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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각지, 오력 <오늘 강독용>

작성자조성래|작성시간14.04.09|조회수50 목록 댓글 1

5. 오력(五力)

 

깨닫기 위해 반드시 길러야 하는 다섯 가지의 힘. 오근을 갖춰 꾸준히 닦은 결과, 그 힘이 좋아진 상태. 37도품 중 제 다섯 번째 덕목이다.

 

오력(五力): 1)믿음의 힘[信力], 2)노력의 힘[精進力], 3)알아차림의 힘[念力], 4)선정의 힘[定力], 5)지혜의 힘[慧力].

 

1)믿음의 힘[信力]: 오근을 갖춰 수행해가면서 약간의 체험도 하고, 또 꾸준히 붓다의 말씀인 경전도 읽으면서 믿음이 견고해져, 그 믿음의 힘으로 온갖 그릇된 견해를 물리치는 것이다.

 

2)노력의 힘[精進力]: 꾸준히 노력한 결과 노력이 익숙해져, 더 이상 힘을 들여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차림이 잘 되어, 나태, 해이 등이 끼어들 틈이 없게 된 것이다.

 

3)알아차림의 힘[念力]: 꾸준히 알아차림을 닦은 결과, 알아차림이 확립되고, 알아차리는 힘이 좋아져, 언제나 알아차림을 할 수 있어, 방일(放逸)이 끼어들 틈이 없게 된 것이다.

 

4)선정의 힘[定力]: 꾸준히 선정을 닦은 결과, 그 힘이 좋아져, 아주 견고한 삼매를 얻어, 고요와 평온이 지속되어, 더 이상 산만, 들뜸, 잡념, 번뇌, 망상 등이 끼어들 틈이 없게 된 것이다.

 

5)지혜의 힘[慧力]: 알아차림과 사유를 통하여 지혜를 꾸준히 닦은 결과, 그 힘이 좋아져,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현상까지도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갖게 되어, 더 이상 어리석음, 무명(無明), 집착 등이 끼어들 뜸이 없게 된 것이다.

 

이 다섯 가지의 힘은 불신, 의심, 나태, 게으름, 방일, 들뜸, 동요, 산만, 어두움, 어리석음, 미혹, 집착 등 지혜를 가로 막는 악(惡)을 깨뜨릴 수 있는 힘이 있으므로 ‘오력(五力)’, 즉 ‘다섯 가지 힘’이라고 한다.

 

「청정도론」에서는 오근(五根), 오력(五力)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서 특별히 믿음과 지혜의 균형을 권한다. 믿음은 강하지만 지혜가 약한 자는 미신(迷信)이 되고, 근거 없이 믿는다. 지혜는 강하지만 믿음이 약한 자는 교활한 쪽으로 치우쳐, 약으로 인해 생긴 병처럼 치료하기가 어렵다. 믿음과 지혜,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룸으로써 믿을 만한 것을 믿는다. 고요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선정은 게으름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선정은 강하지만 노력이 부족한 사람은 게으름에 의해 압도된다. 노력은 들뜸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노력은 강하지만 선정이 약한 자는 들뜸에 의해 압도된다. 선정이 노력과 짝을 이룰 때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노력이 선정과 짝을 이룰 때 들뜸에 빠지지 않는다.”

 

즉 믿음(saddha)은 지혜(paññā)와 짝을 이뤄야 하고, 선정(samādhi)은 노력(vīriya)과 짝을 이뤄야 한다. 알아차림(sati)은 다른 기능들과 짝을 이룰 필요는 없지만 지속적이어야 하고, 한결같고, 하루 종일 끊어짐이 없이 행하고 있어야 한다. 이 알아차림은 다른 네 가지 기능이 제각기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해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흔히 우리는 어떤 욕심을 가지고, 용을 쓰면서 알아차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열의가 과도하게 되어, 기운이 위로 뜨고, 고요와 이완상태가 깨지고, 긴장상태가 되어, 쉽게 피곤할 뿐더러 때로는 가슴이 답답하거나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알아차림 하는 데 있어 절대로 욕심이 끼어들면 안 된다. 어떤 상태, 어떤 경지를 얻겠다든지[貪], 무엇을 사라지게 하겠다는 마음[瞋]이 끼어 있어서는 안 된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탐진치로부터 벗어나 알아차림 해가야 한다. 경전에 무원(無願, 원하는 것 없이), 무탐(無貪, 탐하는 것 없이), 무욕(無欲, 욕심 없이), 무구(無求, 구하는 것 없이), 무착(無着, 집착하는 것 없이) 등의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들은 모두 같은 말이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 욕심 없이 알아차림 해가라는 뜻이다. 만약 욕심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알아차림 해가겠다는 열의다. 그 알아차림에 대한 열의도 또한 과도하거나 집착이 되어서는 안 된다. 편안하게 이완된 가운데 고요하게 알아차림 해가야 한다.

