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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는 놈도 물질작용에서 나온 현상일뿐이다.

작성자조성래|작성시간14.11.20|조회수80 목록 댓글 0

저의 반야심경 해설에서 찢어 올립니다. 

 

잡아함 12. 인연경 ②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 ........

"물질[色], 즉 몸은 무상하다. 온갖 물질[色]을 생성시키는 인(因)과 연(緣)도 또한 무상하다. 무상한 인(因)과 무상한 연(緣)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물질[色], 즉 몸인들 어찌 무상하지 않으리요?

 

(色無常。若因․若緣生諸色者。彼亦無常。無常因․無常緣所生諸色。云何有常)

 

느낌[受], 인식[想], 업 지음[行], 의식[識]도 또한 무상하다. 모든 의식을 생성시키는 인(因)과 연(緣)도 또한 무상하다. 무상한 인(因)과 무상한 연(緣)에 의해 만들어진 의식[識]인들 어찌 무상하지 않으리요?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물질[色], 즉 몸은 무상하고, 느낌[受], 인식[想], 업 지음[行], 의식[識]도 또한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고, 괴로움은 내가 아니며, 내가 아닌 것은 또한 내 것[我所]도 아니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을 ‘바른 관찰’이라고 한다.

 

(受․想․行․識無常。若因․若緣生諸識者。彼亦無常。無常因․無常緣所生諸識。云何有常。如是。比丘。色無常。受․想․行․識無常。無常者則是苦。苦者則非我。非我者則非我所。如是觀者。名眞實觀)

 

거룩한 제자들이여, 이와 같이 관찰하면, 물질[色], 즉 몸에서 벗어나게 되고[解脫], 느낌[受], 인식[想], 업 지음[行], 의식[識]에서 벗어나게 되나니, 나는 이런 것을 두고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근심, 슬픔, 괴로움, 번민에서 해탈한다'고 하느니라."

 

(聖弟子。如是觀者。於色解脫。於受․想․行․識解脫。我說是等爲解脫生․老․病․死․憂․悲․苦惱)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위의 잡아함 11, 12경은 몸뿐 아니라 수(受), 상(想), 행(行), 식(識)으로 일컬어지는 마음도 또한 고정불변, 영원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인(因)과 연(緣)에 의해 잠깐 일어났다 사라지는 허망한 존재일 뿐, <몸과 마음, 그 어떤 것도 ‘나’가 아니며,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적당한 곳에 넣어 처리한다.

<잡아함460>

고시타 장자가 아난존자에게 물었다. “말씀하신 그 ‘갖가지 요소[界]’란 어떤 것입니까?” 이에 대해 아난존자가 답했다. “눈[眼]의 요소[界]가 다르고, 형상[色]의 요소[界]가 다르다. 그 두 인연이 기쁘게 만나는 곳에 의식[識]이 생기고, 눈, 형상, 의식이 화합하여 접촉[觸]이 생기며, 또 기쁜 접촉으로 말미암아 즐거운 느낌[樂受]이 생긴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 법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다. .......

신수장경2권 잡아함경 460경 所說

117c26 種種界。云何爲種種界。尊者阿難告瞿師

117c27 羅長者。眼界異․色界異喜處。二因緣生識。三

117c28 事和合生觸。又喜觸因緣生樂受。如是耳․

117c29 鼻․舌․身․意․法。亦如是說。復次。長者。有異眼

118a01 界․異色界憂處。二因緣生識。三事和合生

118a02 苦觸。彼苦觸因緣生苦受。如是耳․鼻․舌․身․意․

118a03 法。亦如是說。復次。長者。異眼界․異色界捨

118a04 處。二因緣生識。三事和合生不苦不樂觸。

118a05 不苦不樂觸因緣生不苦不樂受。如是耳․鼻․

118a06 舌․身․意․法。亦如是說。爾時。瞿師羅長者聞

118a07 尊者阿難所說。歡喜隨喜。禮足而去

 

위 부처님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의 의식은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만나는 곳에서 생기는 정신작용일 뿐이다. ****

 

만약 몸이라는 물질, ‘뇌(腦)’라는 물질, ‘신경’이라는 물질이 없다면 마음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뇌가 망가져, ‘뇌 작용’이 멈춘 상태에서 마음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볼 때 마음은 물질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나온 것이거나 상호작용 그 자체임이 틀림없다.

“오늘날 뇌과학, 신경과학 및 인지과학 분야에서 마음과 물질의 관계에 대해 활발하게 연구 중에 있다. 그 결과 인간의 복잡한 정신을 분자활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현재 인간의 사고, 의식, 행동, 감정을 뇌 속 화학물질의 작용으로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의 연구결과, 뇌에는 신경전달 물질, 수용체, 2차 3차 전달자들, 각종 기능 단백질을 비롯한 많은 활성물질이 발견되었다.

