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쓰기 메모 입력 폼 내용 입력된 글자수 0/600 + 비밀 등록 상세 리스트 자동차 정비사 생활 5년차인 97년 큰애가 대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당시 내가 받던 봉급은 월 약 70 여만원인데 대학 등록금은 170 여만원 탄광에서 퇴직시 받은 퇴직금으로 모자라던 부분을 메우며 살았지만~~기숙사 비용에 책값 용돈까지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걸 아시는 분은 다 아시지요?~~면허는 있으나 운전은 자신없고 오토바이도 타본적이 없고 무언가 생활에 보탬이 되는것을 찾아 보려니 적당한게 마땅지 않더군요~~우연히 알게된 누구의 정보로 용역회사에 가서 일하면 용역비를 제하고 당일 돈을 받응수 있다는 것~~입학하던 3월부터 휴일이나 공휴일이면 새벽 다섯시 반에 용역회사 사무실로 향해 갑니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작성자 김환 강원산 작성시간 13.09.16 답글 0 인간이 살아가는 인생사에 '빛과 소금'같은 정말 중요한 얘기 보다 별볼일 없는한심한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더 많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인데요.고상하고 우아한 얘기로만 포장된 삶을 산다고 생각만 해도 근질거리고 스멀거리는자신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비록 상대방이 하는 말투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푸근한 마음으로 시선을 맞추는 아주 작은 관심과 성의를 보이면 그게 사람 사이에서열심히 강조하는 '소통'이라는 대목에 이르는 입구에 주춧돌 하나를 놓을수 있는 방법이라생각한다면~~널리 알려진 저명인사나 위대한 사상가가 아닌 주변의 사람과 편안하게 몇마디 말을 나눈수있는게 행복의 기초가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9.14 답글 0 소통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라는글을 어디에선가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즉 살아있는 인간은 사회라는 틀을 만들고 그 속에서 서로 어울려살아가는 것이지요.~~그 속에서 필요한 것은 대화입니다. 대화의 양이나 질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할수 있지요.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얘기가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라면 공동 관심을 가지고 열중할수 있으나별로 흥미를 끌지 못하는 내용인 경우 어쩌지요?~~별 흥미가 없는 진부한 이야기일지라도 작은 관심이나마 가지고들어 주는것 이게 상대방을 이해하는 작은 배려고 소통을 할수 있는 첫 걸음이 아닐까요??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9.14 답글 0 커다란 치악산 막걸리 통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눕니다.시계를 보니 어느덧 11시가 되어 갑니다. 퇴근후 6시 반부터 4시간 가량 이야기꽃을피운 겁니다. 나는 주로 듣습니다. 더러는 맞장구를 치며 리엑션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살아왔던 지난 이야기가 있고, 현재의 삶도 주제가 되며,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대한꿈과 포부에 대해서도 서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그려며 이런 말도 해주네요"아버지와 마주앉아 이런 얘기를 나누니 마음 편안하고 정말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드네요"잠자리에 들어 아들의 이야기를 조금 생각해 보며 행복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행복해 지기 위한 조건은?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9.14 답글 0 어제도 정말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버지 저예요""오우 아들~" "지금 대전 출장왔다 업무는 끝났고 원주로 가는 길인데 엄마도 안계신데 오늘 저녁 저랑 밖에서 술한잔 하실래요?" "와우 아들이 그런 초대를 해주면 나야 영광이지" 아내는 볼일이 있어 친정에 갔고 퇴근후 기다리는 아이와원주교 건너 돼지부속 가게로 갑니다. 갈매기 살이라나 특수부위5인분과 소주 두병에 공기밥까지 가볍게 처리 합니다.~~"여기 계산은 제가 할테니 아버지는 막걸리나 한병 사세요""아니 이곳 계산은 내가 할테니 막걸리는 니가 사라~~""저는 막걸리하고 안주거리 조금 사러 수퍼에 들려갈테니 먼저 가서 씻으세요""오케이"~~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9.14 답글 0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업이란 풀빵 장사도 해본 일이 없습니다. 과감성도 결단성도 부족하다 보니 그저 봉급쟁이 생활만을 유지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채탄광부 생활을 시작한지 4년이 지났을때 가장 탄을 잘 캐는 광부였고 자동차 정비사 생활 3년이 지났을때 가장 차를 잘 고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기도 했구요.