 

6. 칠각지(七覺支), 깨달음에 이르는 7요소

 

*쌍윳따5권 300쪽 옮겨 재작업할 것.

칠각지(七覺支), 칠등각지(七等覺支), 칠각분(七覺分), 칠보리분(七菩提分), 칠각(七覺)이라고도 한다. 37조도품 중 여섯 번째 덕목.

覺(각)은 ‘깨달음’이라는 뜻이고, 支(지)는 ‘요소’라는 뜻이다. 즉 ‘칠각지’란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요소’라는 뜻이다. 도(道)와 과(果)를 성취하여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요소’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

 

알아차림[念覺支]: 알아차림[念, sati]. 관찰대상인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림 해가는 것. 몸동작, 몸의 느낌, 마음의 느낌, 집중, 집착, 긴장, 초조, 불안, 이완, 고요 등의 마음 상태, 생각, 의도, 느낌 등을 알아차림 해가는 것.

 

관찰, 탐구[擇法覺支]: 택법(擇法)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에 대한 관찰, 탐구를 의미한다. “택법(擇法)”의 ‘擇(택)’은 ‘관찰한다’, ‘구별한다’, ‘식별한다’, ‘안다’는 뜻이다. 擇(택)의 산스크리트원어는 ‘pravicaya'이고, 빨리어 원어는 ‘vicaya'인데, 이것은 ‘관찰’, ‘사유관찰’, ‘고찰(考察)’, ‘조사’, ‘탐구’, ‘분석’, ‘분별(分別)’ 등으로 번역되고, 영어로는 ‘discriminate’, ‘investigate' 등으로 번역된다. 法(법)은 관찰대상인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의미한다. 즉, 택법(擇法)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法]을 제대로 알기 위해 세밀하게 관찰하여, 그 특성을 알아가는 활동이다. 예컨대 ‘이것은 마음이고, 이것은 물질이다.’ ‘이것은 일어남이고, 이것은 사라짐이다.’ ‘이것은 항상(恒常)하지 않는 것’이며, '이것은 '나'가 아니다', '이것은 또한 '내 것'도 아니다'는 식으로 대상을 세밀하게 관찰해서 그 특성을 분명하게 알아가는 것이다.

 

노력[精進覺支] : 정진(精進). 알아차리고 관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가는 것. 不休精進(불휴정진). ‘노력[精進]’이란 매순간 열의를 가지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려고 노력[精進]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언제나 주의를 자신 안으로 기울여, 깨어있기 위해 노력해가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깨어있을 수가 없어, 멍함에 떨어지거나, 졸거나, 단순히 편안함에만 머물러 있게 되어, 깨달음을 향해 한 걸음도 나아갈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노력도 너무 강하게 하면 기운이 위로 떠서 고요함이 깨어지고, 너무 느슨하게 하면 마음이 해이해져 알아차림을 게을리 하여, 혼침이나 방일에 떨어지게 된다. 노력은 적당한 세기로, 고요한 가운데, 꾸준히, 끊어지지 않고 하루 종일 계속 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쁨[喜覺支] : 기쁨, 환희, 희열[喜, prīti, piti]. 마음이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에서 벗어남으로써 생기는 대단한 기쁨[喜]. 선법(善法)을 얻은 데서 오는 법열(法悅), 희열. 이것은 초선정과 제2선정에 머물러 있을 때 생긴다. 경전에 ‘離生喜樂(이생희락)’, ‘定生喜樂(정생희락)’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탐심[貪], 진심[瞋], 치심[痴]을 완전히 벗어나 알아차림 해갈 때 생기는 기쁨을 말한다.

 

평온[輕安覺支]=쉼[息覺支] : 몸과 마음이 가뿐[輕]하고 편안[安]한 것. 평온[息, 輕安]은 마음이 바깥 대상을 끊고 자신 안에 고요히 머묾으로써 편안히 쉬어진[息] 상태를 말한다.

