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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진짜 개사기 포지션 그자체였던 국가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6.08.04|조회수4,995 목록 댓글 4

출처: https://www.fmkorea.com/10163676996

 

진짜 방장 사기맵

 

 

아프리카에서 나온 인류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에 와드를 박는다

 

 

그러나 이 때의 선택으로 후손들의 운명이 갈리니

 

개똥땅 가챠에 걸리면 진짜 흙퍼먹고 살아야 했고(마야)

 

 

개꿀땅에 당첨되면 쉬었음 청년이어도 풍족하게 살았다(프랑스)

 

근데 한반도에서도 이런 축복받은 지형이 있으니

 

 

 

 

 

 

 

 



바로 소백산맥 밑의 경주 분지가 바로 그 주인공!

 

지금보면 그냥 유적 원툴 도시 아님??

 

 

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시계를 되돌려

 

2천년 전으로 향하면 이보다 꿀땅이 없을 정도

 

 

그리고 물론 운빨이 좀 많이 있긴 했지만

 

이 지형 덕분에 후발주자였던 신라가 통일 역량을 보여주기도 했다

 

 

 

 

 

 

 

 

 

 

 

 

 

 

1. 생각보다 깡 산출량이 좋음

 

 

 

 



자세한 건  의외로 고대에 한강만큼 개사기 땅이었던 곳 을 참고하면 편하다

엥 무슨 분지가 평야보다 산출량이 많이 나옴???

 

이라고 물어본다면 합당한 질문이다

 

물론 평야가 산출량 측면에서 분지보다 많이 나오긴 한다

 

근데 2천년 전에는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평야들은

 

바다였거나 혹은 습지, 뻘밭이 대부분이었고

 

지금의 평야는 간척 or 강의 퇴적 작용으로 후대에 완성된 거에 가깝다

 

 


가령 한반도 평야의 대표격인 호남평야의 경우

 

이 때는 당연히 바다 or 갯벌이었고

 

 

심지어 바닷물이 백제 최후의 수도인 사비성(부여)

 

인근까지 들어왔을 정도

 

 

 

 

 

 

 

 

 

 

 

 

 



김해평야의 경우는 더 황당한데

 

바닷물이 무려 밀양 앞까지 들어왔을 정도고

 

 

지금은 내륙인 창녕 코앞에도

 

바닷물 or 깊은 강이 들어왔을 정도였다

 

 

 

 

 

 

 

 

 

 

 



그러기에 당시에는 해안가에 접한 평야보다는

 

오히려 내륙 쪽의 분지가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경주 분지의 경우에는 바닷물이 경주를 가로지르는

 

형산강 하류까지 들어오긴 했지만

 

 

경주 분지 자체까지는 들어오지 않아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2. 싱가포르급 위치선정

 

 


원삼국시대(삼국시대 정립전당시 도시국가 위치 비정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소백산맥 이남에 경주 분지만 분지가 아니고

 

 

주변에 여러 분지들과 해안 평야들이 혼재에 있다는 것

 

특히 경주 바로 위의 읍즙벌국(포항)

 

 

남부의 우시산국(울산), 거칠산국(부산)

 

서부의 다벌국(대구), 비지국(창녕)처럼

 

 

경주 근처의 분지 or 해안가에는 생산력을 통한

 

나름 짱짱한 정치체들이 존재하던 상황

 

 

 

 

 

 

 

 



그러나 이들 도시국가와 달리 경주분지에 있던 사로국

 

압도적으로 유리한 부분이 있으니

 

 

바로 사실상 경상도의 말라카 해협 위치 급의

 

위치선정으로 단물을 아주 쪽쪽 빨아먹었다는 것

 

 

 

 

 

 

 

 

 



일단 영남 동부 해안에서 영남 내륙으로 가기 위해선

 

무조건 경주 분지를 통과해야했다

 

 

반대로 낙동강 중상류 영남 내륙에선 배로는 낙동강으로

 

내려갈 수 있긴 했지만

 

 

육로로는 무조건 경주 분지를 통과해야 당시 교역의 중심지인

 

김해 ~ 부산 일대인 영남 동부 해안으로 갈 수 있었다

 

 

 

 

 

 

 

 

 

 

 


낄낄 그냥가시려고요?

