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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 곁에서_창18:1~19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2.08.28|조회수269 목록 댓글 0
고려궁지 앞 강화유수부 동헌 앞, 400년 수령 느티나무

 

시골 마을 입구엔 대개 큰 느티나무가 서 있습니다. 마을 초입에 있어, 성벽 없는 마을의 성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큰 느티나무는 신목(神木) 대접을 받습니다. 신이 나무에 깃들어있다는 믿음으로, 나무 옆에 당집을 짓기도 합니다. 산당 혹은 서낭당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큰 느티나무나, 나무들을 당산나무라 부르기도 합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상수리나무는, 우리에게 익숙한 느티나무와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길을 나서 처음 닿은 곳이 상수리나무 아래였습니다(창12:6). 아브라함이 길을 나선 후 처음 만났던 상수리나무는 ‘모레’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모레’는 종교적 가르침, 예언의 뜻을 지닌 말입니다. ‘모레 상수리나무’는 신의 뜻을 알려주는 나무였겠습니다. 이렇게 상수리나무는 마을 초입을 지키는 나무이기도 하고, 당산 나무이기도 합니다.

 

마을 초입에 있는 상수리나무는 마을 밖에서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겐 등대 역할도 합니다. 위험한 길을 지나며 지쳐있고 배고프고 목마를 때 멀리 보이는 상수리나무는 쉬고 먹을 수 있는 소망을 갖게하는 나무였겠습니다. 지치고 배고픈 나그네들은 큰 나무가 보이길 바라며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상수리나무와 느티나무는 마을의 문이 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의 비원을 들어주기도 하고, 먹을 것과 묵을 곳을 찾는 나그네들에겐 안도의 숨을 쉬게 해주는 나무였습니다.

 

창세기 18장 1절과 2절을 그린다면, 아브라함이 장막 어귀에 앉아 상수리나무를 쳐다보다가 나그네를 만나는 모양입니다.

 

「주님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한창 더운 대낮에, 아브라함은 자기의 장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보니, 웬 사람 셋이 자기의 맞은쪽에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장막 어귀에서 달려나가서, 그들을 맞이하며,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하였다.」

 

행여 지나가는 나그네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었겠습니다. 길에서 지친 나그네를 먹이고 쉬게 하려고, 아브라함은 장막 어귀에서 상수리나무를 응시했겠습니다. 마침 나그네 셋이 상수리나무 곁을 지나려하자, 아브라함은 달려 나가 그들을 맞이합니다.

 

아브라함 자신이 나그네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브라함은 나그네의 방문과 요청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길 위의 나그네를 잡아당기듯 맞이하고, 환대합니다(창18:3~5)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아브라함의 이런 행동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나그네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몸붙여 살았으니, 나그네의 서러움을 잘 알 것이다(출23:9)」

 

길은 위험합니다. 길을 가는 사람은, 배고프고 지칩니다. 지금 내 처지가 배고프고 지쳐있다면, 위험하다고 느껴진다면 길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이 길 위에 있습니다. 안정된 일상을 살고 있어 배고프고 지친 줄 모를 수 있지만, 어딘가에 ‘몸붙여 사는 나그네’입니다. 이런 나그네를 옛날엔 히브리라 불렀습니다. 이집트 경계를 넘어 광야에 살던 모세도 히브리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앞세워 이집트에서 ‘몸붙여 사는’ 히브리인들에게 나타나셨던 겁니다. 우리는 대부분 어딘가에 매여 노동의 댓가로 급여를 받아 연명하는, ‘몸붙여 사는 나그네’입니다. 자영업을 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체인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주유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다들 대기업에 ‘몸붙여 사는 나그네’입니다. 독립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도 대부분 임차인들이라, 옛날로 치면 소작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몸붙여 사는 나그네’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처럼 길 가는 나그네를 응시하고 계십니다. 위험하고 지치고 배고픈 우리를 하나님께서 환대해 섬겨주십니다. 나그네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시길 기도합니다. 지친 우리를 쉬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배고픈 우리에게 돈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성령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내려주셔서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모레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마므레 상수리나루 아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이파리를 보며, 흔들리며 사는 우리에게도 햇빛과 비를 주실 줄 믿겠습니다. 바람 불면 흔들리는 모든 사람에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평화누리길 기도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마른 땅에 서 있는 푸른 나무가 되어 길 가는 사람들의 등대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나무 아래에 서 있는 나그네를 환대하고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몸붙여 사는 나그네’같은 우리가 몸 붙일 데 없는 나그네를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나그네가 나그네를 섬깁니다.

 

아브라함이 맞이한 나그네들은 신의 뜻을 고지하는 천사였습니다(히13:2). 하나님은 나그네들로 분한 천사들 사이에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며, 땅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창18:17~19).」

 

하나님께 순종해 옳고 바른 일을 하며, 사람들에게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쳐 일가를 이루면, ‘크고 강한 나라’입니다. ‘크고 강한 나라’는 영토가 넓고 무력이 센 나라가 아니라, 옳고 바른 일을 펴는 까닭에 ‘땅 위에 있는 나라’를 더불어 행복하게 하는 나라입니다. 나그네를 섬기는 나라입니다. 나그네를 섬기는 나라가 천국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천국을 세우십니다.

 

천국은 가는 곳이라기보다, 오는 곳입니다(마6:10). 하나님께서 우리 사는 자리에 천국을 보내시고, 우리는 여기에 천국을 세웁니다. ‘몸붙여 사는’ 우리가 ‘크고 강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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