 

삼매[定覺支] : 선정(禪定), 정(定), 고요, 삼매. 삼매는 하나의 대상에 마음이 고정[定]되어 움직이지 않는 상태다. 삼매가 이루어지면 마음이 산란하거나 방황하지 않고, 평온, 고요, 희열, 행복을 체험하게 된다.

 

평정[捨覺支] : 평정[捨]. 평정(平正)은 마음이 탐내는 마음인 집착과 화내는 마음인 싫어함을 벗어난 상태로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단지 알아차려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예컨대, 내 안에 고요함, 편안함, 집중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좋아하여, 그것에 집착하지도 않고, 신체적 통증이나 더위, 잡념, 졸음, 혹은 수행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 올라온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짜증을 내거나 그것을 없애려고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있는 그대로 수용하여, 그것을 알아차림 해야 할 하나의 대상으로 받아들여, 그 대상의 특성을 관찰해갈 뿐이다. 이런 평정의 마음은 수행에 대한 견해를 바르게 가졌을 때 가능하다. 수행의 목적은 집중이나 편안하게 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의 힘을 키워, 지혜를 얻어,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특질을 바로 아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하는 데 있어, 어떤 상태를 원하거나 만들려고 하는 욕심 없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만 해가는 것이 수행이다. 수행에 대한 견해가 바르고, 욕심이 끼어들지 않은 바른 마음가짐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몸이나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에 대해 좋아하는 마음으로도 반응하지 않고, 싫어하는 마음으로도 반응하지 않는다. 일어나는 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알아차림 해갈뿐이다. 그래서 늘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하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동요하지 않는다. 이러한 고요를 '위빠사나 사마디'라고 하며, 이 사마디의 상태에서만 지혜가 생겨날 수 있다. 捨(사)는 싫어하는 마음[苦]도, 좋아하는 마음[樂]도 없는 청정한 마음상태, 즉 不苦不樂(불고불락)의 상태다. 경전에 ‘捨念淸淨(사념청정)’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이러한 평정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무원(無願), 무탐(無貪), 무욕(無欲), 무구(無求), 무착(無着) 등은 모두 같은 말인데,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 욕심 없이 알아차림 해간다는 뜻이다.

 

도(道)와 과(果)를 성취하여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깨달음의 일곱 요소[칠각지]’라고 하는 구성요건을 갖춰야 한다. 일곱 요소 중 알아차림과 법에 대한 관찰, 노력은 수행을 시작하는 데 꼭 있어야하는 요소들이다. 이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하여 수행해가면 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기쁨[piti]’이라는 요소다. 기쁨의 단계에서 기쁨에 빠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알아차림 해가면 다음 단계인 평온[息, 輕安]의 단계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수행자들이 평온의 단계에 이를 때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게 된다. 마치 단잠을 자는 것과 같은 평온함이 너무 좋아, 그것이 열반인 줄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수행자가 가야할 길은 멀다. 이 상황에서 멈추게 되면 퇴보하여, 그 다음 단계인 삼매라는 깨달음의 요소에 이르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스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혼자 힘으론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평온에서 벗어나, 삼매상태가 되었을 때에도 평정[捨]이라는 깨달음의 요소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삼매를 알아차려가야 한다. 수행자에게 알아차림을 쉬고, 휴식하는 경우란 없다. 편안한 곳에 머물러 쉬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수행자가 최종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평정[捨]에도 머물지 않고, 계속 알아차림 해가면 결국에는 도과에 이르게 된다.

 

이상의 깨달음의 일곱 요소는 수행을 시작해서 열반으로 가는 깨달음의 전 과정을 순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깨달음은 고요한 곳에 머물러 편안히 쉬고 있다가 어느 한 순간에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칠각지, 즉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요소’라고 하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이루어진다.

 

이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요소는 알아차림 명상의 꽃이다. 알아차림이 깊어짐에 따라 이것들이 순서대로 나타나서 결국은 이 일곱 요소가 동시에 고루 다 갖춰지고, 상호 균형 속에서 완전히 자랐을 때 비로소 열반을 성취한다. 또한 이 일곱 요소는 명상상태의 건강성을 진단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수행이 완숙 단계에 접어들면, 스스로 이 일곱 요소로써 자신의 명상상태를 점검해가야 한다.