 

 

즉 경주 분지는 영남 해안가에서는 내륙으로

 

영남 내륙에선 해안가로 가는 물자의 집산지였고

 

 

심지어 경주 바로 위의 포항 대부분은 바다라서

동해안 교역루트와 남해안을 연결할 수도 있었기에

 

 

그러기에 경주분지의 사로국

 

여기서 중개무역으로 진짜 꿀을 쪽쪽 ㅈ나 빤다

 

 

 

 

 

 

 

 

 

 





근데 왐마 이번에는 경주 분지에서 까지 발견된다

 

물론 금광 이런 건 아니고 물을 걸러내 출토하는

 

 

구상 사금이었지만, 진짜 천년 동안 미친 듯이 긁어냈는데도

 

아직도 형산강에서 사금이 나올 정도이니

 

 

당시 경주 분지의 형산강에선 상당한 양의 사금이

 

정제되어서 먹고 살자 장사하자에 부스트를 달았다

 

 

 

 

 

 

 

 

 

 

 

당연히 장사도 잘되고 농사도 꽤 잘되니

 

이에 당연히 인구도 이쪽으로 몰리기 시작한다

 

 

특히 삼국지 시대인 후한 영제 시기에

 

대규모 난민들이 한반도로 유입되는데

 

 

이 때 사로국(경주분지)에도 수많은 유민들이 이주해서

 

실제 이 시기 경주의 무덤 용적이 대단히 커졌을 정도

 

 

= 무덤 주인들의 경제력, 정치력이 이전보다 상승

 

 

 

 

 

 

 

 

 

 

 



여기에 경주와 울산은 걍 회랑으로 이어져 있기에

 

사로국은 어느 정도 경주 분지 전체를 먹은 시점부터

 

 

적극적으로 남쪽의 우시산국(울산)을 건드렸고

 

그 결과 그곳의 달천 철광을 먹어 고품질의 철강석을 확보한다

 

 

그리고 고고학적 조사에 따르면

 

처음에는 철광석을 영남 해안 가야계 도시국가에게 팔았지만

 

 

3세기 무렵에는 생산-유통이 통일되며 

 

공산품을 찍어내는 수준까지 발전한다

 

 

 

 

 

 

 

 

 

 



이를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게 바로 석탈해 설화

 

설화 상 대장장이로 묘사되는데

 

 

실제로 석씨 집단이 경주에 나타난 직후

 

신라의 야금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앞에 설명한 유이민의 유입으로 인한 기술 발전으로 보이며

 

이 시기부터 사로국은 철광석이 아닌 철제 공구, 무기를 수출할 정도

 

 

 

 

 

 

 

 

 

 

 




그리고 여기서 경주의 지정학적 개사기점이 또 한번 빛을 발한다

 

경주에서 포항, 울산은 회랑으로 연결된 수준이고

 

 

고개 하나만 넘으면 바로 경산 -> 대구로 이어지며

 

청도는 산과 산 사이에 있는 작은 길이긴 하지만

 

 

적어도 군대가 움직일 수 있는 규모의 평야이고

 

이 길을 따라 창녕과 합천까지 갈 수 있을 정도였으며

 

 

대구, 창녕까지만 가면 낙동강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가능!

 

즉 경주를 중심으로 하면 확장성이 말이 안될 정도로 좋았다

 

 

 

 

 

 

 

 



 


그러기에 이후 체급을 어느 정도 키운 사로국은

 

달천 광산 뿐만 아니라 여러 광산과 무역 거점을 차지하기로 결정

 

 

소규모 정찰대를 보내 전진기지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4세기까지 소백산맥 이남, 낙동강 이북, 낙동강 동쪽

 

 

영역 대부분을 집어 삼키는 데 성공한다

 

다만 그래도 이 시점 경주 인구는 고작 3만 5천명 수준(...)

 

 

 

 

 

 

 

 

 



이 시점에서 이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근데 그럼 서울을 먹은 백제가 젤 사기 아님?

 

 

말 그대로 분지 지형이고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방면으로

 

모두 확장 할 수 있는 천혜의 개꿀땅이잖아?!"

