진은 전경과 후경 모습입니다. |
심련원선생 묘 - 심강의 부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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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에 있는 묘역이 심강의 부모인 심련원선생 묘이며, 사진은 전경과 후경 모습입니다. |
심문순선생 묘 - 심강의 조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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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에 있는 묘역이 심강의 조부모인 심순문선생 묘역이며, 사진은 정면 및 측면에서 바라 본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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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순문선생 묘역 우측에 있는 신도비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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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의 심순문선생 묘역 뒤에서 내려다 본 모습 |
심강선생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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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 김포시 통진면 옹정리 산14-2 화살표 ↑ 위치에 심강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