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18
말없이 이루어지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가르침. 본인이 강조하는 스승은 학원선생이나 쪽집게 과외 선생이 아닌 바 옆에서 하나하나 자세히 가르쳐 주는 형식의 가르침은 개인의 통찰력이 요구되는 우리 학문에선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진정한 스승의 역할은 제자에게 학문의 방향을 ‘제시’하고, 제자 스스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진척 상황을 ‘점검’하는 것.
이처럼 제자된 이는 스승에게서 ‘제시’와 ‘점검’ 이상을 바래서는 안 된다. 때문에 주입식 교육과 야마 학습에 길들여진 한의학도들은 참된 스승과의 인연 맺기가 힘들다. 절차탁마, 뼈를 깎는 수고로움은 멀리한 체 스승에게 얻기만을 바라니...
그러나 한의학은 쉽게 줄 수 있는 것도, 쉽게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깨달음을 어찌 글과 말로 표현하여 전할 수 있으랴. 불가佛家에서 선지식과 이루어지는 선문답禪問答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스승의 버럭 내지르는 한소리와 휘두르는 몽둥이 한방에 깨달음을 얻는 구도자들을 통해 말과 글로서 이어지는 사제지간師弟之間의 한계를 느낀다. 공기가 가득 차 있을 때 바늘 하나로 “뻥” 터지는 풍선. 제자 스스로의 노력만이 풍선 가득 공기를 채울 수 있고, 이에 스승의 바늘 자극으로 “뻥”하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 번잡스럽게 스승의 말과 글만을 바라면 애당초 풍선을 부풀릴 수 없다. 참선과 개인수행을 멀리하고 선지식의 설법만 듣는다고 둑도得道하겠는가. 김은하 선생님의 움직이는 손을 보고 한 소식 얻은 것은 그 동안 일독一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제 여러분도 달리기에 있어서 스승은 ‘준비~ 땅’하는 사람이고, 체력단련과 달리기는 자기자신만이 할 수 있음을 안다면 스승을 찾아라. 체력을 아무리 단련해도 출발신호 없이는 달릴 수 없고, 설사 달린다 해도 목표지점의 제시 없이는 힘만 낭비하기에 스승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특히 전문회화에 있어서 스승 없이는 완전한 학습이 불가능하다. 졸업 후 한의사로서 막막한 것, 쉽게 양진한치洋診韓治에 빠지는 것 모두가 스승의 부재에서 비롯됨이다. 따라서 스승의 유무有無, 더 나아가 어떤 스승과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한의사로서의 인생이 결정된다.
강호는 넓고 고수는 많으니... 고수의 선택도 쉽지 않다. 결국 스승을 모심에 있어서도 배울 이의 식견이 요구된다. 스승의 그릇 만큼 자신이 관觀도 깊어지는 법. 학창시절 기본회화를 충실히 익혔다면 그만큼 높은 식견으로 졸업 후 전문회화에 있어서의 참된 스승을 선택하여 모실 수 있다. 현 강호의 고수이신 류희영 스승님과의 인연 역시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