 

 

라며 경주보다 더 상위호환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성이 가지지 못한 경주의 가장 큰 장점이 들어나니...

 

 

 

 

 

 

 

 

 

 

 

 

 

 

 

3. 코리안 아프가니스탄

 

 

 



한반도 통일왕조 시점에서는 당연히 서울

 

수도로서 벼려진 땅이다


한반도의 중심으로서 말 그대로 교통의 요지 그자체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서울로 들어올 수 있는 길도 많다는 뜻

 

 

당장 개성-파주-고양으로 연결된 축선과

 

연천을 통한 남양주-구리 or 양주-의정부로 들어올 수 있으며

 

 

남쪽 역시 경기광주, 수원을 통해 입갤 할 수 있는 위치다

 

 

 

 

 

 

 

 

 

 

 



그러기에 백제가 최절정기에 달했을 때도

 

생각보다 한성은 꽤나 취약한 상태였는데

 

 

당장 광개토대왕이 황해도를 거쳐 한성 코앞까지 왔고

 

장수왕은 연천을 기점으로 아차산으로 내려와 개로왕의 목을 땄을 정도

 

 

이후 수도가 개경 ~ 서울이었던 고려, 조선 역시

 

전시에는 서울에서 항전하지 않고 방어가 더 용이한 지역으로 튀었을 정도

 

 

 

 

 

 

 

 

 

 

 

 


진짜 게임 좆같이 하네가 저절로 나오는 지형

 

 

자 그렇다면 경주 분지를 봐보자

 

걍 윗짤로 요약이 가능한 수준이다

 

 

진짜 공격자 입장에서 이걸 뚫으라고?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혐성이 차오르는 지형 그자체

 

 

 

 

 

 

 

 

 

 

 

 



일단 북쪽에서 신라로 대규모 군대가 올 수 있는 길은

 

후술할 동해안 루트 빼고

 

 

기껏해야 문경새재와 죽령, 추풍령 정도이고

 

당연히 신라(사로국)도 병신이 아니었기에

 

 

여길 중점으로 방어 요새를 도배하다시피 깔아버린다

 

그리고 해당 지역들은 우주방어하기 매우 쉬운 지형

 

 

여기에 충청도 경상도 사이에 흐르는 금강

 

소백산맥 중간에 흘러 2차 방어물까지 만들어진 셈

 

 

 

 

 

 

 

 

 



다만 남쪽의 가야 제국들이 좀 문제긴 했는데

 

여기도 복잡한 해안선 때문에 단일한 정치체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신라가 경상북도 대부분을

 

먹을 때까지 심각한 타격을 주지 못했다

 

 

게다가 위에서 표시한 4개 지역 정도만 막아두면

 

경주로 오는 건 불가능인데, 여긴 한성과 다르게

 

 

꽤 폭이 좁은 길이라 방어자 입장에선 꽤나 유리한 지형







 

 

 



그러나 신라 입장에선 꽤 치명적인 부분도 없지는 않은데

 

강릉을 따라 포항까지 이어지는 동해안 축선

 

 

그리고 당시 바닷물이 포항에 가득 차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고구려는 한반도 남부와 교역을 하려면

 

 

적대적인 백제를 피해서 동해안으로 돌아야 했고

 

그 때문에 일찍이 신라와 커넥션이 존ㄴ 많던 상황

 

 

 

 

 

 

 

 

 




그래서 아직 경상 북부도 다 차지하지 못한 시점에서

 

강원도에서 신라 관련 유물이 나올 정도로

 

 

동해안 축선은 고구려와 신라의 연결선이었는데

 

바꿔 말하면 이쪽으로 군대 투입하기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광개토 대왕의 구원군과 장수왕의 신라 침공 역시

 

이 축선으로 이뤄졌다

 

 

 

 

 

 

 

 

 

 



또한 당시 바닷물이 포항 깊숙히 들어와 있어서

 

생각보다 경주와 동해안 간의 거리는 짧았던 상황

 

 

그러기에 바다를 통해 침공하는 왜구의 노략질에

 

상당히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기록에서도 왜구가 경주 일대에 출몰했다는

 

