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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부끄럽고 미안하고 황홀해서 / 전동균

작성자플로우|작성시간19.06.12|조회수242 목록 댓글 0

 

 

저는 키가 작고

불면증이 좀 있고

담배는 하루 반갑

일없이 빈둥대는 것을 좋아합니다

흰 종이 구겨지는 소리와

갑자기 유리창을 때리는 빗방울

속에서 펼쳐지는 날개,

어떤 꽃을 피워야 할지 망설이는

나뭇가지의 떨림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요

우연히 생겨나서

우연히 만난

수많은 별들, 수많은 사람들,

누구나 혼자지만

아무도 고독하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과

아침마다 눈을 뜨고

어제보다 찬 공기를 숨 쉬는 일

어린 딸이 커서 처녀가 되는 일이

기적의 일부란 것을 조금은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마다

하늘을 볼 때마다

부끄럽고 미안하고 황홀해서

부서지는 햇빛이나 먼지 속으로 달아나고 싶어요

한낮에도 발가벗고 춤을 추고 싶어요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창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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