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베트남군 1군단의 전 지역과 2군단의 대부분 지역을 석권한 북베트남군이 사이공 지역에 대한 최종공세를 준비하기 위해서 이동하고 있는 동안은 전선이 소강상태였다. 남베트남군은 판랑(Phan Rang)과 타이닌(Tay Ninh)을 연하는 선에서 새로운 방어선을 형성하여 북베트남군을 저지시켜 보려고 시도하였다. 판랑이 티우의 고향이며 그의 선산이 있어 방어선에 판랑 지역을 포함시켰다는 비난도 있었다.
티우는 작년 10월에 부정시비로 할 수 없이 제4군단장직에서 해임하여 보병학교장으로 보직시켰던 구엔 빈 기(Nguyen Vinh Nghi) 중장을 4월 6일 판랑 지역 방어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전투력이 강한 제2공수여단을 파견하였다. 마비된 성의 행정체제를 다시 세우고 낙오병들을 끌어 모아 임시부대를 편성하는 등 기는 동분서주하였다. 다행히 아직 적의 압력은 없었다.
구엔 빈 기 중장
남베트남군은 제1, 2군단 지역에서 철수한 병력과 장비로 부대를 재편성하는데 전력을 경주하였다. 13개 정규사단 중에 7개 사단이 소멸되거나 많은 손실을 입었다. 제1, 3, 23사단은 해체되어 잔존 병력은 재편성 부대 보충요원으로 활용하였다. 재편성 우선순위는 병력손실이 적은 부대 순으로 해병사단, 제2사단, 공수사단, 제22사단 순이었다.
남베트남군 제2사단 마크
해병사단은 2개 여단으로 재편되었고 제2사단도 2개 연대로 재편되었다. 포병은 재편 사단 당 105㎜ 12문을 1개 대대로 하여 2개 대대만 가용하였다. 기타 박격포, 통신장비도 편제장비의 50% 정도 보충되었다. 공수사단은 1개 여단이 칸두옹(Khan Duong)에서 북베트남군에게 격파당하였고 1개 여단은 판랑으로 파견되어 분산 운용되고 있었다. 제2사단이 공수여단과 교대하기 위하여 판랑으로 투입되었다.
4월 14일부터 북베트남군 2개 사단이 판랑 지역에 공격을 개시하였다. 1개 사단이 전면에서 공격을 가하면서 1개 사단은 퇴로를 차단하였다. 4월 15일에는 판랑이 적에게 피탈되었고 잔존 병력은 해상으로 철수하였다. 방어사령관 기 중장은 북베트남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후퇴하던 병사 몇 명이 티우의 아버지 무덤을 그대로 두지 않고 길가에 버려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