기록이 계속 발견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암튼 내물왕 시기 때 백제-왜-가야 연합군으로 인해

 

진짜 ㅈ될뻔한 경험을 한 신라는

 


이후 제대로 이를 가는데 우선 낙동강 이남 방면을

 

하나하나 먹으면서 가야의 세력을 뭉개버렸고

 

 

형님인 고구려의 공세를 대비해서 소백 산맥

 

말 그대로 산성으로 도배해버렸다

 

 

이후 이 덕분에 신라는 최전성기 고구려가 오지게

 

두들겨대었음에도 소백산맥을 단 한번도 격파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백제와 연합하며 백제가 몸빵하는 동안 

 

신라는 손쉽게 소백산맥에서 존버를 탈 수 있었다

 

 

이후 돌궐 때문에 고구려 북방이 파탄이 나서

 

한반도 방면 고구려 군이 빵꾸가 나버리자

 

 

신라는 특유의 개사기 지정학을 이용해서 소백산맥에서 

 

나와 충주-단양을 먹어버린다

 

 

그리고 충주-단양에는 남한강이 흐르고

 

이는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가 뚫린 셈

 

 

 

 

 

 

 

 

 

 

 

 


신라가 진짜 ㅈ되기 일보 직전이었던 640년경 백제 영토

 


암튼 이후 진흥왕이 부동산 투기에 기가막히게 성공한 탓에

 

너무 넓은 영토를 지켜야 했고

 

 

그 결과 고구려, 백제가 깐부를 맺고 신라를 자진모리 장단으로 두들긴다

 

하지만 이 때도 김품석의 개병신짓으로 대야성을 뺏긴 걸 빼면

 

 

북부, 서부 소백산맥 방어선은 여전히 굳건했고

 

대야성(합천)쪽의 공세도 대구, 경산에서 막아내며

 

 

신라가 가장 위기였던 640년 경에도 경주만은 끝까지 안전했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판도

 


그에 반해 백제는 한성이 따인 직후

 

고구려의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했는데

 

 

아산만과 차령산맥 덕분에 어느 정도 방어는 성공했지만

 

신라의 소백산맥에 비하면 방어력이 떨어져서

 

 

진짜 엄청난 출혈을 거듭하며 막아야 했고

 

그렇다고 남부의 잔존한 마한계 세력도

 

 

당시 해안선을 따라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에

 

여길 완전히 복속하는 것도 여간 지랄이 아니었다

 

 

 

 

 

 

 

 

 

 

 



즉 한 줄로 정리하면

 

신라는 (지형적으로) 삼국시대의 진나라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험준한 산맥 뒤에 있는 사천분지(경주분지)를 바탕으로

 

남들이 산맥 밖에서 싸울 때 힘을 기르고

 

 

적극적으로 병력을 산맥 밖으로 투사해 영토를 점령하거나

 

일시 후퇴할 때도 산맥에 기대어 버틸 수 있다는 것

 

 

이곳에서 진나라와 한나라가 나온 것처럼

 

산맥 뒤에서 웅크리던 신라 역시 대권주자가 될 운명을 지니고 있었던 게 아닐까?

 

 

 

 

 

 

 

 

 




 

 

-끝-

 

 

 

댓펌)


사로국이 신라임?

 

 ㅇㅇㅇ
근데 고대 중국어를 통해 당시 한자발음 재구해 보면
그 때도 신라, 시라기 등등 ㅅㄹ 음가이긴 했음


밀양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낙동강 하굿둑이 생기기전까진 밀양시 삼랑진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음, 고대에는 그 부근까지 혹은 그것보다 더 들어왔을수도

 

밀양에 삼랑진 있잖아요 삼랑진 이름 유래가 세개의 물이 만난다는 뜻인걸로 앎


삼국 중에 백제가 해상무역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해로로 공격하는건 힘들었으려나요
일본이랑도 교류할 정도면 충분히 백드랍도 가능해보이는데

 

