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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석선생의 시대

작성자제주운풍|작성시간08.12.16|조회수149 목록 댓글 2

명리학과 한의학의 연결고리는 五行사상에 있고, 이 오행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한 인물이 斗庵 韓東錫이다. 1911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한 한동석은 ‘宇宙變化의 原理’라는 문제의 저서를 남겼는데, 66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 책은 40년 가까이 스테디셀러로 내려오고 있다. 한동석은 오행사상에 관한 한 創新을 해낸 인물이다. 오행의 원리를 스스로 입에 넣고 하나씩 씹어 철저하게 맛본 다음 이 책을 썼다. 한·중·일 3국 중 오행에 대한 이해를 오늘의 맥락에서 이처럼 확실하게 해낸 인물은 없는 것 같다. 중국 隋나라 蕭吉이라는 인물이 ‘五行大義’를 쓴 이래 오행에 대한 역작이 바로 한국의 한동석이 저술한 ‘우주변화의 원리’다. 한동석, 그는 누구이며 그의 사상의 핵심은 무엇인가.


동양사상을 연구하는 데서도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뉘는 것 같다. 강단동양학(講壇東洋學)과 강호동양학(江湖東洋學)이 그것이다. 강단동양학이란 학교에서 가르치는 동양사상을 가리킨다. 쉽게 말하면 논문 쓰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주로 이(理)나 기(氣)와 같은 개념 파악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형이상학적 사고의 트레이닝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현실문제의 해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논문을 중시하는 학교 강단에서만 통하는 동양학이다. 강단과 들어줄 학생이 있다면 모를까, 학생과 칠판 그리고 강단이 없어지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강단이라는 무대장치가 사라지면 마치 연못의 붕어가 연못 밖의 맨땅에 던져지는 꼴이 된다고나 할까.

반대로 강호동양학이란 강호의 좌충우돌하는 실전에서 요구되는 동양학을 가리킨다. 무대장치 없이도 그 맥을 이어가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해방 이후 강호동양학은 대학의 커리큘럼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래서 제도권보다 재야의 기인, 달사들 사이에서 그 맥을 이어왔다. 강단파(講壇派)와 강호파(江湖派)를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간단하다. 학교와 강단이라고 하는 직장을 떠나도 굶어 죽지 않으면 강호파에 속하고, 강단을 떠나 굶어죽는 차원이라면 강단파로 분류할 수 있다. ‘TV동양학’이라는 전인미답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도올 김용옥은 학교를 떠났어도 굶어 죽지 않았으니 강호파에 속한다고 보겠다. 필자는 아쉽게도 아직 강단파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내공이 부족한 탓이다.

그렇다면 강호동양학이란 무엇인가. 강호동양학을 구성하는 3대 과목은 사주·풍수·한의학이다. 이 3대 과목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인 ‘잡과’(雜科)에 속하는 과목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잡과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실용적인 과목들이었다. 필자가 보기에 사주·풍수·한의학은 천·지·인 삼재사상(三才思想)의 골격에 해당하기도 한다.
천문이란 바로 때(時)를 알기 위한 학문이다. 하늘의 별자리를 보면 하늘의 시간표를 알 수 있고, 하늘의 시간표를 알면 인간의 시간표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천문 연구의 목적이다. 시간표를 알면 언제 베팅할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즉, 타이밍을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때를 안다는 것은 인생사의 중대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자기 인생이 지금 몇 시에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하여 한자문화권의 역대 천재들이 고안한 방법이 사주명리학이다. 사주명리학이란 천문(天文)을 인문(人文)으로 전환한 것이다. 하늘의 문학을 인간의 문학으로, 하늘의 비밀을 인간의 길흉화복으로 해석한 것이 이 분야다.
지리는 풍수다. 천문이 시간이라면 지리는 공간의 문제를 다룬다. 시간의 짝은 공간이다.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령(地靈)의 문제다. 땅에는 신령스러운 영(靈)이 어려 있다고 믿는다. 현대인은 이것을 받아들이기가 아주 어렵다. 어떻게 땅에 영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지령을 체험한 사람은 풍수를 이해하지만, 지령을 거부하면 풍수의 핵심에는 영영 접근하지 못한다.

