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15
영어회화에 있어서 생활영어와 비즈니스영어가 나뉘듯이 한의학회화도 기본언어와 전문언어로 구분된다. 기본언어와 전문언어 모두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사용하나 전문언어는 ‘임상’이라는 한의학적 전문성을 가진다. 즉 기본언어는 생리, 병리, 경혈, 본초 등과 같은 한의학 ‘기초회화’이고, 전문언어는 진단, 침술, 방제 등과 같은 한의학 ‘임상회화’이다.
이처럼 한의학의 언어학습은 기초와 임상, 두 단계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제까지 본인이 말한 것은 기본언어에 관한 것인 바 한의학 언어학습의 반쪽만 이야기한 것이다. 사실 반쪽으로는 쓰임이 없으니 음양오행陰陽五行에 문리文理가 트여 생리, 병리를 아무리 거창하게 표현해도 임상회화를 익히지 않는다면 임상에선 힘을 못 쓴다.
생리, 병리로 돌아가는 인간의 몸을 통찰한다하더라도 임상이라는 실제 치료에 있어서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본인 역시 마찬가지 갈등을 겪었다. 학창시절 나름대로의 관觀을 세워 목소리를 높여 왔는데 임상에 뛰어들고 보니 사정이 달랐다. 몸에 대한 그 동안의 유창한 언변言辯은 사라지고 멍~ 한 것이... 환자 앞에서 머릿속이 백짓장처럼 변하는 것을 느끼면서 임상에 있어서의 전문언어 부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학창시절 기본언어학습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전문언어학습을 시작한다. 임상회화를 위한 일독一讀이 시작되는 것이다. 다행히 스승님과의 인연 덕에 폭 좁은 침법이나 방제가 아닌 ‘진단’의 일독一讀을 선택했으니 임상회화의 정도正道와 대도大道를 걷는 셈이다. 전문언어학습이 한의대 시절부터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후회막급이지만 그나마 기본언어가 익숙하기에 지금의 학습이 쉬워졌다는 자위를 해본다. 그리고 만약 침법과 방제에만 매달렸다면 진단이 중요성을 모른 체 귀멀고 눈먼, 쓰임이 극히 한정된 임상회화를 구사하고 있을 것이다.
[역학원리강화]를 통한 기본회화 일독一讀이 2년에 걸쳐 이루어진 것에 비해 진단을 통한 임상회화 일독一讀은 앞으로 10년을 목표로 삼는다. 첩첩산중이라 언급했듯이 우리에겐 기본회화조차도 어려운데 임상회화는 배 이상의 노력이 요구된다. 상황이 이러한데 쓸데없이 방황하면서 낭비할 시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기본회화만 능통能通해도 인정받는 현실에서 임상회화까지 달통達通한다면 ... 한의사로서의 득도得道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