해로로 돌아가려면 연안 따라서 경상도를 둘러가야하는데
일단 중간 기착지인 가야계 소국들이 대규모 선단을 그냥 통과시키긴 좀 어렵고
무엇보다 신라 백드랍 치려면 만단위는 가야하는데, 배 건조 비용이랑 물자 생각하면
그냥 연결된 육로로 가는게 더 싸게 먹히긴 함ㅋㅋㅋ
실제로 내물왕 때 백제 왜 가야 연합군의 서라벌 포위도 가야를 통한 육로로 공격이 주요했음


이글보면 견훤이 서라벌 침공한건 어케햇나싶네

 

심지어 그것도 소백산맥을 정통으로 뚫은게 아니라
신라의 부드러운 아랫배인 대야성 방면, 즉 합천쪽으로 우회 공격한 거ㅋㅋㅋ


경주를 순식간에 털어먹은 견훤이 진짜 미친놈이었구나

 

그분도 20년동안 소백방어선에서 막히다가 겨우 뚫어냄

 

그거도 신라 근위군의 고향 상주 출신이라 가능한거 ㅋㅋㅋㅋㅋ

 

ㅈ나 무서운게 그 견훤도 20년간 소백산맥 방어선을 정면에서 못뚫음
그나마 신라의 소백산맥 방어선 중 가장 약한 부분인 대야성 돌파에 성공한 게 크긴 했음ㅋㅋㅋ


평양이 경주보다는 기름지고 방어도 못지 않게 강력하지않나? 수당 대군도 평양에서 막았는데

 

평양도 연백평야나 안주 축선에서 들어오면 좀 힘둘긴 함
수당 때 막은거는 공세종말점까지 유도해서 막은 느낌이고
실제로 막긴했어도 사수전투 때 ㅈ될뻔 한거 생각하면...
즉 요동을 끼고 있으면 괜찮은데, 범위를 한반도로 축소시키면 상당히 방어가 힘든도시

 

평양은 요동 없으면 방어하기 힘든 곳임.
실제로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요동 상실한 이후, 고려든 조선이든 북방의 적들이 공격해오면 평양에서 제대로 막아 전쟁 끝낸 적이 없음.


천 년 만에 자연적으로 저렇게 해안선 바뀌는게 가능함?

 

과장이 좀 들어갔다고 생각하셈. 다만, 해안선이 지금과 다른 건 사실임.
실제로 도시들 지명 보면 과거에 물이 들어왔던 곳이 많음.
포항만 해도 해도동, 송도동, 상도동, 죽도동, 대도동. 전부 예전엔 섬이었고, 경주는 감은사 앞까지 바다가 들어왔었음.

 

자연적으로만 한게 아니라 인간이 직접 간척사업한거도 많고 물이 들어왔다는게 전부 완전 바다였다는건 아니고 한번씩 물이들어와서 뻘이나 늪지수준이였다 이런거임

 

ㄹㅇ 연에 한번만 바닷물 들어와도 그 지역은 농사는 다지은거 아님?
그게 몇년은 갔을거같은데  강물도 아니고 바닷물은 염도때문에 한번 들어오면 그 땅은 당분간 농사 끝나는거로 암


프랑스가 그렇게 꿀땅임?

 

작은 미국이라고 봐야함 원유빼고 모두다 나오는땅 위치적으로 유럽의 중심 비옥한토지 인구수대비 넉넉한국토

 스패인, 이탈리아는 알프스랑 피레네 넘어와야 하고
독일은 라인강 지류 + 베네룩스로 방어가 가능
유일한 약점인 영국 상륙 빼면 지정학적으로 완벽에 가까움ㅋㅋㅋ


장수왕때 포항까지 온거 아닌가
소백산맥 한번도 안뚫린건 아닌거 같은디

 

그래서 본문에 동해안 축선이 약점이라고 기술함ㅋㅋㅋ
근데 엄밀히 따지면 소백산맥을 우회해서 온거라, 소백산맥 정면으로 한 공격은 번번히 막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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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알빠여 | 작성시간 26.08.04 재밌다 재밌어
  • 작성자알카파월드 | 작성시간 26.08.04 와 신기하다 이런 전보는 어떻게알지
  • 작성자태조왕건이방원 | 작성시간 26.08.04 오 신기해
  • 작성자마피아 | 작성시간 26.08.04 흥미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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