지령이 있는 지점에서 살면 일단 건강해지고, 그 다음에는 영성(靈性)이 개발된다. 건강해지고 영성을 개발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명당이 아닌가. 지령이 어려 있는 땅에서 잠을 자면 특이한 꿈을 꾸는 수가 많다. 좌청룡 우백호가 아무리 좋아도 꿈이 없는 곳은 명당이 아닐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명당들은 특이한 꿈으로 나타났던 지점들이기도 하다. 남자보다 여자들이 민감하게 영지를 감지하는 경향이 있다.


강단파 쇠락, 강호파 득세

천문·지리 다음에는 인사(人事)다. 인사는 존재다. 시간과 공간이 있어도 존재가 없으면 소용없다. 존재는 바로 인간이다. 인간을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분야가 한의학이다. 천문과 지리는 대학의 커리큘럼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지만 한의학은 이와 달리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다.
1970년대 초반부터 경희대와 원광대에 한의학과가 개설되면서 한의학은 학문으로 인정받았다. 그동안 양의학으로부터 ‘기껏 약초 뿌리나 만지작거리는’ 원시적 치료 행위로 멸시받다 비로소 인정받은 것이다.

말하자면 학문적 시민권을 딴 셈이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인기 있는 분야가 되었다. 서울대나 포항공대를 졸업하고도 다시 한의학과에 편입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인문·사회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도 있다. 그래서 편입시험이 다른 학과보다 유난히 치열하다. 학생들 나이도 지긋하다. 직장 다니다 또는 사업하다 한의과대학에 편입하는 사례가 많아서 가르치는 교수보다 나이가 더 많은 학생들도 있을 정도다.

이처럼 한의학과에 IQ와 능력을 갖춘 우수한 인재가 몰리는 이유에는 시민권도 작용한다. 시민권이 있어야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연금도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한의원 개업하면 밥은 먹고산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한의학을 하면 심오한 동양철학을 공부한다는 기대감도 작용하는 것 같다. 직장생활도 해보고 사회에서 이것저것 경험하다 보니 별로 돈도 벌지 못하면서 고달프기만 한 반면, 평소에 관심 있던 공부도 하면서 동시에 생계수단도 되는 학문이 한의학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강호파의 대가들은 한의사 그룹에서 나올 공산이 높다. 기본 생계가 확보되고, 인체를 통해 실전체험을 쌓을 수 있는 데다 타고난 자질이 우수하니 이대로 가면 대가(大家)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강단파는 죽어라하고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더라도 교수 자리 하나 못 얻으면 고급 룸펜이 되기 십상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단파는 쇠락하고 강호파는 득세할 전망이다. 그 강호파를 이끌어 나갈 차세대 유망주들이 한의사 그룹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어떤 한의사는 한 달에 15일 정도만 한의원에서 진료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전국의 산천을 방랑하면서 약초를 채집하고 기인들을 만나 도 닦는 데 투자하는 것을 보았다. 한의사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양의(洋醫)에 비해 한의(韓醫)가 갖는 이러한 시간적 여유는 동양사상을 깊이 탐구하는 데 가장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조건이다.

여기에 비하면 풍수는 영주권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풍수는 복덕방 영감님들이나 관심을 갖는 미신, 잡술로 여겨지다 최창조 교수가 등장하면서 약간 시각교정이 되었다. 그래도 대학교수가 풍수를 연구하는 것을 보니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라고 인식이 바뀌었다. 비록 한의학처럼 시민권은 못땄지만 영주권은 딴 셈이다.

가장 불쌍한 처지가 사주명리학이다. 아직도 미아리 골목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 불법체류자인 셈이다. 불법체류자는 국가로부터 사회복지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신세이니 항상 눈치를 보아야 한다. 언제 단속이 있는지 말이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이쪽부터 수사의 칼날을 들이댄다. 범죄자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주, 불법체류자 신세

사주는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법체류자의 신세이고, 한의학은 주류사회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시민권자라는 신분상의 차이는 있지만, 신분을 초월한 우정이 가능하다. 한의사 중에는 사주명리학에 능통한 사람이 상당수 있다는 말이다. 능통하지는 못 하다고 하더라도 한의사들은 대체로 사주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한의학과 명리학이라고 하는 두 메커니즘은 상호 호환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명리학에 조예가 깊은 한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처방을 쓸 때도 그 사람의 사주팔자를 반드시 물어본다. 나이가 지긋하게 든 어떤 원로 한의사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사람의 생년·월·일·시만 듣고도 증상이 어떻다는 것을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경우를 보았다.

