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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경전과 이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과 해인사로 이운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19.02.10|조회수82 목록 댓글 0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과 해인사로 이운


 고려 고종 23(1236) 몽고 병의 침입을 국민의 단합된 힘과 부처님의 가호로 물리치기 위해

당시의 천도지(遷都地)인 강화도에 대장도감(大藏都監) 본사(本司)를 두고 진주, 남해에 분사(分司)를 두어 대장경판을 새기는데 전 국력을 쏟아 고종 38(1251)까지 16년간에 걸쳐 완성하여 강화도에 판당(板堂)을 짓고 봉안하였다.

 

다시 강화읍 남쪽에 있는 선원사(禪源寺)에 옮겨 모셨던 팔만대장경판을 언제 어떠한 경위를 거쳐서 강화도에서 해인사까지 옮겨 모시게 되었을까? 이 문제는 4가지 정도의 사실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 가야산 해인사는 대장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각국사 의천이 주석(住錫)하던 인연 깊은 곳이라는 사실과

둘째, 고려 말과 이조초의 왜구의 극심한 노략질 앞에 강화도는 이미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

셋째, 해인사가 대장경판을 보관하는데 지리적 조건의 우수성과 가야산이 명산이어서 신령스럽게 믿어진 사실

넷째, 해인사는 교통이 불편한 심산유곡이어서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일치되어

 

조선 태조 7(1398) 5월에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서 서울의 지천사(支天寺)로 임시로 옮겨 모셨다가 다시 해인사로 옮기게 되었다. (요즈음 8톤 트럭 35대분이 훨씬 넘는) 대장경판을 사람의 힘만으로 강화도에서 해인사까지 옮기는 일은 온 국민이 힘을 기울였을 것이다.

 

운반행렬의 맨 앞에는 동자가 향로를 들고 길을 맑히면 많은 스님들이 독경을 하며 길을 인도 고 뒤로 소중하게 포장한 경판을 소달구지에도 싣고 지게에도 졌는가 하면 부녀자들은 머리에 이고 팔만대장경판의 정대(頂戴) 공덕과 부처님의 은혜를 되새기면서 서울에서 해인사까지 팔만대장경판의 운반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일설에는 서울에서 한강에 배를 띄워 대장경판을 싣고 해로(海路)를 통해 낙동강 줄기인 지금의 고령군 개진면 개포마을에 배를 대고 해인사까지 운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개포마을의 예전 이름이 경()을 풀었다는 의미에서 개경포(開經浦)라고 했다.)

 

이조 태조 7(1398) 5월에 시작된 경판의 대이동은 이듬해 정종 원년(1399) 정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해인사에 옮겨 모셔져, 700여 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습기나 좀이 생기지 않고 뒤틀리지도 않았는데, 사용한 목재는 강화도에 좋은 나무가 없어 남해지방의 거제도, 완도, 제주도 등지에서 많이 생산되는 자작나무 원목을 베어 바닷물에 3년간 담갔다가 꺼내어 판을 짜서 다시 소금물에 삶아서 그늘에 3년간 말린 후 양면에 구양순(歐陽詢)의 해서체로 양각하고 방충을 위하여 옻칠을 하였다.


경판은 모두 8,1340판인데 양면에 새겨져 있어 162,680면으로 한 면에 글자가 322자 씩, 글자 수만 해도 5,238,2960자로 원고지로 치면 30만장쯤의 분량이 된다.

 

경판 1장당 평균 무게는 약 3.5kg이며, 길이는 67cm, 너비 23 cm, 두께 3cm로 사각이 뒤틀리지 않도록 각목(角木)으로 마구리를 달고 그 이음새는 동제(鋼製)로 장식하였다. 해인사에 봉안되어있는 팔만대장경판은 책으로 엮으면 6815권으로 하루 1권씩 읽는다고 해도 18년이상 걸리는 방대한 양이다. 온 국토가 몽고 병에 짓밟히고 강화도에 피난한 상태에서 대장경판을 새기기 위해 원고를 수집하고 사본을 정리하면서 교정하고 조판하는 일도 짧은 시일에 이뤄질 수 없거니와 판목(板木)을 다듬고 경을 쓰고 글자를 새기는 이 모든 일이 16년의 세월에 이루어 졌다는 것은 불가사의라 할 수 있겠다.

 

또한 팔만대장경판을 새기는 불사에는 조정대신과 전 국민의 일심 단합된 협조 아래 몇 백명의 명필과 수 천 명의 조각사가 동원되었으리라 상상하지만 경판의 글자가 오자(誤字)나 탈자(脫字)없이 정자로 쓰여 지고 꼭 한 사람의 필적같이 분담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경탄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세계에 남아 있는 30여종의 대장경판 중에서도 고려대장경만큼 체제가 광범위하고 부수가 완비하며 교정이 엄밀한 것은 그 유를 찾아볼 수 없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요, 우리 조상들의 호국의 얼이 깃든 팔만대장경판은 나라의 보배(國寶)일 뿐 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법보(法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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