~~현재 하고 있는 일은 아파트 관리소장을 하고 있는데 제 능력을 스스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일수도 있겠지만~~적지 않은 이들 앞에서 자신있게 하는 말 한마디는 "우리 나라에 존재하는 많은 직업중에서 아파트 관리소장이 제일 좋은 직업이다"라는 얘기를 당당하게 합니다. 기왕 말이 씨가 된다면 긍정의 씨앗을~~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9.13 답글 0 쉬지말고 감사 범사에 감사행복한 삶이 되겠지요. 작성자 에델바이스 작성시간 13.09.13 답글 0 대부분이 화물차인데 8톤 이하 차량은 엔진 보링에서 변속기 분해조립등,이고 그 이상되는 것은 탈부착 장비가 여의치 않아 보링은 전문 보링점에서 하고 나머지는 다 취급했지요.~~탄광에선 그곳대로 어렵고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차량 정비 역시 어려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더군요.~~하던일이 아닌 전혀 엉뚱한 일을 한다는게 만만치 않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힘 들었던게~~하부측 작업을 할때 작은 박스 하나깔고 포복 자세로 들어 가는데 덩치가 좀 크다보니 몸을 움직이다 슬쩍 부딪치는것 같아도~~상대가 철제인지라 제법 많은 곳이 터지고 피가 흘렀지요. 2급 정비사 취득후 3년 경력을 쌓아서 1급, 자동차 검사 자격증도 같은것 취득~~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9.05 답글 1 사실 저는 자동차의 '자'라는 글자만 알지 아무것도 모르니 정비기능사 2급 준비를 하였는데 낮에는 일하고 야간에 다니다 보니~~나와 나이가 비슷한 분이 1급을 준비 한다면서 오시더군요. 중간 휴식시간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그분은 우산동에 있는 모 업체의 수송과장이라는 직책이더군요.~~원주로 이사를 마친 며칠후 만난 그분이 혹시 "1급 정비공장"에서 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묻더군요.~~그러겠다고 한후 그곳에서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총 관리하는 차량은 약 130여대로 차종은 1호차(그랜져), 업무용차(소나타)와 1톤 포터에서 2.5톤, 4톤, 5톤, 톤, 11톤 풀카등 화물차가 주종이고, 탱크로리, 통근버스 등 제법 다양하지요~~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9.03 답글 0 '노가다'라는 곳에서 일하던 당시에 있었던 작은 이야기 한토막~~작은애는 6학년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담임 선생님도 바뀌고 학생들도 6반을 헤쳐 모여 시키다 6등분으로 나누니 5학년 때보다는 새로운 친구가 많았다지요~~신학년이니 이런 저런 조사를 하지요. 그중 하나가 아버지 직업이 무언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공무원, 상업, 회사원(광부)~~~ 표에 나와있는 직업군을 선생님이 외치면 해당되는 아이들은 해당 종목에 손을 드는 것이지요.~~조사가 끝나고 합계를 하니 하나가 부족하더럽니다. 이상한데...다시 합계를 하여도 마찬가지~~혹시 손 안든 사람 있나? 작은애가 손을 들었다지요.~왜? "저희 아버지는 막노동 하십니다." 그~~~려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9.02 답글 0 2개월 정도 지나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날은 더워 지는데 나이 먹은 사람이 같은 집에 있는게 불편하다는게 사장님 부모님들의 생각이라는 말에~~부득이 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나와 당시 신축중이던 영진 1차 아파트에서 흔히 말하는 '노가다'라는 작업을 했지요.~~입구에 있는 다리를 비롯하여 다리 전후의 옹벽 등 토목과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4월 말경부터 9월까지이니 ~~아마 그해 1년중 가장 무더웠던 시간을 태앙과의 한판 승부를 벌리며 지났습니다.~~물론 낮에는 그곳에서 야간에는 어김없이 자동차 정비학원에서 배움에 매진했구요~~ 9월이 되어 애들 2학기가 시작할 즘하여 원주로 이사를 나왔습니다.~~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8.30 답글 0 폭염도 공식적으로 해제되었네요.독서하기 좋은 계절이 찾아왔습니다.평안하세요. 작성자 에델바이스 작성시간 13.08.26 답글 0 3월 초순 학원은 개강을 했습니다. 새벽 네시에 일어나 동차라고 불리는 첫차를 타고 원주에 동착하면 여덟시 45분~~우산동에 가서 오전 세시간 강의를 듣고 오후 열차를 타고 다시 고한으로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나~~잠짜리와 일터를 소개 받았습니다. 영진 1차 아파트 조금 내려가 쌍용 주유소와 인접한 쌍용 타이어란 곳이지요~~그곳 사장님 부모님이 개운 현대 아파트 뒷부분 단독주택에 사셨는데 거기서 자고 아침에 사장님 댁에서 아침먹고 6시 퇴근하면 학원에서 열시까지~~자동차 정비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잠자는 시간이 반복으로 이어졌지요.~~그곳은 유조차, 탱크로리 등 대형차를 주로 상대하며 타이어 교환, 용접등 경정비를~~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8.26 답글 1 누구도 아는 사람 하나없는 원주라는 도시~~마음은 먹었지만 첫 단추를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막연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차라리 다니던 탄광에 가서 잘못되었다고 하며 재입사를 할까~~이런 저런 마음에 잠을 설치게 되더군요. 