정신분열병, 우울병, 신경증, 파킨슨병, 무도병, 간질, 자폐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수면장애 등과 같은 중요한 신경정신계 질환이 특정 신경전달물질계의 기능 과다 및 감소로 인해 생긴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복측 피개부(VTA)에 있는 도파민 신경전달 물질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됨으로써 환각 또는 행동과 사고의 장애를 보이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 뇌의 맨 위의 맨 앞에 있는 전전두엽에는 사람의 기분과 감정 그리고 폭력성을 제어하는 세로토닌계가 있다. 이 세로토닌계가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어떤 이유로 기능장애가 나타나면 하부 뇌에서 표출되는 감정과 폭력성을 잘 제어하지 못 하게 된다. 최근 이런 세로토닌계의 장애로 인해 제어할 수 없는 폭력성이 나타나 연쇄살인을 일으킬 수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이와 같이 마음은 몸속의 특정 물질 사이의 상호 작용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현대과학은 아직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시원하게 밝혀내지 못 하고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것도 밝혀질 날이 올 것이다.

   

부처님은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의식[意] 등의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형상[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촉[觸], 관념[法]을 벗어난 별도의 마음을 두지 않으셨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과정을 알기 위해 위빠사나 관찰수행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관찰해갔다. 그 결과, 마음은 우리의 감각기관이 주변 대상과 관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정신현상임을 알아냈다. 그 정신현상은 접하는 외부 대상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을 갖는 감수작용[受], 대상을 개념 또는 이미지를 통하여 받아들이는 인식작용[想], 대상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 보고자 하는 업 지음작용[行], 대상을 식별해서 아는 의식작용[識] 등으로 나눠짐을 알아냈다. 부처님은 마음을 감각기관과 주변 환경이라는 두 물질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기 작용과 같은 것으로 봤다. 부처님은 우리 내부의 감각기관과 외부 대상이 만나, 눈의 의식[眼識]을 만들고, 귀의 의식[耳識]을 만들고, 코의 의식[鼻識], 혀의 의식[舌識], 피부[몸]의 의식[身識], 마음의 의식[意識]을 만드는데, 그 의식이 곧 마음임을 알아냈다. 그 의식 이외의 다른 어떤 마음도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반야지혜로 바라본 마음에 대한 이해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마음[心,citta], 의식[意,manas], 앎[識,vijnana], 이 셋에 대해 어떤 차이도 두지 않고,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만약 불교에 이외의 특별한 다른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반야지혜로 바라본 마음이 아니라, 바라문교의 시각에서 바라본 마음이거나 혹은 범부중생인 부파불교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假象)의 마음이다. ‘가상의 마음’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관념상으로만 존재하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만약 <고정불변의 절대적인 마음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런 믿음을 두고 ‘전도몽상(顚倒夢想)’, 즉 ‘잘못된 믿음’이라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부처님은 이런 절대불변의 마음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부처님은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고 하는 정신작용이 모두 공(空)하다>고 말해 마음의 절대성을 부정했다. 또 <중론> 관법품(觀法品)에 “마음은 형상을 취하는 인연 때문에 있고, 태어남[生]은 전생업보에 의해 있다”고 하여, 마음은 대상을 취하는 인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기존 중국불교 및 대승불교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많이 헷갈릴 것이다. 헷갈릴 때 우리가 돌아가 의지해야할 곳은 부처님 말씀밖에 없다. 그 동안 잘못 해석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과감히 버리고,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부처님의 방법대로 수행해갈 때 비로소 부처님처럼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감각기관과 그 대상을 만나게 하고, 그 결과 정신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근원적인 동력(動力)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명(無明)이고, 업력(業力)이고, 과거 경험에서 나오는 무의식적인 습관이고, 자기존재 또는 생(生)에 대한 집착이고, 어리석음이다.

어떤 생명체도, 아니 무생물조차 자신을 유지하려고 하는 어떤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이 하고자하는 욕(慾)이고, 끌어당기는 인력(引力)이고, 결합해 있으려고 하는 응집력(凝集力)이고,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관성(慣性)이고, 경향성이다.

과거 수 십 억 겁 동안의 경험을 통하여 익혀온 습관과 그 습관이 굳어진 업(業)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자기존재에 대해 집착심을 갖게 된다. 그 집착심과 업력에 의해 눈은 끝없이 바깥으로 향해 외부 형상을 취하려 하고, 귀는 바깥 소리를 들으려 하며, 의식은 끝없이 생각하려고 한다. 정신작용은 ‘나’ 또는 ‘내 것’이라고 하는 의식을 만들고, 그것을 계속 지켜가기 위해 안간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나’라는 의식은 더욱 강해지고, 어리석음 속에서 고통의 윤회는 계속된다. 만약 ‘나’라는 의식, ‘내 몸’이라는 의식, ‘내 마음’이라는 의식만 없애면 바로 고통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온의 공함을 보고, 오온 속에 ‘내가 없음[無我]’을 보아, ‘나’와 ‘내 것’이라는 의식을 없애기 위해 반야지혜를 닦는 것이다. 이것이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속에 들어있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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