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법문 037-2/퇴옹 성철
5. 유식중도설(唯識中道說)02
“자존(慈尊)이
이것에 의지하여 두 게송을 말하셨다.
'허망한 분별이 있으나
여기에는 둘이 모두 없으며,
이 가운데는
오직 공만이 있으며
저것에도 또한 이것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일체법은 공도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니며,
있고 없음과 함께 있음으로
이것이 곧
중도에 계합하는 것이라 하였느니라.”
慈尊이 依此說二頌言호대
虛妄分別有이나 於此二都無라
此中唯有空하며 於彼亦有此하니
故說一切法은 非空非不空이며
有無及有故로 是則契中道니라
(成唯識論 ;大正藏 31, p. 39 中)
이 구절은[성유식론]의
앞 부문 본문에
계속해서 설해지는 것인데
편의상 이렇게 나눈 것입니다.
'자존(慈尊)'은
미륵보살을 말합니다.
'이것에 의지하여'
에서 이것은
앞에서 해설한
비유비무(非有非無)
의 중도를 말합니다.
허망분별이 있는데
여기에는 능(能)과 소(所),
즉 주체와 객체
두 가지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허망분별이란
객진번뇌, 망상 등을 말하는데,
허망한 분별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있어서는 공하기 때문에
능. 소(能所) 다 공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이 가운데에는 공만이 있고,
저것에도 또한 이것이 있다'
고 하는 데에서
'이 가운데'에서는 허망분별이고'
저것'은 공을 말합니다.
즉 허망분별이 있는 이 가운데
오로지 공(空)이 있으며
그 공 속에 또한
분별의 유(有)가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공 속에 또한
분별의 유(有)가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공이 즉 유이고
유가 즉 공이다
라는 사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체만법이 공도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니며,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며,
무이면서 유이므로
중도에 계합되는 것입니다.
이 게송은 중요하기 때문에
이하에서 이 게송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한
술기의 해석을
계속 덧붙여 설명하겠습니다.
“술기에 말하기를,
허망분별이 있다는 것은,
곧 삼계에
허망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요.”
述曰虛妄分別有者는
卽有三界虛妄心也요
(大正藏 43, p. 490 上)
허망분별은
삼계에서 허망하게
분별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삼계육도(三界六道)
에서 윤회할 때에
허망하게 분별하는 망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둘이 모두 없다는 것은,
능취와 소취의 둘이나,
혹은 아와 법의 둘이
허망한 마음 위에는 없음을 말함이다.”
於此二都無者는 謂能取所取二나
或我法二가 於妄心之上에 都無라.
능취나 소취,
또는 자아나 법 할 것 없이
모두가 허망한 마음 가운데서
능취와 소취가 없게 되면,
이 마음은
생멸망견(生滅妄見)이 아니고
진공묘유(眞空妙有)가 됩니다.
진공묘유라는 것은
유는 유인데 진공의 유이고,
공은 공인데 묘유의 공을 말합니다.
“이 가운데 오직 공만 있다는 것은 ,
이 허망한 마음 가운데
오직 진여가 있다고 하는 것이니,
진여는 공성이다.
공에 의지하여 나타나므로
앞의 장행에서
공과 식이 있다고 말한 것도
또한 이를 가지고 알 것이다.
오직(唯)이란 결정하는 뜻이니,
의타기성 중에
결정코 오직 공이 있기 때문이니라.”
此中에 唯有空者는
謂此妄心中에 唯有眞如이니
眞如는 是空性이라.
依空所願故로
前長行에 言空識是有도
亦惟此知니라. . . .
唯(者)는 是定義니
以依他中에 決定唯有空故이니라.
허망한 마음 가운데
진여가 있다고 하는 것은
'무명의 실성이 곧 불성'
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무명 즉
분별하는 망심(妄心)자체가
근본적으로 공하기 때문에,
무명 이대로가 불성이고,
허망한 분별망심
이대로가 진여입니다.
그러므로
진여 밖에 망심없고
망심 밖에 진여가 없는 것입니다.
“저것에도 이것이 있다는 것에서 ,
저것이란 저 공성(空性)중이요,
또한 이것이 있다함은
허망한 분별이 있다는 것을 말함이니
곧 허망분별은 속제니라.
허망한 분별에 공이 있다는 것은
곧 속제 가운데
진제공이 있다는 것이고,
곧 진제공 가운데
또한 분별이 있다는 것이니,
바로 진제 중에
또한 속제가 있는 것이니라.
이제(二諦)는
반드시 서로 있고 없어서
하나가 없을 때는
또한 둘도 없으므로
서로 형태가 있느니라.”
於彼亦有此者는 彼空性中이요
亦有此者는 謂有妄分別이라
卽虛妄分別은 是俗諦니라
妄分別有空者는
卽俗諦中에 有眞諦空하고
卽眞諦空中에 亦有妄分別이니
卽眞中에 亦有俗諦라.
二諦必相有無하여
一無時亦無二故로 相形有也니라.
저것에도 이것이 있다는 것은
공성(空性)가운데에
허망한 분별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허망한 분별심은 속제(俗諦)이고
공성은 진제(眞諦)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속제 가운데 진제가 있는 것은
색즉시공이요,
진제 가운데 속제가 있는 것은
공즉시색이니
이것은 진공묘유의 내용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체법을 설한다는 것은,
유위와 무위를 말함이다.
이 둘이 없음에 의지하여
이를 공이라 이름 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일체법을 다 포섭한다.
유위는 곧 허망한 분별이요
무위는 곧 공성이니,
반야경 중에서
일체법이라고 설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다만
삼계의 마음과
마음 법을 밝혔기 때문에
오직 망심만을 말하니 이는 속제요,
망심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니라.”
故說一切法者는 謂有爲無爲라
依此二無하여 名之爲空이라
故此二는 攝法盡이라.
有爲卽妄分別이요 無爲卽空性이니
謂般若經中에 說一切法이라
此中에 但明三界心心法故로
唯言妄心이니
是俗諦요 非無不妄心이니라.
'둘이 없다'라는 것은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이 없다는 뜻이고,
이 유위와 무위의
'둘이 없음을 의지한다. '는 것은
공을 가지고 근본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유위법과 무위법이 둘은
일체만법을 다 거두어 들이는데,
유위라는 것은
허망한 분별을 말하는 것으로
속제(俗諦)이고,
무위는 공성(空性)으로서
진제(眞諦)인데,
이것을 반야경에서는
일체법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는
다만 삼계(三界)의 마음과
마음법(心心法)을 밝혔기 때문에
망심은 속제로서,
망심 아닌것(不妄心)
즉 무루법(無漏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