그냥 그자리에서 머리로 셈을 해보아야 안되겠다 싶어~~버스로 나왔습니다. 우산동 터미널에 내려 시장 방면으로 올라 가려고 시내버스 승강장으로 올라와 보니~~승강장 뒤편 건물의 4층인가 대우자동차 정비학원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더군요. 무작정 올라가~~질문을 했지요. 가장인데 아직 이사를 오려는 형편은 아니고 야간엔 학원에 주간엔 정비업소에 근무하면서 잠을 잘수 있는 곳이 있느냐고~~가능하답니다.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8.19 답글 0 자격증을 따던해 12월 춘천에 사는 T모씨가 주선을 하여 팔호광장이라던가 만났습니다. 무언가 좋은 내용이 있을런지 기대를 조금은 했지만~~그냥 서로 얼굴 구경 하는 정도에 그쳤지요. 지금은 협회라는 법인체도 있고 무언가 단체적인게 존재하며 다른이들에게 위엄 내지는 압력도 조금은 행사할수 있지만~~당시는 진짜 아무도 없었지요. 2년 정도 지난 92년 봄 근무하던 탄광에서 작은 사건 하나가 발생하였습니다.~~누구인가 책임을 져야할 일 물론 시말서 한장 정도면 마무리 될 터이지만 20여년이라는 시간이~~지겹기도 하고 끔찍하다는 생각도 들어 사직을 했습니다. 어디로 갈것인가? 춘천, 원주, 강릉, 세곳으로 압축한 결과 원주로~~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8.14 답글 0 오늘 말복춘천에서 송광호 선생님, 민성숙 의원님, 초희 선생님, 그리고 저말복을 뜻 깊게 보냈네요감사합니다. 건필하시고 자주 방문하여 주세요함께하지 못한 선생님들 늘 건강하시고 다음에 뵈어요 작성자 수필가 박현식 작성시간 13.08.12 답글 0 그들은 약자인척 학생들에 빌붙어 노력보다는 열매만 먹으려는 모습에 저와 비교가 되더랍니다.~~남자들은 참 좋은 면이 있지요. 2학년을 마치자 미련없이 휴학을 한겁니다. 몇달 쉬다 입대했고 26개월후 전역하고 몇개월 지나니~~3년이란 시간이 지나간거지요. 그때는 학생운동도 그전과는 제법 달라지고 전혀 아는 얼굴은 없는 복학생으로서 조용히 학업을 마치고~~졸업후 얼마지나 대기업에 취업하여 지금 열심히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전혀 내색않던 아이가 대기업 최종 합격을 하고 나서 그때 그런일이 있었노라고 얘기 하더군요.~~현명한 판단을 내린 애에게 고맙다 했고 애는 저한테 감사하다고 하는데 쑥스럽더군요~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8.06 답글 0 객지에 나가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연락도 상당히 어렵더군요.(휴대폰을 없고 호출기) 어쩌다 내려올때 얘기해 보면 실망시키는 일은 없으니 염려 놓으라는 말만~~데모에 적극 참여하며 소위 작전을 짜는데 큰애의 작전이 제법 빛을 발하던 어느날 우연히 문앞에서 선배들 얘기를 엿들었답니다.~~그놈이 쓸만하니 3학년엔 과대표, 4학년엔 공대학생회장, 졸업을 미루고 다음해엔 전교학생회장 감이라는 말~~당시 분위기로 회장이 되면 유치장에 한두번 정도는 드나들어야 하는 상황 그때 제얼굴이 떠오르더랍니다.~~약자라는 그들도 아버지 보다는 많이 배웠더랍니다. 학생운동이라는 미명아래 열심히 하다 전과자가 되면??과연 보람이 있을까?~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8.06 답글 0 이 자격증과 관계된 보너스 하나~~자격증 받은 7년후 큰애는 대학에 갑니다. 1학년에는 고등학교 다니던 후유중(?)이 조금이나마 남았던지 반액 장학금 정도는 타더니 2학년 올라간후 분위기가 묘해지더군요.~~제 엄마한테 전화하여 혹시 어디선가 온 연락에 주말에 대해 물으면 집에 왔다고 하라네요~~80년대부터 시작된 민주화 운동이란 기치아래 적지않은 대학생들이 피와 눈물을 흘렸지요.~~큰애가 입학했을때는 민주화라는 말보다는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 농민을 위해 젊음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제법 거룩한(?) 사상에 매료되었는지~~처음 변두리에서 어슬렁 거리더니 시간이 지나며 중심축으로 이동 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하지만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8.06 답글 0 한달 정도 기다려 4월 하순 서울신문에 합격자 발표가 났습니다. 전국에서 2,337명인가 그리고 강원도에서 39명이 합격을 하였지요~~ 찾아보니 제 수험번호가 보이는게 참 감격스럽더군요. 식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였는데 결과가 좋으니 보상의 의미로 가족함께 외식을 하기도 하였구요.~~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할까 끈기있게 하다보면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하지만 어느시기나 어느 조직에서건~~가진것을 지키겨는 기성세대가 있다면 새로움을 추구하는 개혁파가 존재하지요.~~아파트 관리의 "관"자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자격증이라는 것 하나 달랑 가졌다고 관리를 맡길수 없다는게 많은이의 의견~ 작성자 고질라 작성시간 13.08.05 답글 3 이전페이지 26 27 28 현재페이지 29 30 다음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