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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자료

<손영기> 길을 길이라 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다

작성자작약|작성시간12.06.16|조회수51 목록 댓글 2

길을 길이라 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다

 

 

나는 <도덕경道德經> 첫 구절에 우리가 갈구해 온 문제들을 푸는 열쇠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어느 책, 어느 누구도 나의 갈등을 시원스레 풀어주지 못하는가? 이 책을 보아도

답답. 저 책을 보아도 답답. 이 도사道士에게 물으면 이렇게. 저 도사道士에게 물으면 저렇게. 배낭여행이다 아르바이트다 해서 인생의 황금기를 즐겁게 보내는 우리 또래의 대학생들과 달리 우리 한의대생들은 방학만 되면 더욱 열심히다. 누구는 유명한 도사道士 밑에서 침 배우고, 누구는 절에서 왠종일 책만 파고 등등... 기타 학생들도 막연한 불안감에 수십권씩 책을 등에 지고 집과 도서관 사이를 서성인다. 그러나 개강하면 서로 똑같은 소리들을 한다.

 

요번 방학도 완전 꽝이야. 죽어라 공부했는데 결국 하나도 모르겠더군. 뭔가 잡힐 것 같기도 한데...

야! 너희들 중에 道士나 책 소개해 줄 사람 없냐? 시원스레 길다운 길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나 책

말이야.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길을 길이라 하면 이미 늘 그러한 길이 아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어떠한 책도 길을 제시할 수

없다. 만약 어느 도사道士나 책이 "바로 이것이 참된 길이다."라고 한다면 이미 그것은 길이 아닌 것이다.

 

만약 내가 강의실에서 친구들에게 출입문을 향해 가보라 하면 백이면 백 모두 다른 길로 간다. 어느

누구도 결코 같은 위치의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들 출입문만 바라보며 걸을 뿐

자신의 발자국엔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신경 쓰는 사람은 출입문까지 제대로 못가게 되어 있는

데 오직 앞사람의 발자국만 똑같이 밟으려 애쓸뿐 출입문이 진정 어디에 있는지 못 보기 때문이다.

 

앞사람의 발자국을 똑같이 밟다가 운좋게 출입문을 나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곧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는 발자취를 찾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러면 그는 주저 앉아 출입문을 향해 당당히 걸어갈

사람, 자신이 똑같이 밟으려는 발자취를 남겨 줄 사람, "이것이 길이다."하고 제시할 사람을 목타게

기다린다. 이렇게 되면 그는 이미 출입문을 잃어 버린 것이다. 그는 오직 출입문보다 앞선 이의 희미한

발자국을 찾느라 모든 정력을 낭비할 것이다. 그리곤 이렇게 외친다.

 

"평생 책속에서 연구하고, 도사道士들을 만나 한수 배워도 알 수 없는 한의학韓醫學.

이처럼 비과학적非科學的이고 미신적迷信的인 한의학韓醫學에 낭비한 내 인생을 돌려달란 말이야!!!"

 

그래도 이 사람은 양심적이다. 앞선 이의 발자국을 운좋게 두세번 찾아 밟고선 마치 출입문을 통과한 양 "자 나를 따르라! 바로 이것이 참된 길이다."라고 허풍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더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설치는 통에 우리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더 헷깔릴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더 이상 길을 찾지 말고 오로지 출입문만을 똑바로 보는 거야. 출입문만 제대로 보고 힘차게

전진한다면 언젠가 문에 도달하겠지. 우리가 그토록 방황하며 갈구했던 한의학韓醫學의 문 말이야. 그리곤 뒤돌아보며 이렇게 이야기 하겠지.

 

"아! 이것이 바로 나의 길이였구나. 어느 누구도, 어떠한 책도 제시 못한 나만의 길이었구나!!"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그렇다. 길이란 남들이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직접 디디며 걷고 있는 나의 발자취이다. 따라서 나의 길이 직선이던, 지그재그던, 곡선이던 그것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출입문을 바라보며 열심히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자신있는 목소리에 누군가 묻는다.

 

"그렇다면 그 출입문은 어디에 있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인데 말이야. 마치 너는 그

출입문을 찾은 것처럼 떠벌리는데 네가 그렇게 자신있다면 나에게도 그 문이 어디에 있는지 가리켜

달라구."

 

 

나는 가슴이 뜨끔함을 느낀다. 사실 내 주위에도 짙은 안개가 떡하니 자리잡아 출입문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순간 주위에서 날아오는 비난과 조소. 그러나 내 손엔 하나의 나침판이 있다.

짙은 안개를 뚫고 문까지 안내할 나침판, 경經이라 불리우는 나침판 말이다. 이미 우리에겐 성능좋은

나침판이 하나씩 있다. 예과때 조금 만지작거리다가 도저히 알 수 없는 난해함에 질려 방구석 어딘가

에 쳐박아 놓은, 바로 그 <황제내경黃帝內經>이다. 우리가 이 험한 안개를 헤치고 자신있게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내경內經> 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동의보감東醫寶鑑>도, <의학입문醫學入門>도, <경악전서景岳全書>도,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도 결코 나침판이 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물며 양방洋方의 커닝햄, 씨바, 마리브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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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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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작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6.16 예전에 오쇼가 깨달음의 길을 '길없는 길' 이라고 묘사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 작성자작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6.16 저기서 손영기님은 황제내경을 강조하셨는데 저것 또한 손영기님의 개인 의견이니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참고로 하여 각자의 나침반은 스스로 찾아보면 더 좋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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