사주만 보아도 어떤 병이 들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대병(大病)은 팔자에 타고나고, 소병(小病)은 관리소홀’이라는 명제다. 그 사람의 원초적 성격이나 기질은 타고난다. 편벽된 성격이나 기질이 오랜 시간 쌓이면 대병이 된다. 대병이란 고질병을 지칭한다.
이러한 고질병의 원인을 소급해 올라가면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에서 연유한 것이고, 그 기본적인 성격과 기질은 애초부터 타고나는 것이라서 사주팔자에 나타나게 마련이다. 고로 팔자를 보면 그 사람의 고질병을 예견할 수 있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하지만 모든 병이 다 팔자소관인 것은 아니어서 자잘한 병은 후천적인 건강관리 소홀로 걸린다.

건강하게 타고났더라도 후천적으로 무절제한 생활을 하면 병에 걸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병은 당사자가 주의하고 치료를 가하면 회복이 가능한 작은 병이다. 소병은 치료가 가능하지만 대병은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환자를 보지 않고 사주팔자만 보고도 처방이 가능하다는 원리는 이래서 가능하다.
사주를 보고 병을 미리 아는 원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우리 인체의 중요한 장기는 오장(五臟)이다. 이 오장은 오행과 연결되어, 어떤 오행이 그 사람의 사주팔자에 지나치게 많거나 적으면 거기에 해당하는 장부에 이상이 생긴다고 본다. 예를 들어 팔자에 화(火)가 지나치게 많거나 적으면 죽을 때 다른 이유보다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목(木)이 과불급이면 간장에 이상이 생기고, 토(土)가 과불급이면 위장 계통에 이상이 발생하고, 금(金)이 과불급이면 폐장에 문제가 발생하고, 수(水)가 과불급이면 신장에 이상이 생긴다고 본다. 한발 더 나아가면 사주에서 화기는 많은 반면 이를 보충해 주는 목기가 부족하면 뇌에 이상이 생겨 죽을 수 있다.
뇌의 작용은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현상과 같은데, 이를 지원해 주는 목기가 부족하면 전기 공급이 중단되어 전구에 불이 꺼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병화(丙火) 일주(日主)인 사람이 겨울에 태어난 데다 인수가 부족해 신약하면 시력이 약하거나 심장질환이 있을 수 있다. 병화는 심장이기도 하지만, 인체의 헤드라이트인 눈에 비유할 수도 있다. 즉, 시력에 이상이 올 수 있다.

사주책에 보면 임계(壬癸) 일주가 죽을 때에는 신장병·부종병으로 오래 앓다 간다고 되어 있다. 경신(庚辛) 일주는 혈압·급병·토혈로 간다. 사오미월(巳午未月)의 갑을(甲乙) 일주는 천식해수나 뇌일혈로 죽는다. 기경신(己庚辛) 일주가 신약하면 폐병·객혈로 세상을 뜨는 수가 있다. 일간이 경신(庚辛)일이고 가을이나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술이 몸에 받는다. 사주가 냉한 데다 알콜이 들어가면 몸을 덥히기 때문에 적당한 음주는 몸에 아주 좋다. 물론 사주에 따라 반드시 그 병에 걸린다고 100%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럴 확률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이처럼 인체의 병과 그 사람의 사주팔자가 무시할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을 눈치챈 한의학과 학생들은 방학이면 사주에 용하다는 재야의 선생을 모셔다 놓고 그룹스터디를 하기도 한다.


