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의 빛이다」
보통 사람은 자신을 소개하며 이런 말, 하기 어려울 텐데
예수께선 자신을 빛이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십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에
예수께선 자신에 대해 빛이라 스스로 증언할 수 있다 하십니다
어려운 말입니다
스스로 세상의 빛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는 것도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싶습니다
나이 오십이 차가는 내가 나를 평가하건대
나는 여전히 짙은 그림자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엔 어둠이 가득해, 어디로 가야할지 캄캄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빛이라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는 어찌 저렇게 당당하게
자기 확신을 갖고 말하고 살아가시는 걸까요
나는 왜 여전히 짙은 그림자를 안고 사는 걸까요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질문은 거대하건만, 답은 미미합니다
여태 교리의 확신 속에 답이 있는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또 살아가려니 자신 없습니다
교리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진리에 대한 질문은 커집니다
함께 질문하면 어떨까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질문하는 사람들이 서로 경청하면
조금씩 진리에 대해 알아가지 않을까요
그림자는 짙지만, 그래도 자신을 사랑하며
확신은 없지만, 그래서 겸손하게
서로의 질문에 고개 끄덕여주며
연합하고 연대하며 살아가면 어떨까요
자기 확신에 갇히지 않는 것
모르기 때문에 열려 있는 것
이런 게 자유 아닐까요
자기 수준을 인정하고 자기 처지를 확인하는 게
진리를 알아,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하는 상태 아닐까요
이런 진리를 아는 게, 자유를 누리는 인생 아닐까요
자유를 선언하는 예수에게
옛날 유대인들은 한 번도 종이었던 적이 없다고
근데, 왜 자유를 말하냐고 되묻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일이 없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
이상합니다
이집트에서 종노릇 했으면서
바빌로니아로 끌려가 노역에 시달렸으면서
마케도니아에 짓밟히고 성전을 유린당했으면서
로마의 체제에서 꼭두각시가 되고 그들의 통치를 받으면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자기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한 번도 종이었던 적이 없다는 사람들을 반면교사 삼아
나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살피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안타까운 역사를 되짚는 게,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것이요
개인의 어두운 그림자를 이해하고,
인류의 지난한 문제를 응시한다면
어디로 가야할지를 아는 것
아닐까요?
자기 그림자를 아는 사람이라야 스스로를 빛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아는 사람이라야 어디로 가야할지 알겠습니다
예수께서 스스로 빛이라 하신 건
누구보다 인간의 그림자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예수께서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신다는 건
부끄러운 어제를 성찰했기에 오늘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뜻이겠습니다
빛으로
예수처럼
그러나 겸손하게
어제에서 와서 내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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