 

염처경에서는 알아차려야 할 목록 중 가장 높은 단계에서 알아차리는 내용으로 이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요소를 들고 있다. 그 내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요소[七覺支칠각지]를 알아차림

 

비구는 매순간 진지하게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요소의 생멸]현상을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의 [생멸]현상을 알아차리면서 머문다. [이제 비구의 알아차림은 높은 수준으로 향상돼 있기에] 마음이 자신 안에 머물러, 알아차리고 있으면, ‘알아차리고 있는 그 자체[念覺支]’까지도 알아차린다. 자신 안에 알아차림이 없으면, ‘알아차림이 없다’고 알아차린다. 없던 알아차림이 생기면, 그 ‘생김’도 알아차린다. 그렇게 생겨난 알아차림이 편안하게 머물러 사라지지도 않고, 쇠퇴하지도 않으면서 닦음[修]을 더해가면서 점점 더 커지고 확장되면, ‘알아차림이 점점 더 커지고 확장되는 것’도 또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알아차림 하는 것 그 자체를 알아차리듯이 대상을 탐구하는 것[擇法]도 알아차리고, 노력[精進], 기쁨[喜], 평온[息], 삼매[定], 평정[捨]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예를 들어 비구는 현재 자신 안에 평온이 있으면 ‘평온 있다’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평온이 없으면 ‘평온이 없다’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없던 평온이 생겨나면, ‘평온이 생겨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이미 생겨난 평온이 편안히 머물러 마음에서 사라지지도 않고, 쇠퇴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닦음을 더해가면서 점점 더 커지면, ‘평온이 점점 더 커지는 것’도 또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중간에 노력이 약해지면 ‘노력이 약해지는 것’을 알아차리고, 삼매가 약해지면 ‘삼매가 약해지는 것’을 알아차린다. 삼매가 약해진 틈을 타서 다른 생각이 끼어들면, 그 ‘생각 끼어듦’도 알아차리고, 생각이 다른 데로 옮겨가면, 그 ‘옮겨감’도 알아차린다. 그러다가 생각이 사라지면, ‘생각이 사라지는 것’도 알아차린다.

다시 열의를 내어 ‘집중해야겠다’는 의도를 일으키면, 그 ‘의도’도 또한 알아차린다. 다시 삼매가 강해지면, ‘삼매가 강해지는 것’도 알아차린다. 알아차림과 관찰과 노력이 강해지면, 그것들이 강해지는 것도 알아차린다. 이제는 알아차림과 관찰, 노력, 기쁨, 평온, 삼매가 완벽한 균형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그것들이 한 덩이를 이루어, 동시에 작용한다. 이 상태에서 계속 닦아 가면 그 덩이가 점점 더 커져, 덩어리를 이룬다. 그 덩어리 속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힘 있게 굴러간다. 갈수록 탄력을 받아, 더욱 힘 있게 굴러간다. 완벽한 삼매를 이룬다. 마음은 절대적인 안정과 삼매 속에서 조금의 움직임이나 흔들림도 없다. 이 삼매의 힘으로 의식이 정화되어, 마음은 유리알처럼 투명해진다. 마음속이 환히 다 들여다보인다. 지혜가 밝아지고, 알아차림이 예리해져,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본다.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보고, 괴로움의 원인을 있는 그대로 보고, 괴로움의 원인이 제거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괴로움의 종식을 있는 그대로 본다.

마음에는 오로지 알아차림만 있을 뿐, 그 어떤 편견이나 집착, 시비분별(是非分別)도 없다. 마음은 평온을 이룬다. 더 예리해진 알아차림으로 순간순간 끊어지지 않고 알아차림이 지속된다. 여기에는 어떤 생각도, 번뇌도, 망상도 끼어들지 못한다. 이렇게 삼매 속에서 계속 머문다. 그러면 수 천 생 동안 익혀온 무명업장(無明業障)이 빠른 속도로 녹아내린다. 마침내 마음은 진리와 완전히 통합된다.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깨달아 열반을 성취한다. 모든 고통, 불안, 공포, 긴장이 사라진다. 다시는 그것들이 생겨나지 않는다. 어떤 갈망도 집착도 없기 때문에 다음 생(生)을 받지 않으며, 다음 생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안다.]**

이와 같이 비구는 매순간 안의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요소의 생멸]현상을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의 [생멸]현상을 알아차리면서 머물고, 바깥의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요소의 생멸]현상을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의 [생멸]현상을 알아차리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그 초점을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요소의 생멸]현상에 둔다. 그리하여 매순간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요소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고, 보고 있고,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을 ‘비구가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요소의 생멸]현상을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의 [생멸]현상을 알아차리면서 머무는 것’이라고 한다.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요소의 [생멸]현상을 알아차리면서 머무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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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서은 | 작성시간 14.04.10 염처경 강의 어제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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