天-地-人 삼재의 기본은 음양오행

천-지-인 삼재에 모두 적용되는 공통분모를 좁혀 들어가면 음양오행이라는 거대담론 체계가 나타난다. 명리학과 한의학도 역시 마찬가지다. 양자가 일정부분에서 상호 호환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도 역시 음양오행이다. 하늘에 해와 달, 그리고 목·화·토·금·수성이라는 별이 있듯 땅에도 역시 거기에 부합되는 형상이 있으며, 인체의 장부에도 음양오행이 적용된다. 음양오행이라고 하는 여의주를 하나 가지면 사주·풍수·한의학을 하나로 꿸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시스템적 사고’다. 이것을 건드리면 저것이 움직인다. 언뜻 보기에는 서로 관련이 없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물코와 같이 촘촘하게 연결된다. 이것이 동양사상의 특징이다. 그래서 동양사상은 시간이 필요하고 연륜이 필요하고 흰머리가 나야 한다. 전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음양오행이라고 하는 시스템적 사고를 체득하는 데 가장 선결문제이면서도 어려운 부분이 기본 전제의 이해다. 기본 전제가 되는 개념에 대한 파악이 확실해야 한다. 그런데 이 기본 개념 파악이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오행에 대한 개념 파악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명리학이나 한의학이나 오행이라는 기본 틀에 얹혀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이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데, 이 오행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간단하지 않은 이유는 매우 포괄적이면서도 중층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영어의 ‘have’동사가 여러 가지 중층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오행은 그 이상으로 포괄적인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특히나 해방 이후 세대는 한문보다 영어 공부에 더 치중한 세대이다.

영어는 상업적인 언어가 되어 놔서 뜻이 분명하다. 분명하지 않으면 계약에서 분쟁이 생긴다. 그러므로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반대로 한문은 매우 포괄적인 문자다. 이렇게도 해석하고 저렇게도 해석할 여지가 많은 언어다. 영어와 같은 분명한 언어에 익숙해진 해방 이후 세대가 매우 다의적인 한문의 세계에 들어가면 당황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오행과 같은 한자문화권의 핵심 개념에 들어가면 그 당혹감은 더 가중된다.

명리학과 한의학의 연결고리는 오행사상에 있고, 이 오행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한 인물이 한동석(韓東錫·1911~68)이다. 1911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한 한동석은 ‘우주변화(宇宙變化)의 원리(原理)’(대원출판, 2001년)라고 하는 문제의 저서를 남겼는데, 66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 책은 40년 가까이 스테디셀러로 내려오고 있다. 한의학도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한의과대학 학생치고 이 책 안 본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평판이 자자한 책이다. 그런가 하면 명리학을 심도 있게 공부하려는 술사들 사이에서도 이 책은 반드시 한번 읽어볼 만한 책으로 회자되고 있다.

명리학에서도 지하실 깊은 바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행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반드시 필요한데, 기존의 책을 보면 옛날 사람들이 한 이야기만 반복해 오늘날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완전하게 이해되지 않는 수가 많다. 이 책 저 책 들여다보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후학들이 법고창신(法古創新)을 해야 하는데, 옛날 이론만 앵무새처럼 반복만 하고 있을 뿐이지, 오늘의 상황에 맞추어 새로운 해석을 못 해내기 때문이다. 법고(法古)는 하지만 창신(創新)을 못한 셈이다. 내가 보기에 한동석은 오행사상에 대한 창신을 해낸 인물이다. 오행의 원리를 스스로의 입에 넣고 하나씩 씹어 철저하게 맛본 다음 쓴 책이다.

근래에 한·중·일 3국 중 오행에 대한 이해를 오늘의 맥락에서 이처럼 확실하게 해낸 인물은 없는 것 같다. 중국 수(隋)나라때 소길(蕭吉)이라는 인물이 ‘오행대의’(五行大義)를 쓴 이래 오행에 대한 역작이 바로 한국의 한동석이 저술한 ‘우주변화의 원리’다. 한국에서 인물 나왔다. 이 책은 중국이나 일본의 연구자들도 공부해야 할 명저다. ‘우주변화의 원리’ 가운데 필자가 인상깊게 읽었던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목화토금수라는 것은 나무나 불과 같은 자연 형질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목화토금수의 실체에는 형(形)과 질(質)의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행의 법칙인 목화토금수는 단순히 물질만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요, 또는 상(象)만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형이하와 형이상을 종합한 형과 상을 모두 대표하며 또는 상징하는 부호인 것이다. 오행이란 이와 같이 형질을 모두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점(主點)은 상에 두고 있다.’(60쪽)


