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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계율과 율법, 그리고 불성과 성령■

작성자진영|작성시간18.03.31|조회수283 목록 댓글 0

계율과 율법, 그리고 불성과 성령

우선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계율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몸[身]과 입[口]과뜻[意]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일체의 악을방지하기 위하여 지켜야 할 행위규범.

■율법(律法, Torah)이란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하느님 백성의 생활과 행위에 관한 하느님의 명령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 모든 이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도덕적, 종교적, 법률적 명령을 말한다.

상기와 같은 표현과 설명은 인간 기준의 관점에서 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사는동안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하는 것으로 유치원과 초등교육을 거치면서 이미 익히 배워 잘 알고있다. 예를 들면 바른생활, 협동심,사랑, 성실, 진실, 친절, 품행단정, 말은 이쁘게, 생각과 행동을 올바르게 등등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다. 즉 팔정도와 십계명에 있는 내용들이다.

그것들을 위 언급된 사전적 의미의 설명과 비교해보면 다분히 권위적, 고차원적으로 상당히 엄숙한 느낌이 든다.

항상 자연기준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올바른 설명과 지극히 간단하고 명료한 답을 낼 수있다. 단지 계율이나 율법의 단어 자체의 의미만을 가지고 인간기준 관점에서 본래 배운대로, 즉 이론적인 지식에 의해서만 배우거나 가르친다면, 본래 불경과 성경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핵심에 접근하기 무척 힘들다. 아니, 거의 불가능이다.

계율이나 율법의 설명이나 표현을 사랑으로 까지 나타낼수 있다면 많이 깨우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과 부처님 하느님과 전부 하나로 연결 되어 있어, 결국 아, "내가 문제로구나, 혹은 내가 문제였구나", 그래서 그것을 고쳐나가는 법을 알게되고, 보여줄 수 있게 되면서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게 될 때는 크게 깨달아 가는 것으로 표현해 볼 수있다.

즉 불성화와 성령화의 이치를 알고 몸으로 터득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게 불성(성령)의 체득이며, 자기화와 실용화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며, 그게 부처님, 하느님을 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부 자기 착 각과 허상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지극히 간단, 명료하다. 계율과 율법의 본질은 마음이며, 그것은 누가 만들어 주는것이 아니다.
반성, 다짐, 감사 기도(명상, 좌선, 참선 등)를 통해, 부처님, 하느님과의 약속으로 일상생활에서 사는동안 끊임없이 스스로 만들고 지키는 것이다. 그게 핵심이며, 전부이며, 길이고 생명이고 진리이며, 알파고 오메가다.

이것을 알아차리고 체득이 되면 각자의 역량에 따라 무한대로 상황과 필요에따라 설명과 표현이 가능해진다.

그때가 되면, 사는 게 이렇게도 되는구나, 이런 일도 있구나, 감동과 감탄을 거듭하면서 정말 진실하게 감사한 마음이 절로 터져나온다.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달음이란 단어 자체에 얽매여 있으며, 너무 고차원적으로 너무 심오하게 시작한다.

알면 손바닥 뒤집기나 손 짚고 헤엄치기가 되나,
모르면, 아무리 최선을 다해 한평생 열심히 노력하고 장황한 설명을 해도 인간기준의 관점에서는 핵심과 실체에 접근하기란 불가능이다.

모든 경전은 인간이 잘 살도록 하는 것에 맞추어져야 한다. 즉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닌 게 된다. 즉 지극히 실용적이며, 현실적이어서 내가 사는동안 써 먹을 수 있어야 하며, 결코 기복적, 미신적, 추상적, 신비적이 되지 않아야 한다.

소통할 수없는 말이나 어려운 문자 또는 불편한 투의 현실감없는 구시대의 용어들은 사는 동안 현대인들을 위한 인간삶을 증진하는것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게 된다.

●아래 도표는 수행의 바른길 1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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