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終이 있는가? 없는가?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공 역시 구족이라 - 소태산>
이와 같은 하나의 원을 두고 여러분에게 다음의 질문을 하고자 한다.
시종始終이 있는가? 없는가?
만약 있다면 어디가 시작始이고, 어디가 끝終인가?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원에는 시종始終이 있다.(有) 그러나 원의 모든 곳이 시종始終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곧 시종始終은 없다.(無) 고로 시종始終은 하나고 유무有無는 하나다. 유무有無가 하나라는 것은 유무有無의 부정이 아니라 절대 긍정이다.
즉 있음의 절대 긍정은 없음이고, 없음의 절대 긍정은 있음이다.
원 하나를 두고 시종始終을 찾으라 하면 곧 시종始終은 없다(無)라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손가락으로 원의 아무 한군데를 찍어 원을 다시 그리면 처음 찍은 곳이 곧 원의 시종始終이 되니 이에 시종始終은 있다(有)가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원을 이루는 모든 점들이 손가락으로 찍힐 수 있음에 따라 원의 모두가 시종始終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종始終의 있음은 시종始終의 없음과 통한다. 이러한 세단계-(1) 시종始終은 없다. (2) 시종始終은 있다. (3) 시종始終은 없다.-에 있어서 (1)에서의 없음과 (3)에서의 없음은 개념 차이가 엄청나니 (1)의 없음은 절대적인 무無이지만 (3)의 없음은 있음을 태운(乘),유有와 동격이 되는 무無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종始終이 하나되는 순환에 있어서 無와 有의 관계는 無→ 有→ 無와 같은 시간적 흐름에 따른,
우주 생성론에 입각한 관계가 절대 아니다. 無와 有의 관계는 無와 有가 서로 공존하는, 서로가 서로를
태우는 '승乘'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까지 진리로 믿어왔던, 있음이 없음에서 비롯된다는
논리, 우주가 없음에서 창조된다는 논리, 음양陰陽은 태극太極에서 나오고 사상四象은 음양陰陽에서 나오고 오행五行은 사상四象에서 나온다는 논리는 우리의 착각에서 나왔다. 우주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일뿐 창조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 우리가 창조라 함은 없음을 등에 태운(乘) 있음을 절대 有로 착각하는 것이고, 소멸이라 함은 있음을 등에 태운(乘) 없음을 절대 無로 착각하는 것이다. 음양陰陽이 태극太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음양陰陽이 태극太極을 타는(乘) 것이고, 사상四象 또한 음양陰陽 위에 올라타는(乘) 것일 뿐 이것을 가리켜 사상四象이 음양陰陽에서 비롯되었다함은 큰 착각이다.
묻건데 부채를 휘두르면 바람이 나는데 바람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만약 부채에서 나온다면 부채 속에 언제부터 바람이 있었단 말인가?
만약 부채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 필경 바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부채에서 나온다 말할 수도 없고,
부채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만약 허虛에서 나온다고 하면
오히려 저 부채를 떠나서 허虛가 어떻게 저절로 바람을 나게 하는가?
내 생각으로는 그렇게 말할 것이 없을 것 같다.
부채가 바람을 몰아치지만 부채가 바람을 낳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태허太虛에 쉬고 있을 적에는
고요하고 맑고 맑아서 아지랑이, 먼지가 일어나는 것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부채를 휘두르기만 하면 바람이 바로 몰아친다.
바람은 기氣이다.
氣가 꽉차있음은 물이 계곡에 가득차 있는 것과 같으니
빈곳이 없는 것이다.
바람이 고요하고 잠잠할 때는 모이고 흩어지는 형체가 보이지 않으니
氣는 언제나 비어 있는 일이 있겠는가?
노자의 이른바 허虛하나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 나온다는 것이 이것이다.
부채를 휘두르자마자 밀리고 쫓기어 앗아가서 氣는 물결 진동하듯
바람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감동적인 글은 우리나라 기일원론氣一元論의 대표 인물인 화담 서경덕 선생이 김안국이라는 사람이 부채를 주심에 감사하면서 쓴 시詩이다. 화담 선생은 우주 자연이 오직 氣 하나로써 차여 있음을 말하면서 느낄 수 있는(有) 바람 또한 氣이나 바람이 일기 이전에 잠잠함(無)도 氣이니 이러한 氣는 虛(절대 無)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바람은 부채라고 하는 氣의 있음(有)과 잠잠한 공간인 氣의 없음(無)이 하나 될 때에 일어나지 만약 부채가 절대적인 有, 빈 공간이 절대적인 無라면 바람은 일 수 없다. 이와같이 우주 자연의 모든 변화는 유무有無가 서로를 탐(乘)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이처럼 有와 無가 서로 탐은 오직 氣로써 가능하다.((나의 '기철학氣哲學' 제3단계)) 즉 있음은 기합氣合이요, 없음은 기산氣散이
니 氣 하나의 산합散合을 통해 有와 無가 하나되어 우주 자연이 돌고 도는 바 이러한 나의 기철학氣哲學은 장횡거 선생의 말에도 잘 나타나 있다.
氣가 취합할 때에는 그것이 형체가 있어 볼 수 있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氣가 분산 될 때에는 그것은
형체가 없어 볼 수 없는 것으로 바뀐다. 氣의 취합은 일시적인 형체에 불과하고 氣의 분산은 태허太虛로
의 복귀에 불과하니 어찌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성급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단락을 마침에 앞서 소동파의 시時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만약 가야금에 소리가 있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갑중에 있을 때에 스스로 울지 못하고
만약 소리가 가야금 치는 손가락 끝에 있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너의 손가락 끝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