목화토금수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종합

목화토금수에는 형이상의 의미와 형이하의 의미 둘이 있다고 지적한 부분도 중요하다. 두 면을 모두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현상보다 본체의 측면, 즉 형이상의 측면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한동석은 강조한다.
‘행(行)이란 것은 일진일퇴를 의미하는 것이니, 즉 ‘왕(往) + 래(來) = 행(行)’이라는 공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의 일왕일래(一往一來) 하는 모습이 오행의 운동규범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명명한 것이다. 따라서 오행운동은 분합운동이기 때문에 양(陽) 운동의 과정인 목화(木火)에서는 분산하고, 음(陰) 운동의 과정인 금수(金水)에서는 종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취산(聚散)의 의미가 행자(行字)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개념을 설정함에 있어서 행자가 들어 있는 것은 모두 이같은 현상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금전이 취산하는 곳을 은행(銀行)이라고 한 것이나, 화물이 취산하는 곳에는 양행(洋行)이라는 개념을 붙인 것 등은 실로 행자 자체가 지닌 바의 개념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60쪽)
오행을 이야기할 때, 도대체 ‘행’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는 쉽지 않다. 현대에는 잘 안 쓰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한동석은 이를 왕래로 규정한다.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뜻으로 본다. 예를 들어 ‘은행’이나 ‘양행’처럼 돈이나 화물이 모였다 흩어지거나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의미로 설명하는 것은 다른 책에서는 보지 못하던 설명이다.

‘화기’(火氣)라고 하는 것은 분산(分散)을 위주로 하는 기운이다. 모든 분산작용은 바로 화기의 성질을 반영하는 거울인 것이다. 우주의 모든 변화는 최초에는 목의 형태로써 출발하지만 그 목기가 다하려고 할 때에 싹은 가지를 발하게 되는 것인즉, 그 기운의 변환을 가리켜서 화기의 계승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작용을 화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변화작용의 제2단계인 것이다. 그런데 화기가 분열하면서 자라나는 작용은 그 기반을 목에 두고 있는 것이므로 목이 정상적인 발전을 하였을 때는 화기 또한 정상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지만, 만일 목의 발전이 비정상적일 경우에는 화도 역시 불균형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비단 화기가 발전하는 경우 뿐만이 아니라 목화토금수의 어느 것이 발전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화라는 것은 이와 같이 그 상이나 본질이 목에서 분가(分家)한 것에 불과한 것이므로 이것을 인생 일대에서 보면 청년기에 접어드는 때이다. 그러므로 진용(眞勇)은 허세로 변해가기 시작하고 의욕은 차츰 정욕(情慾)에서 색욕(色慾)으로 변해 가는 때인 것이다….

색욕이라는 것은 내용에 대한 욕심이 아니고 외세에 대한 욕심이다. 왜 그렇게 되는가 하면 목의 경우는 이면에 응결되었던 양기(陽氣)가 오로지 외면(外面)을 향해서 머리를 든 정도였지만, 화기의 때에 이르게 되면 그것이 상당한 부분의 표면까지 분열하고 있으므로 그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관찰하여 보면 이것은 꽃이 피고 가지가 벌어지는 때인즉, 이때는 만화방창(萬華方暢)한 아름다움은 위세를 최고도로 뽐내는 때이지만 그 내용은 이미 공허하기 시작하는 때인 것이다. 여름은 외형은 무성하지만 내면은 공허해지는 때이므로 생장의 역원(力源)은 끝나고 노쇠의 바탕이 시작되는 때이다.’(66~67쪽)

여기서 보면 화의 성질을 분산작용으로 규정한다. 그 분산작용이 인간의 욕망으로 나타나면 색욕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그 색욕이란 내용에 대한 욕심이 아니고 외세에 대한 욕심’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은 아무리 생각해도 탁견이다. 색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바깥의 색깔이다. 색욕의 본질을 분석하면 바깥의 색깔에 대한 욕심이다. 이것을 바로 화기의 작용이라고 본 것이다. 화기는 마음껏 발산하는 힘이다. 역대 어떤 도사가 화기와 색욕을 이렇게 연결시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였단 말인가!

