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여행[경기 시흥] 류자신선생 묘

작성자광나루|작성시간10.03.29|조회수422 목록 댓글 0

류자신선생 묘 및 신도비(시흥 향토유적 4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류자신선생(광해군의 장인) 묘역 전경

류자신(柳自新, 1541~1612)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지언(止彦),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명종 19년(1564)에 진사시에 오른 후 김포현령, 광주목사, 한성부 판윤, 개성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 마을 초입 우측에 위치한 신도비 모습

▲ 묘역 입구의 재실 모습과 뒷편 산등성이에 묘역이 보입니다. 묘역은 우측으로 돌아서 올라갑니다.

셋째 딸이 광해군 비(光海君妃)가 되자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에 진봉되었다. 묘역은 옥녀국부형(玉女局部形)으로 선생의 묘지문에 따르면 시흥 지방의 팔명당(八明堂)에 속한다.

▲ 최근에 묘역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 류자신선생 묘역 아래에는 묘비없는 봉분이 3기 있습니다.

묘역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재실도 보이고...

묘의 배치는 특이하게도 류잠(柳潛 1509~1576 공조판서. 류자신의 부친)ㆍ류덕신(柳德新, 1548~1617 돈령부도정. 류잠의 둘째아들)ㆍ류희갱(柳希鏗, 진사. 류자신의 큰 아들)ㆍ류자신의 묘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류자신 선생과 봉원부부인(蓬原府夫人) 동래정씨 합장 묘역 전경

묘역 내에 배치되어 있는 석물들은 39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거의 마멸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어 훌륭한 문화재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다른 묘역에 비해 석물 배치에 큰 차이는 없으나 상석 옆 양쪽에 향로석 이외에 또 다른 받침돌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 류자신선생 묘

▲ 묘역내 석물 모습

신도비는 묘역에서 서쪽으로 약 400m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이 비는 본래 현 위치에서 동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었던 것인데, 자손의 번성을 위하여 광복 직후에 당시 돈 8만원의 거금을 들여 이전하였다고 한다. 이수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형상인데, 용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 있는 조각이다.

▲ 류자신선생 묘역에서 바라 본 상단 묘역군

▲ 류자신선생 묘역 뒤에서 바라 본 모습

광해군 9년(1617)에 세워진 이 신도비의 비문은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류근(柳根)이 짓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김상용(金尙容)이 전자하였으며, 글씨는 병조참의(兵曹參議) 오정(吳靖)이 썼다. 그리고 신도비의 규모는 2.07m×1.14m×35cm에 이른다.

▲ 류자신선생 묘역 뒤로 3기의 묘가 있습니다.

▲ 류자신 묘역 바로 뒤에 있는 큰 아들 류희갱(柳希鏗) 묘

▲ 류희갱의 묘역 뒤에는 류자신 선생의 동생인 류덕신(柳德新)의 묘가 부후 묘(당진한씨 - 唐津韓氏)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 묘역 상단에는 류자신선생 부모인 류잠(柳潛)과 하동정씨(河東鄭氏)의 합장 묘역입니다.

묘역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떨어져 있는 재실(영모재)은 고종 22년(1885)에 건립되었고 안채는 튼 ㅁ자형으로 고종 6년(1869) 건립되었는데, 시흥관내에 현존하는 가옥으로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생각된다.

▲ 류자신선생 부모 묘역 뒤에서 내려다 본 모습

류자신선생 묘역 위치도

 좌측 하단이 재실이고 그 위로 류자신선생 묘역군이 있으며, 항공 사진이 오래된 것 같습니다. 최근에 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습니다.

소재지 : 경기 시흥시 능곡동 산32                                                          우측 하단의 화살표 지점에 류자신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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