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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사]"반자이 돌격"과 일본육군의 보병교리의 문제점에 대해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10.20|조회수1,304 목록 댓글 9

태평양전쟁 기간 일본 보병이라고 하면 칼을 빼든 장교가 선봉에 서고 그 뒤로 병사들이 착검돌격하는 소위 "반자이(万歳) 돌격"을 연상하게 됩니다. 소련군은 "우라 돌격", 중국군은 인해전술, 미군은 "화력에 의한 제압", 독일군은 교묘한 전술과 기갑부대하나의 추상적이고 고정적인 이미지입니다. 

 

착검돌격에 대해 일본군만의 시대착오적인 사고에 의한 무모한 전술로만 취급되는데 이는 비판의 촛점이 잘못된 것입니다. 21세기인 지금 최첨단 무기를 사용하는 현대 군대에서도 여전히 총검은 보병의 필수군장이며 훈련 과목에 총검술이 남아 있습니다. 총검은 여전히 전장에서 필요하기 때문이죠.

 

적진에 대한 보병의 착검돌격은 태평양전쟁은 물론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에서도 자주 벌어졌습니다. 특히 야간을 이용해 철저한 기도비닉을 통해 적진 가까이까지 발각되지 않고 접근한후 단숨에 공격했을때 방어군은 혼란에 빠져 제대로 저항도 못해본채 무너지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중 화력에서 열세했던 중공군이 가장 즐겨 사용했던 전술이기도 하며 미군은 물론, 훈련과 경험이 부족했던 한국군은 압도적인 적의 기습이라고 지레 겁을 먹어 1개 분대의 공격에 1개 중대가 붕괴되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 신화는 책상에서 사료만으로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실제와는 거리가 먼 소리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현장에서 직접 그들에게 당했던 이들에게는 엄청난 공포였습니다. 대신 침착하고 신중한 지휘관의 지휘를 받고 잘 방비되고 경험이 풍부한 방어군에게는 이런 공격은 큰 희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단병기로 적과 싸우던 근세 이전과 달리, 현대 전투에서 대부분의 병사들은 적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거리에서 사격을 가하며 코앞에서 적과 직접 마주칠 일은 매우 드뭅니다. 바꾸어 말해 이런 상황에 예상치 못하게 직면할 경우 쉽게 패닉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는 전장 심리적인 문제이죠. 그래서 거의 총검을 쓸 일이 없는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총검술을 훈련시키는 것이죠.

 

그런데, 일본 육군의 보병 교리의 문제점은 단순히 착검돌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직된 교리, 병종간의 상호 협력 부족, 화력의 열세를 정신력으로 극복하라는 억지, 적진에 대한 충분하고 신중한 연구 없이 천운에 걸고 자살에 가까운 돌격을 반복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또한 기도비닉은 필수임에도 경험이 부족한 지휘관들은 이를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았고 반대로 교리 자체가 러일전쟁에서 머물러 있다보니 적진 100m 이내까지는 사격을 절대 금지하라는 규칙에만 얽매인 지휘관은 접근과정에서 적에게 이미 발각되어 집중 사격을 받는데도 이를 맹목적으로 준수하여 큰 피해를 입고 격퇴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원 화력의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았고 통신기기의 미비로 상호 협력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전쟁 후반에 가면 불리한 상황에서 후퇴하는 대신 지휘관은 일종의 집단 자살로 반자이 공격을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작전은 전술적 필요에 의해 수립되어야 하는데 지휘관이 단지 자신의 책임을 면피하고 체면을 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죠. 지휘관은 병사들에게 개죽음을 강요하되 막상 자신은 뒤로 빠진채 부하들만 앞장 세웠습니다. 병사들은 개죽음인줄 알면서도 집단안에서 겁쟁이로 몰리거나 불명예스러운 처벌이 두려워 마지못해 따라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기나 전의가 있을리도 없고 융통성 있는 작전으로 적진을 돌파해 보려는 노력도 있을리 없습니다. 그냥 죽으러 가는 식이죠. 우리가 가진 "비합리적이고 무모한 일본군"의 이미지가 바로 이렇게 생겼습니다.  