이와 같이 분명하게 설명하는 사람은 근래에 없었다. 한동석 선생의 통찰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아도 사주에 화가 많은 사람은 기분파가 많다. 배짱이 맞으면 시원시원하게 ‘오케이’ 하는 경향이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화기가 많은 팔자들은 그날 처음 만났어도 이야기가 통하면 곧바로 호텔로 직행하는 경우도 보았다.


支地에 불이 많은 사람들의 사주

남자 사주의 경우 지지(支地)에 불이 많은 사람은 결혼을 여러 번 하는 수가 있다. 소위 ‘처궁(妻宮)에 불지른 사주’라고 표현한다. 지지에 불이 많으면 이는 곧 배우자 자리(妻宮)에도 불이 많은 셈이고, 처궁에 불이 훨훨 타면 같이 사는 여자가 남자의 화기에 타버리는 수가 있다. 그런 사람은 통계적으로 이혼이나 사별이 많다. 배우자 복은 없지만 머리는 비상하다. 판단력이 신속 정확할 뿐더러 기발한 발상을 하기도 한다.
처궁에 불지른 사주는 불교의 고승들에 많다. 고승의 자격요건은 여자도 물론 없어야 하지만, 화두(話頭)를 돌파할 수 있는 집중력과 두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처궁이나 남편궁에 불지른 사주를 간혹 목격하면 필자가 하는 말은 “결혼 늦게 하시오”이다.

일찍 결혼하면 실패가 많으니 젊은 시절에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은 다음에 결혼하면 실패가 적다. 충분히 수업료를 냈으니까. 알고 보니 한동석 선생 본인이 여기에 해당하는 사주였다. 그는 6·25 전후의 파란만장한 시대를 통과하면서 결혼을 여러 번 하였다. 도인이 어떻게 결혼을 여러 번 했단 말인가 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그의 사주를 바라보면 이해가 간다.

생년월일은 1911년 6월8일(음) 인시(寅時)이니 이를 만세력에서 간지(干支)로 환산하면 신해(辛亥)년 갑오(甲午)월 갑술(甲戌)일 병인(丙寅)시가 된다. 지지에 인(寅)·오(午)·술(戌) 삼합으로 온통 화기가 충천한 사주다. 불이 훨훨 타고 있다. 어떤 여자든 들어와 살면 타버리는 사주다. 더구나 일주는 갑목이다. 이렇게 되면 ‘목화통명’(木火通明) 사주이기도 하다. 목화로 되어 있으면 밝음에 통한다는 뜻이다.

사주팔자가 마른 통나무에 불 붙이는 형국이 되어놔서 명석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목화통명’ 사주를 보통 박사 사주라고도 하는데 머리 좋은 사주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런 사주는 무욕담박하고 여자가 타죽는 사주이니 출가해서 스님이 되었더라면 이름 높은 고승이 되었을 팔자이기도 하다. 아무튼 화기에 대한 기본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사주를 볼 때나 한의사가 환자를 볼 때도 참고되는 바가 많다. 화는 심장을 가리키므로 처궁에 불지른 사주의 소유자는 고혈압이나 심장질환을 조심해야 하는 것으로 나온다.

한동석 선생의 사상과 행적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하던 중 논문이 하나 눈에 띄었다. 대전대 한의학과 대학원 석사논문인 ‘한동석의 생애(生涯)에 관한 연구’(權景仁, 2001)이다. 한동석의 친척들과 제자 그리고 동료들을 인터뷰함으로써, 그의 출생에서부터 가정생활과 공부 과정, 환자들에 대한 임상 그리고 학술활동을 밝혀 놓았다. 한동석에 관한 학계 최초의 논문이다.

여기에서 주목을 끄는 부분이 있다. 한동석이 이승만 대통령 이후 한국의 정권교체에 대하여 밝혀 놓은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말에 의하면 한동석은 앞일을 미리 내다보는 예언 능력이 있었다고 전한다. 한의사이면서도 앞일을 귀신 같이 아는 도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대표적인 예언이 한국의 정권교체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예언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하여 권경인 씨의 소개로 한동석의 사촌동생인 한봉흠(76) 박사를 서울 정릉의 자택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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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진심갈력 | 작성시간 09.01.24 알찬 글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해암:함상섭 | 작성시간 12.02.1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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