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31
“옛 선배들의 처방은 완벽하므로 일체 가감加減이 필요 없다.” “현학적인 말만 하지 마시고 사상의학 공부 좀 하시죠.” 이상은 후배를 통해 들은 어떤 한의사의 말씀과 익명의 한의대생에게서 받은 본인에 대한 비판이다. 두 이름 모를 한의사와 한의대생의 이야기는 지신知新을 생각케 한다.
진정 지신知新은 우주宇宙에 따라야 하는 법. 우宇(공간)와 주宙(시간)에 맞추어 온고溫故를 응용해야 올바른 지신知新이 가능하다. 비컨대 같은 한국어라도 시대에 따라 표현이 다름은 주宙에 의한 변화이고, 지역에 따른 사투리의 차이는 우宇에 의한 변화이니 한의학 역시 온고溫故한 바를 우주宇宙로써 재해석하여 지신知新해야 한다. 삼국시대 일상언어가 현대에 통용될 수 없음은 당연히 여기면서 어찌 한의학에서는 옛 처방 그대로를 고집하고 사상의학만을 강조하는가. 이는 온고溫故만을 내세워 주宙에 따른 지신知新을 모르고 하는 말들이다. 속어나 유행어는 말할 것도 없고 표준어마저 시대 흐름에 의해 변하듯이 한의학도 시대에 맞추어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결대맥結代脈이 더 이상 자감초탕이나 과루해백탕으론 해결되지 않으며 체질에 따라 음식을 가리는 것도 순수한 의미를 잃은 지 이미 오래다. 오히려 잘 먹어서 병病인 이 시대엔 해토방解土方에 과루, 해백을 응용해서 천원天圓을 돌려야 결대맥結代脈이 다스려지고, 모든 먹거리가 오염된 이 시대엔 체질감별에 따른 음식분류 이전에 오염되지 않는 먹거리부터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영양과잉’과 ‘먹거리오염’이라는 시대적인 주宙의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우리 한의학이 지신知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의계는 못 먹던 시절에 강조된 보신補身과 무공해 상태에서나 의미 있는 음식분류에 매달리고 있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고어古語를 가지고 현 생활에서 쓰려고 억지를 부리기에 한의학은 치료의학으로서의 대접을 못 받고 있다. 고어古語는 온고溫故의 대상으로서 연구되어야 할 중대한 가치가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 시대의 언어言語를 윤택하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입문, 경악, 보감 등을 통해 선배들의 목걸이를 이해하는 것도 이해 그 자체의 목적보다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관觀을 세워 주宙에 맞는 한의학을 주창함에 있다.
본인이 해토파解土派를 주창하며 토울론土鬱論을 제시함에 있어서 시대의학時代醫學임을 강조하는 것은 주宙를 통한 재해석, 즉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모든 의학醫學이 현실에 적합한 시대의학時代醫學이 되어야 함은 당연할진대 유독 본인이 ‘시대의학時代醫學’이라는 용어로 토울론土鬱論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현 한의계의 상황은... 씁쓸하다. <방약합편><동의보감>은 말할 것도 없고 사상의학을 포함한 역대 의론醫論들은 온고溫故의 과정을 통해 주宙에 따라 지신知新되어야 한다. 본초가감本草加減의 연구 없이 옛 처방집만 뒤적거리면 우리 한의학은 시대감각을 잃은 조선시대 학문 취급만 받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