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식득지(轉識得智)란 무엇인가?
전식득지(轉識得智)란 식(識)을 굴려서 지혜(智慧)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식이란 범부 중생심을 말하고 지혜란 깨달은 부처님의 마음을 말합니다. 식이란 무명을 말하는 것이고 지혜란 깨달은 부처님의 반야입니다. 식의 근본은 반야입니다. 다만 반야가 스스로의 무명에 오염된 마음이 식입니다. 그런데 무명이라고 하더라도 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염이라는 것도 그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굴려야 할 무명이 본래로 없는 것입니다. 다만 스스로 그런 줄을 모르고 만법을 실유(實有)로 집착하는 것이 중생의 무명입니다. 따라서, 허물은 마치 우리가 꿈을 꾸면서 그 꿈이 꿈인 줄 모르고 스스로 그 꿈을 실제인 줄로 아는 것입니다. 이 무명 꿈을 깨지 않는 한 스스로 실유로 집착한 실체가 없는 무명 업을 따라 영원토록 윤회를 하면서 고를 달게 받는 것입니다. 꿈속의 사람은 아무리 현실에 대하여 잘 안다 하더라도 그 실제의 현실을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만 이 본래로 물듦이 없는 반야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복(福)이나 덕(德)은 중생의 것으로 보태고 쌓거나 빼고 허물 수 있으나 마침내 허망한 것이고, 이 반야는 무한 겁도록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한 것으로 무한한 제불보살이라도 조금도 더하거나 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진여(眞如)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본래로 일체의 덕성이 원만구족하여 있으므로 이것을 불성(佛性)이라고 합니다.
또, 이 반야는 쌍차쌍조(雙遮雙照)로서, 비유하자면 음전자와 양전자가 서로 막아서[雙遮] 서로 모습을 감추고 음전자와 양전자가 서로 비추어서[雙照] 서로 모습을 나투되 모습을 감춘다고해도 서로 비추는 그대로이고 서로 비추어 모습을 나툰다 해도 서로 감춘 그대로 이므로 유(有)가 곧 무(無)이고 무가 또한 유로서 유무에 걸립이 없으므로 이것을 원융무애 중도라고 합니다.
만법이 이와 같은데 다만 인연을 따라 때로는 나투고 또 때로는 그 모습을 감추므로 이것을 연기법계(緣起法界)라고 합니다. 이와같이 만법의 참모습은 중생이거나, 부처거나, 유정이거나, 무정이거나 일체가 원융무애하게 다만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그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범부 중생들은 오직 만법의 참모습을 깨달으면 그것이 바로 부처입니다.
그러므로 무명을 굴려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로 무명의 근본이 없는 것인 줄을 깨달으면 그것이 부처이며 그것이 바로 전식득지(轉識得智)입니다.
화엄십지처럼 수행이 차츰 무러 익어 간다는 것은 짙은 구름이 차츰 흩어지듯이 단지 무명이 차츰 흩어지는 것이다. 하늘은 항상 그대로 이듯이 우리의 불성은 언제나 그대로 이다. 구름이 한 점도 없으면 하늘이 드러남을 보아서 비로소 본래로 하늘이 그러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무명의 근본이 본래로 없는 것인 줄을 깨닫기 위해서는 만법의 본래의 참모습을 바르게 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방편이 무엇이든지 간에 부처님께서 그랬듯이 반드시 여래지의 숙면 일여한 구경선정을 성취해야만 합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성취하신 여래지의 숙면 일여한 구경선정을 성취하면 누구든지 만법의 참모습을 여실히 증득하여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돈오(頓悟)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