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7 - 같은 말 다른 이해, 북의 ‘긍정적 검토’란?
<연재> 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8)
2012년 06월 21일
북과 사업협의를 해본 사람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남쪽 분들이 제안한 사업을 ‘북이 하기로 동의했다’고 쉽게 오해해 버리는 경향이다. 그리고 약속해놓고 왜 지키지 않느냐며 ‘믿을 수 없는 북한’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것은 남과 북의 문화의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오해이다.
북과 만날 때 남쪽 사람들이 북측에게 제기하고 싶은 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북은 남쪽의 웬만한 의견에 대하여서는 아주 좋은 표정으로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지요”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은 남쪽 사람들의 대부분은, 머리에 뿔이 날만큼 고압적이라고 알고 있는 북한사람, 그것도 높은 관리가 긍정적으로 검토해본다는 반응에 ‘이건 된다는 뜻이구나’ 하고 주관적인 판단을 하며 쾌재를 부르게 된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남쪽 분들이 제기하는 무수한 문제제기가 북쪽의 특성을 잘 모르고 이루어진 제안일 경우가 많은데, 북에서 일일이 이를 설명하기가 난감해 ‘무난하게 대답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북은 그렇지 않단다. 그 이유를 유추해 보면 이럴 것 같다.
남한은 무제한적인 개인주의, 경쟁사회이다, 자연히 상대방의 제안이나 말에 대해 성급하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즉 제안의 내용이 비록 긍정적이라고 할지라도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하기 위해서는 ‘포커페이스’던가, 아니면 쌀쌀한 인상을 주고 볼일이다.
반면 북한은 집단주의 사회이다, 경쟁과 개인 능력의 돋보임보다는 사회구성원 전체의 단합이 더 중요하고 전체의 단합으로 유지되는 사회이다. 집단을 중시하다보니, 자칫 사회의 발전의 주요 동력인 개인의 창의성이 무시될 수 있으며, 관료주의의 폐해가 생길 소지가 크다.
북한은 그를 방지하기 위해서, 집단 구성원의 의견을 경청하며 그 누구라도 적극적인 의견을 낼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해온 듯하다. 우리는 흔히 북한이 ‘권력에 대한 맹종만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막상 북한에서 만난 접대원 등의 북한 사람들이 자기 감정과 의견을 스스럼없이 밝히는 씩씩함과 활달함에 놀라곤 한다.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물우물 하는 법이 별로 없다. 하나같이 주견이 강하고, 자기 의견을 굽힐 줄 모른다. 획일화라니? 천만에! 그건 북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북쪽 분들과 함께 부담 없는 한담을 나눌 때(회의 할 때 말고), 그분들이 서로 다른 의견으로 맹렬히 토론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런 장면이 벌어질 때마다 내가 “어라? 북은 초민주주의사회로군요?” 그러면 북 안내원들은 자기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 “‘저 동무는 원래 답답한 친구야, 현실을 융통성 있게 보지 못하는 탁상물림이지” 한다던가, “아니 저 동무야말로 사물의 본질을 뚫어보지 못하고 겉만 훑고 있다”든가, 자기 의견이 제일 올바르며 반대의 의견은 별로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박박 우겨대기 일쑤다.
그러면 그 사회가 어떻게 그렇게 일사불란하냐고? 그것은 아마도 격렬한 토론을 통해 그 집단의 결론이 내려지면 두말없이 따르는 풍토 때문일 터다. ‘의견’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풍토와 ‘의견’을 모두 수용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대립되는 의견을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의견을 다 종합하여, 가장 훌륭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의 주장이 상대방과 집단에 의해 긍정적으로 검토되었다는 것을 느낀 사람들은 설령, 그 의견이 다 수용되지 않더라도, 무척 행복해하며, 그 집단의 결정에 더 흔쾌히 따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이런 경험을 비추어 보더라도, 북은 의견개진에 대하여 무척 활달하고 씩씩할 수 있는 사회풍토인 듯하다.
반면에 남한사회의 풍토에 익숙한 우리들은 일단 표정만이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는 것 같으면 이건 100% 통과된 것이라는 착각을 할 법도 하다. 그러므로 나는 북 안내원이, 혹은 고위 간부가, ‘긍정적 검토’를 한다고 하면, 이렇게 통역을 한다.
‘마음은 잘 이해하나, 실현 불가능!’
내가 이런 나의 해석으로 도장을 쾅 찍어버리면, 북쪽 사람들은 섭섭하다며, 화를 내기도 한다.
“이경 총장 선생이 왜 우리들 마음을 몰라줍니까? 우리는 정말 긍정적으로 검토하거든요? 남쪽 분들이 우리 북쪽을 잘 모르니, 문제를 잘못 제기할 수 있겠지요, 설령 문제제기 내용이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그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좋은 마음과 고민이 반영되어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 마음을 잘 헤아려 보려 고민한단 말입니다.”
나도 절대 질수 없다.
“남쪽 분들의 주장과 요구가 마치 실현될 것 같은 환상을 주는 것은 더 문제란 말입니다. 댁들은 좋은 이야기만 하는데, 그러면 남쪽 분들은 그 옆에 있던 내가 그 일을 추진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고, 나만 원망하지 않습니까? 남쪽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댁들이 자기들 마음을 알아주는가 아닌가의 여부가 아니라. 자기의 요구가 실현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인데 결국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날 때, 당신들을 얼마나 욕하는지 알기나 합니까? 거짓말쟁이라고 말입니다. 꼭 그런 말을 들어야 합니까?”
이 입씨름은 아마도 ‘마음과 희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북한 안내원들과, 당장 실천적 방향을 구체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중요하다는 나의 입장의 충돌인지도 모른다. 또 어찌 보면 늘 실현가능한 협력방안을 만들어 교류를 이어가야 하는 내 처지와, 평양에서 남쪽이 고민하고 제기하여 만들어 오는 ‘제안’을 기다리는 처지의 차이로부터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이 글을 본 독자들은 북쪽의 입장이 내 주장보다 더 일리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역할은 남과 북을 연결시켜주는 것까지이며, 그 마음을 어떻게 소통하는가의 여부는 당사자들이 해결해나갈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통은 당사자들의 몫이라도, 자칫 남쪽 분들이 상처받을지도 몰라, 걱정하는 나의 마음도 헤아려주기 바란다.
위 기사를 읽어보면....
북한이 정말 일방적으로 국민들에게 지시만 하는 "독재정치" 체제인지
아닌지.....많이 헷갈리게 되는군요.
왜냐면 위 기사 내용에 의하면....북측사회는 아마도
밑으로부터의 치열한 토론과정을 거쳐 상부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듯 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