 

한편 한국전쟁 초반 미군의 문제점에 대해 중공군 수뇌부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습니다. "주간전투와 화력전에만 집착하고 도로를 통해 차량으로만 이동하려 하며 야간전투와 백병전을 경시한다. 근접거리에서 공격을 받을 경우 쉽게 패닉에 빠진다." 이유는 정반대이지만 전술상 경직되었다는 점에서는 일본군과 마찬가지입니다. 중공군은 이를 적절히 활용해 미군의 허를 찌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차례 당한 후 미군이 스스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보완하자 더이상 통용되지 않았습니다. 

 

전투는 서로간의 수읽기입니다. 한쪽이 경직된 사고에 빠지면 그것은 상대가 이용하기 좋은 약점이 되며 그 약점을 파고 들어가 패배시킵니다. 즉, 어떤 경우에도 지휘관은 절대 경직된 사고를 해서는 안되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서로의 강약을 정확히 파악하고 나의 약점은 보완하고 적의 약점을 파고들어 상대의 수를 읽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전술의 기본입니다.  

 

결론적으로 일본군의 문제점은 착검 돌격 그 자체가 아니라 착검 돌격을 구사하는 전술에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여러번 실전으로 발견했고 이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군내에서 교리에 대한 자유로운 연구나 비판이 금지된 분위기로 인해 패망할 때까지도 고쳐지는 커녕 단 한번도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군 수뇌부는 "부득이하다"는 식으로 묵인하거나 자신들의 무능함을 숨기기 위해 미화하기 급급했죠. 일부 네티즌들이 일본군 보병 전술에 대한 충분한 이해없이 단순히 희화화시키는 경우가 많아 지적해 봅니다. 

 

국내에서는 여지껏 2차대전에 대해 영, 미군, 독일군의 전술 연구에만 치중하여 막상 태평양전쟁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등한시되고 있죠. 그러나 일본군의 교리상 문제점은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일본군의 군사문화가 고스란히 지금까지도 우리 군과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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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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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0.20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 작성자지옥괭이 | 작성시간 13.10.21 적의 포로가 되는 것을 수치스러워 하는 풍조와 죽음의 미학 문화가 자살의 수단으로 반자이돌격으로 나타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태평양전쟁중에 실제로도 반자이 돌격을 안해도 집단으로 독약을 나누어 먹거나, 할복 자살한 케이스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자이 돌격이 행해진 시기를 보면 대다수가 이미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시도된 경우가 많습니다.
    즉 다른나라 군대같으면 항복을 고려해야 할 시기에 일본군은 집단 자살의 방법으로 반자이 돌격을 고려한다고 해야 할까요.
  • 작성자2Pac | 작성시간 13.10.21 좋은 글입니다 !!
  • 작성자땅콩버터 | 작성시간 13.10.21 좋은글 감사합니다. 거기에 더해 중세이후 유럽에서 유행한 돌격병신드롬(?) 도 한가지 이유가 아닐까요? 당시 문학작품들 보면 전쟁에 출전해 전사하는걸 미화하는 풍조가 있었지요. 기억은 가물합니다만 명예롭게 장렬히 전사하러 참전한다는 지원병들을 문학작품들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 영화들에서는 잘 안나옵니다만 고전영화들에서는 명예롭게 생환한 참전군인이 "죽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라는 대사로 파티에서 여자들을유혹하는 장면도 더러 나오기도 했지요. 참고하자면 돌격병신드롬은 지금도 남아있는데 해병대가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작성자1개미핥기 | 작성시간 14.01.03 문제는 착검반자이~가 특수한 경우에 사용된 게 아니라, 쪽국군의 주력전술이였다는 게 문제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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